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가 문화경제학 분야에서 여섯 번째 글이다. 잠깐 지도 확인을 하면 먼저 TV와 문화에 해당하는 것들을 다루었고, 출판 분야로 넘어가서 지난주에 사회과학 시장을 얘기했다. 원래 계획은 이번 주에 소설시장을 다루고, 자연스럽게 출판문화 얘기를 좀 하다가, 스펙터클 분야 그리고 스포츠로 넘어가 총 12회 정도로 문화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국회에서 한창  2009년도 예산이 거론되고 있어서, 이 문제를 독자 여러분과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글의 목적은 문화예술 분야 전문가나 종사자에게, 도대체 어떻게 예산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지 ‘상상력’을 복돋아주기 위함이다.

ⓒ뉴시스이번 예산안에서도 여야 가리지 않고 유력 정치인의 이른바 ‘의원님 관심사업’을 일단 살뜰히 챙기는 현상이 눈에 띈다. 위는 12월10일 열린 예산결산특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조정소위원회.
간단히 절차만 언급하자. 만화든, 스포츠든, 혹은 밴드든, 내년도 예산에 무엇인가 반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미 늦었다. 현재 한나라당 문화체육위 간사로 있는 나경원 의원을 직접 안다고 해도 내년 예산은 늦었다. 보통 정부에서 신규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것은 2월, 그리고 예산안 계획을 받는 것은 4월이다.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 홍대 앞 밴드인데, 너무 힘들어 정부로부터 5억원 정도라도 밴드 지원자금을 받고자 상상하시거나, 혹은 만화가인데 만화 잡지 발간을 위해 정부가 좀 나서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늦어도 내년 2월부터는 움직이는 것이 좋다. 정부가 이런 명분 있고 타당한 일에 5억원 정도 못 주겠다고 하기는 어렵다.

워낙 보는 사람이 없어서 장기 공연이 어려워진 뮤지컬 〈요덕 스토리〉에 이번 예산 조정기간 중에 국회가 5억원을 신규 배정했다. 물론 우파 정부에서 자기들끼리 쿵짝해서 특정 뮤지컬에 지원하는 게 좀 웃기기는 해도, 이런 ‘쪼잔한 돈’ 때문에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

〈요덕 스토리〉도 5억원 지원받는데…

그러니 최소한 상업성도 별로 없는 〈요덕 스토리〉보다는 사회 기여도가 있는 문화예술 분야라고 생각되면, 내년 1월, 당장 가까운 지역구 국회의원 문을 두드려보시거나, 정 안되면 나에게라도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 밴드 여러분, 만화가 여러분, 그리고 애니메이션 제작자 여러분, 2010년 예산에는 〈요덕 스토리〉의 전례에 따라, 우리도 꼭 예산을 따내봅시다.

자, 그건 그렇고, 일단 2009년도 예산안 총평을 한번 해보자. 공교롭게도,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예산안 몇 개가 같이 올라와 있다. 요즘 한창 현안인 4대 강 정비사업과 비교해보자. 체육계를 포함해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내년에 책정된 예산은 전부 3조8000억원 정도다. 여기에 문화예술, 영화, 신문, 관광, 스포츠 이런 게 다 포함되어서,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이 이 돈을 놓고 아옹다옹하는 셈이다. 솔직히 내 처지에서는 “야, 짜다!”, 이 한마디밖에 할 말이 없다.

토목건설 분야 전체와 비교하는 것은 아예 쑥스러운 일이고, 그 중 내년도에 “바로 삽 들어갑니다”라고 정부가 세워놓은 4대 강 정비사업에만 국한해보면, 이 예산이 14조원이다. 4대 강 정비한다고 지역에 푸는 돈과 3조8000억이라는 문화예술 예산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얼른 계산해도, 전체 문화예술 예산이 10조원은 되어야 하고, 지금보다 3배는 늘어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럼, 정부에서는 세입과 세출을 맞춰야 한다고 ‘요상한’ 소리를 할 텐데, 이게 웃기는 얘기다. 1조원 약간 넘는 일반회계를 7조~8조원으로 올리면 간단한 일이다. 이건 여론이 결정하면 된다.

