가난이 어떻게 삶을 파괴하고, 존엄이 파괴된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복수를 하는지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지구적 이야기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경제적 양극화와 가난한 이들의 삶이 파국에 처하게 되었을 때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지를 경고한 퍼트넘의 〈우리 아이들〉에서부터 최근에 나온 〈제인스빌 이야기〉까지 많은 책이 있다.
그중에서 주목을 많이 받은 책이 〈힐빌리의 노래〉다. 저자 자신이 미국 중남부 애팔래치아산맥 지방의 백인 하층 계급을 지칭하는 힐빌리였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힐빌리들의 삶이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졌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가난의 비참함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다른 책과 뚜렷이 구분되는 것은 이들의 삶에서 파괴되고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 게 무엇인지, 그 내부자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가난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파괴한 것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정치적 삶과, 그것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에 대한 책이다.
힐빌리들의 삶이 그저 전근대적인 게 아니라 정치적 삶이라는 것은 책에 나오는 이들의 언어 행위가 주로 ‘맹세’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정치적 삶의 요체에는 맹세라는 언어 행위가 있다(이것은 아감벤의 〈언어의 성사〉를 참조하면 좋다. 나는 〈힐빌리의 노래〉를 대학원 강의 등에서 소개할 때마다 이 책과 함께 읽으라고 권한다).
가족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다짐이나,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저주나, 없이 사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말이나, 이 모든 말은 맹세의 성격을 지닌다. 이 맹세를 지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자신의 이름과, 이름의 존엄은 명예를 통해 보존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신의 보살핌 아래 그저 명예를 지키고자 살아가는, 오합지졸에 불과한 힐빌리”들에 대한 책이라고 말이다. 가난한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엇을 맹세했고, 그 맹세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명예로운 일인지, 그 명예로운 삶이 어떻게 불가능해졌는지 말한다. 책에는 명예라는 말이 두드러질 정도로 많이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은 ‘신의 이름’과 ‘명예’가 아닌 ‘오합지졸’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읽지만 말이다.
힐빌리들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고 돌보겠다고 맹세한다. 이들이 맹세하는 게 가족의 명예라는 점에서 힐빌리들이 추구하는 명예는 공적인 게 아니라 전근대적이거나 사사로운 것으로 보인다. 아니다. 이들의 세계에서 ‘가족’은 근대 자본주의에 와서 신성화된 사적 영역으로서의 그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들에게 가족은 경제 공동체이며, 지역사회를 이루는 지역 공동체이자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정치의 시작점이다. 사적 영역이 전혀 아니다. 때로 힐빌리들에게 가족은 혈연을 빙자해 서로 도와줘야만 하는 이유를 기어이 발견하게 하는 공동체다. 도와줘야 할 상황이 되면 ‘사돈의 팔촌의 구촌까지 뒤져서’라도 연줄을 발견하고 만다. 종종 가족이라서 도와주기보다 도와줘야 할 이유를 가족으로 정당화한다.
정치는 ‘이름이라는 존재’를 건 쟁투 행위
이런 측면에서 명예는 나보다 열악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용기를 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이익을 위해 배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이것은 명예가 아닌 이익만을 추구했을 때 가난한 이에게 초래하는 파국적인 결말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책에서 할머니는 명료하게 말한다. “없이 살면서 없는 사람 물건을 빼앗는 놈보다 더 천한 놈은 없단다. 안 그래도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데, 없는 사람끼리 서로의 처지를 더 힘들게 만들 필요는 없단 얘기다.”
물론 명예는 그 자체로 선과 악이 되지 않는다. 어떤 맹세는 선한 결과를 낳고 어떤 맹세는 사람을 파괴하는 악한 결과를 만든다. 악명 높은 ‘명예살인’과 같은 것 말이다. 이 또한 가족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지키는 일이다. 맹세가 있는 삶을 그 자체로 선한 삶이라고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점에서 맹세는 신중함을 요한다. 신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맹세와 명예는 다시 한번 정치적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맹세인가. 나의 이름을 걸고 할 만한 명예로운 맹세인가. 아니면 맹세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명예로운 일인가. 이를 두고 ‘목숨을 건’ 토론과 투쟁이 벌어지는 게 바로 정치 아닌가? 정치는 그저 존재하는 명예를 추구하고 감시하는 ‘치안’ 행위가 아니다. 이름이라는 존재를 건 살아 있는 쟁투 행위다.
정치적 삶에 맹세는 필수다. 다른 말로 하면 정치적 삶의 파괴란 맹세를 부질없게 만든다. 맹세할 것도 없고, 맹세를 지킬 수도 없고, 맹세를 지킬 필요도 없는 삶이다. 당연히 목숨을 걸 만한 명예로운 맹세인가를 토론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거짓말과 허언만 남는다. 아니 거짓말만 하더라도 거짓 맹세이기에 여전히 정치적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말을 그저 읊조리는 것이 그보다 더 심각하다.
이 책에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이 바로 여기다. 저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폭주’한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날 이해해준 사람은 아빠밖에 없었어!”라고 소리친다. 이에 저자와 다른 가족은 수긍한다.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서로를 지켜주는 특별한 유대가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때 어머니의 말은 관계를 의미화하는 말이며, 그런 의미에서 ‘맹세’다.
그러나 어머니의 이 말이 의미 없는 헛말이었음은 그 뒤에 이어지는 할머니의 죽음에서 드러난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는 다시 폭주한다. 그리고 외친다. “너희 엄마가 아니라 내 엄마니까!” 이 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어머니의 삶에서 이미 파악한 저자와 다른 가족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응한다. “아녜요, 엄마. 할모는 우리 엄마이기도 했어요.” 저자에게 ‘할모’가 어머니라는 말은 의미로 꽉 찬 말이지만 어머니가 부른 엄마는 텅 빈 말이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이름을 그저 헛되이 부른 죄인이다. “내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마라.”
정치적 삶에서는 이름이야말로 존엄하다.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인간의 존엄에 가하는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이다. 우리 시대에 가난한 이들이 처한 파국이 바로 이것이다. 여전히 맹세할 것이 있던 청동기 시대나 봉건 시대와도 다르다. 가난의 결과 남는 것은 헛되이 부를 이름뿐이며 이름을 헛되이 불러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 되는 것뿐이다. 가난한 이들을 독신(瀆神)의 죄인으로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죄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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