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5일 문재인 대통령은 ‘환경의 날’을 맞아 “2022년까지 미세먼지 배출량을 2016년 대비 30% 이상 줄이겠다”라고 약속하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추가경정예산을 신속히 처리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6조7000억원에 불과한 추경예산이 언제, 어떤 조건으로 통과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국회 정상화의 조건으로 선거제, 사법제도 개편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암울한 경제지표가 잇따르자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추경예산을 볼모로 대통령과의 담판을 요구하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친 것은 무엇보다도 설비투자 축소 때문이다. 더욱이 6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수출 증가율도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 않다. 현재진행형인 미·중 무역 통상마찰도 6월 G20 회의에서 극적으로 타결되지 않는다면 금년을 훌쩍 넘길 태세다.

완전고용 유지하기 위한 ‘투자의 사회화’

유일한 활로인 정부투자는 재정균형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국가채무 비율 40%’ 논쟁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재정건전성이라는 금과옥조의 원조는 리카도의 ‘동등성 원리’다. 200년 묵은 경제학의 이 논쟁은 네오케인스주의라는 어설픈 타협을 거쳐 지금은 재정균형론이 완전히 승리한 듯 보인다. 하지만 경제위기 때 오히려 긴축을 강요해서 경제성장률 저하와 적자 확대의 악순환을 일으킨 사례는 IMF 구제금융의 역사를 따라 라틴아메리카, 구사회주의권, 동아시아에서 30년 동안 잇따라 벌어졌고 지금도 유럽에서 목하 진행 중이다(오직 미국만 예외였다).

 

ⓒAP Photo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4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열린 통화정책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간 긴축 정책을 주도했던 그가 이번 콘퍼런스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1930년대 대공황 때부터 제2차 대전의 전시경제, 그리고 브레턴우즈 체제의 설계까지 영국 재무부의 정책에 줄곧 개입했고, 결국 토드 벅홀츠로부터 “잘 먹고 잘 산 구원자(Bon vivant as savior)”라는 칭송을 들은 케인스에게도 이 재정균형론은 짜증나는 상대였다. 현재의 포스트케인지언들은 케인스의 해답이 현대화폐 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과 이에 입각한 기능재정론(Functional finance)이라고 주장한다. 즉 화폐는 기업과 가계의 대출 수요에 따라 창조되는 것이며(화폐의 내생성), 따라서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나아가 국가채무는 오로지 그 정책이 경제에 미칠 결과에 비춰서 판단되어야지 전통적인 건전성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물론 지출 확대의 상한은 인플레이션이다).

케인스는 이론적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정치권과 경제학자들을 설득(‘설득의 경제학’)해서 어떻게든 정책을 실행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케인스의 아이디어가 ‘자본예산(Capital budget)’이라는 범주다. 전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효수요의 관리였다. 특히 기업가들의 ‘동물적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투자의 변덕스러움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자율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며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유도할 만큼 항상 낮은 수준에 머무르면 그만이다. 필요한 것은 저축과 투자의 괴리를 메워서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의 사회화’이며 자본예산은 바로 여기에 쓰인다. 정부의 통상적인 업무에 사용되는 예산, 즉 경상예산(Current budget)은 오직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단기적으로 적자 편성할 수 있다.

애초 2017년의 천운은 반도체 주기에 따라 단명할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가상의 자본예산, 즉 장기적인 대규모 정부투자 계획을 짜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 대책으로 생태 인프라의 일부인 전기 및 수소 충전소 설치를 약속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탈탄소화를 위한 대대적인 생태 인프라 투자 계획을 세워서 내년부터 시행해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여야 거대 정당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재무건전성과 국가채무에 관련된 법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금본위제라는 ‘황금구속복’이 세계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었듯이 긴축이라는 ‘잿빛구속복’은 한국 경제를 거덜 낼 것이 틀림없다. 청와대가 환골탈태할 때다.

기자명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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