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백승기4·19민주혁명회 등은 4·19 혁명을 폄하한 영상물을 각급 학교에 배포한 교과부 장관을 파면하고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4·19가 난데없이 역사의 현장에 호출됐다. 12월9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장관이 4·19 관련 단체를 찾아 일일이 고개를 숙였다. 최근 교과부가 학교 현장에 배포한 동영상물(〈기적의 역사〉)에서 ‘4·19 혁명’을 ‘4·19 데모’로 표기한 것을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교과부는 단순 실수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4·19 관련 단체들은 교과부 장관 퇴진은 물론 문제의 동영상을 제작한 ‘건국 60주년 기념사업회’ 또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박윤석 4·19민주혁명회장은 “4·19 혁명은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인데 이를 데모로 폄하하다니 교과부 수장이라는 사람의 역사 인식이 의심스러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유사한 일은 2년 전에도 있었다. 2006년 11월, 교과서포럼 심포지엄 행사장에 4·19 관련 단체 회원들이 들이닥쳤다. 이날 주제 발표자인 이영훈 교수(서울대·경제학)는 이들 회원에게 밀려 단상에 쓰러지는가 하면 입술이 터지는 곤욕을 치렀다. 이들이 ‘난동’을 부린 까닭은 하나. 교과서포럼이 교과서 시안에서 ‘4·19 혁명’을 ‘학생운동’으로 폄훼해 기술하며 4·19 정신을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4·19 폄하, 실수인가 고의인가

다시 벌어진 4·19 소동은 바야흐로 ‘역사 내전’이 새로운 방향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라는 비난에 시달려온 금성출판사판 〈한국 근·현대사〉는 결국 출판사가 나서 문제 내용을 수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16~17쪽 딸린 기사 참조). 출판사의 백기 투항으로 교두보를 확보한 정부와 보수 세력은 다음 고지를 향해 거침없이 진군하는 중이다. 교과부는 특정 이념에 치우친 인사를 동원해 학교 현장에서 근현대사 특강을 벌이는가 하면 금성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대해 다른 교과서로 대체할 것을 종용하며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20~21쪽 딸린 기사 참조).

경제단체 또한 거들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2월15일 ‘역사 및 경제 교과서 개선방안’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겠다며, 각급 학교는 물론 교과서를 발행하는 출판사에까지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조만간 교과서 논란이 ‘한국 근현대사’ 교과를 넘어 경제·사회 교과로 확산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12월3일 경기도교육청이 금성교과서를 채택한 고등학교 교장들을 불러모아 실시한 교육은 슬라이드를 통해 이런 문구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 정신을 수호하고 미래 세대에게 국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시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전경련은 심포지엄 취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정통성 및 헌법 정신 훼손, 자유민주주의 성취와 경제발전에 대한 폄하, 시장경제와 기업에 대한 왜곡 등 역사 및 경제 교과서의 내용과 이를 둘러싼 논쟁의 실상을 점검하고 올바른 교과서가 확산되는 방안을 모색한다.” 교육청과 전경련이 나란히 ‘대한민국 정통성’과 ‘헌법 정신 수호’를 내세우는 셈이다.

현행 교과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은 최근 들어 ‘좌편향’이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교과서 수정 문제는 좌편향을 우편향으로 시정하는 게 아니라 좌우 모두 동의하는 가운데 정상화하겠다는 것”(9월27일)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상징적이다.
 

ⓒ뉴시스보수 단체 회원들이 11월19일 금성출판사 본사 앞에서 교과서 모형을 불태우고 있다.

‘좌편향’ ‘우편향’ 같은 프레임 대신 ‘정통성’과 ‘헌법 정신’을 전면에 내세운 원조는 교과서포럼이었다. 지난 3월 이른바 ‘대안 교과서’를 표방한 〈한국 근·현대사〉를 발행하면서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는 우편향이나 뉴라이트의 교과서가 아니라 헌법 정신과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교과서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교과서를 둘러싼 이념 논쟁에서도 교과서포럼은 실질적인 이데올로그 구실을 수행했다. 이 단체가 지난 9월 교과부에 ‘금성출판사판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의 현대사 서술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한 검토 의견은 교과부 수정 권고→수정 지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수용되었다(18~19쪽 표 참조). 

최근 조갑제닷컴이 학교 일선에 배포해 물의를 빚은 〈금성출판사 간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거짓과 왜곡〉에 실린 텍스트 또한 교과서포럼의 검토 의견을 원전으로 삼았다. 근현대사 교과서 외에 사회·경제 교과서를 맨 처음 문제 삼은 것 또한 교과서포럼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역사 의식을 원전으로 삼을 경우 4·19에 대한 폄훼 내지 의미 축소가 필연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12월 초 〈한국 근·현대사〉에서 근대사 부분을 떼어내고 〈한국 현대사〉를 새로 발행한 교과서포럼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기억한 역사는 없었다.…새로운 나라가 세워졌다는 ‘건국’의 개념 자체가 아예 부정되었다.…건국 이후 역사에 대한 평가도 냉혹했다. 그것은 단지 장기집권과 부정부패의 역사였다.” 박효종 교과서포럼 공동대표(서울대 교수·국민윤리교육과)는 건국의 정당성을 부정한 이같은 역사관을 일러 ‘친부 살해적(patricide) 역사관’이라 표현했다. ‘자학 사관’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교과서포럼 “건국 부정은 아비를 부정하는 것”

이에 반해 4·19를 비롯해 5·18, 6·10 등 민주화 운동은 그간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어왔다는 것이 교과서포럼의 인식이다. 교과서포럼에 따르면, 4·19는 ‘긍정적 의미의, 혁명적 사건’이기는 했지만 “4·19 이후의 통일운동은 대한민국의 기초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명확히 전제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불안을 초래하였으며, 결국 5·16 쿠데타가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런데도 “금성 교과서가 4·19 혁명 이후 학생과 급진세력에 의해 전개된 통일운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반제국주의 제3세계 혁명론에 입각했기 때문”이라고 교과서 포럼은 해석한다.

따라서 4·19를 비롯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평가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 이승만·박정희 등 이른바 건국 세력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다. 이들을 복권시키려는 움직임은 보수 우파 진영에서 실제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雩南)애국상’이 제정되는가 하면, 한국자유총연맹은 남산 자유센터 앞마당에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겠다며 10억원 모금운동을 추진 중이다. 지난 광복절에는 청계천 광장에서 보수 단체 주최로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국민 감사 한마당’이 열리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조갑제 〈월간조선〉 전 편집장은 “예수를 언급하지 않고 성경을 말할 수 없듯 이승만 대통령을 얘기하지 않고는 건국을 말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이야말로 개혁개방 경쟁을 화두로 싸운 20세기 프리덤 파이터다”라고 치켜세웠다.
 

ⓒ시사IN 한향란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역사 교과서를 지키기 위해 역사학계와 교육계, 시민단체가 공동 대응에 나섰다. 위는 12월9일 공동 기자회견.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 또한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재평가를 활발히 시도하고 있다(오른쪽 상자기사 참조). 이 전 대통령의 경우 “공산주의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나라의 기틀을 잡았던 공로를 적극 평가”하며, “196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경이로운 고도성장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기를 ‘근대화 혁명’의 기간으로 높이 평가”한다는 식이다.

이에 대해 4·19 혁명공로자회 안승근 박사는 “이승만이 아니면 건국도 반공도 이룩될 수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이야말로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만에 하나, 이들의 재평가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어디서 찾느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정태헌 교수(고려대·사학)는 역사 담당 교사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정통성이라는 게 고정된 가치가 아님을 역설했다. 동독의 경우 과거 반나치 투쟁을 벌인 독립 투사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지만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자 동독 국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독을 선택했다. 이처럼 정통성을 결정하는 것은 특정 위정자가 아닌 시대적 민의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근대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민주화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정치적 권위주의 체제가 경제성장을 가로막은 북한과 달리 한국은 민주화를 통해 분배 욕구가 자연스럽게 분출되면서 경제성장 또한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임시정부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쫓겨났던’ 이승만이나 독재에의 미련을 떨치지 못한 박정희나 우리가 넘어서야 할 대상일 뿐인데, 이들을 ‘건국의 아버지’ ‘근대화의 아버지’로 미화하려 든다면 ‘어버이 수령’을 찬미하는 북한 역사관과 다를 게 뭐가 있냐고 그는 반문했다.

교과서포럼이 강조하는 ‘헌법 정신’과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도 반론이 많다.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교양학부)는 요즘 아예 ‘제헌헌법 가르치기 운동’을 제창하고 다닌다. 제헌헌법을 살펴보면 우파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법임에도 놀랄 만큼 ‘좌빨’스러운 조항이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근로자의 이익 분배 균점권을 명시한 18조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고 정한 87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조항들은 1954년 제3차 개헌 당시 수정 또는 삭제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정통성이든 헌법 가치든 따지기 전에 중요한 것은, 이런 논의가 역사와는 동떨어진 정치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일부·국방부에 정치권·경제단체까지 나서 역사 교과서를 흔들려 들자 역사학자들은 같은 학자 집단인 ‘교과서포럼’에 과녁을 돌렸다. 더는 기존 교과서를 상대로 시비만 걸 게 아니라 검인정 과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만들어 시장에서 당당하게 한판 붙자는 것이다(도면회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서울시내 대형 서점에 가면 교과서포럼에서 발행한 〈대안 교과서〉가 교과서 코너에 꽂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실 난센스다. 이 책은 검인정 과정을 통과한 정식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효종 교수는 “교과서포럼이 역사학자들의 집단이 아닌 만큼 정식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은 무리이다”라고 말했다. 자신들은 단지 민간운동 차원에서 교과서포럼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교과서가 정치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사실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역사 교과서는 더욱 그렇다. 역사 교육은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기제이기 때문이다. 최갑수 교수는 〈역사비평〉 겨울호에 기고한 논문(〈국가, 과거의 힘, 역사의 효용-이른바 ‘역사 교과서 갈등’에 부쳐〉)에서 미국과 영국 또한 이른바 ‘신우익’이 정권을 장악한 시기에 현재 한국에서와 유사한 역사 내전이 벌어졌음을 지적했다.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 시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대처는 역사 교육계에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학자와 저술가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보가 이루어진 바로 그 시기(빅토리아여왕 치세기)를, 영국이 다른 국가보다 가장 앞서나갔던 바로 그 시기를, 가장 암울한 시기로 묘사했다.” 미국 또한 노예무역, 제국주의, 외국에서 저지른 악행 등을 서술하는 것을 ‘자학 사관(self-flagellating historiography)’이라 하여 극력 배격했다.

대처·레이건도 ‘자학 사관’ 시비

단, 최 교수는 영·미와 한국의 역사 내전에 결정적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영·미 집권층의 경우 민족주의적 민족사관을 견지하면서 이것이 밑으로부터의 역사 또는 소수자의 역사로 희석되는 것을 배격했던 반면 한국의 신우익은 민족주의적이기는커녕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다 식민사관 시비에 휘말린 교과서포럼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근대사를 떼어낸 〈한국 현대사〉를 새로 편찬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아직도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착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대안 교과서’의 근대사 서술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과 매도가 끊이지 않았다.” 오직 학문적 논의로 승부하겠다던 애초의 포부치고는 미심쩍은 정치적 후퇴를 감행한 셈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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