4대 강 정비사업과 한 번만 더 비교하자. 이재오씨가 운하 만들고, 여기에 자전거 길 만들어서 북한까지 가자고 얘기한 적이 몇 번 있다. 대운하를 따라 자전거 길부터 먼저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만 1168억원이다. 즉, 내년에 대운하 옆에  자전거 길을 놓는데, 1000억원 넘는 돈을 쓴다. 이 돈의 규모는 문화예술진흥기금 950억원보다 많다. 영화발전기금 753억원을 합쳐봐야 1700억원 규모이다. 여기에 예술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털어서 계산해보면, 거의 자전거 길 규모의 예산이다. 국토부의 대운하 자전거 길 예산이 거의 모든 예술 분야 예산을 합친 것과 같다는 얘기다.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자전거 길 내기보다는 지금 죽어가는 영화나 지역 드라마 아니면 작가들에게 지원금을 더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자, 기왕 들여다본 김에 조금 더 들어가보자. 박희태 40억원(남해 유배문학관 건립사업), 정세균 20억원(임실 사격장 합숙시설) 등 여야 가리지 않고 유력 정치인의 이른바 ‘의원님 관심사업’이 일단 눈에 띈다. 이 와중에도 자기 지역구 사업 챙겨 가신 정세균 대표님, 참 살뜰도 하시다. 그리고 불교 관련 사업의 예산 증액이 눈에 띈다. 부처님오신날 부산세계 등축제에 3억원, 총화종 문화교육 전승관 건립에 10억원 등등, 하여간 이번 국회에서는 불교를 살뜰하게도 챙겨주셨다.

그렇다면 스포츠계는 어떨까?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지원으로 덩치 크게 265억원 받아가시고,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는 순전히 유치 지원만으로 신규 예산 180억을 받아가신다. 이 정도면, 체육계 예산 부족하다고 타령하기가 좀 그렇지 않은가? 좀 그렇지?

토건 예산, 영화·지역 드라마·작가에게 돌려야

한편 ‘지원 규모 과다’라고 잘리거나 삭감될  예산 항목도 살펴보자. ‘문화예술 핵심희소인력 양성’이라는 사업은 겨우 3억2000만원짜리 사업인데, 40명에게 800만원 정도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원 규모가 너무 크다고 하신다. ‘국내외 연계융합형 창의인재 양성’ 사업이라는 40억원짜리 복잡한 이름의 사업은, ‘수혜자에 대한 과도한 특혜 우려’ 등으로 역시 삭감 예정. 그리고 실제 현장 문화예술가의 상당수가 관련된 ‘문화 콘텐츠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61억원짜리 사업도 삭감 대상. ‘한국 영화아카데미 운영’이라는 28억원짜리 사업은, ‘1인당 교육비 과다 편성’으로 역시 삭감 대상이다.

문화예술 분야 중에서도 인재 양성, 교육비, 운영 지원과 같은 소프트웨어형 사업은 대폭 삭감 대상이다. 위는 한국영화교육원 필름 아카데미 야외수업 장면.
결국 문화예술 분야 내에서도 관광사업이나 스포츠 시설과 같이 토건형 사업에는 손이 덤벙덤벙 나오는데, 인재 양성·교육비 아니면 운영지원과 같은 소프트웨어형 사업에는, 정말 짠돌이 예산이 아닐 수 없다. 나 같으면 자전거 길 1100억원을 떼어서 아예 문화예술 인력 교육 투자나 상업성 부족한 작품에 대한 창작 보조금으로 쓰겠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방향 아닌가? 자, 문화예술인들이여, 적은 예산 가지고 부문별로 누가 가져가니 싸우지 말고, 얼마든지 풍부한 토건 예산과 하드웨어 예산을 이 분야로 돌리자고 목소리를 합쳐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토건 시대, 이대로 가다가는 문화 부문의 차세대들, 배고파 죽을 것 같다.

(참, 2주일 전, 지방 드라마 관련 내용에서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 진재영과 배용준을 발굴한 부산방송국의 드라마는 〈부산 갈매기〉가 아니고, 〈해풍〉이었다. 이후 부산방송은 KNN으로 개명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금까지 12편의 지역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오류에 사과하고, 나중에 문화경제학 출간 시 반드시 자세하게 분석할 것을 약속드리며, 아울러 지역 드라마의 분전을 응원한다.)

기자명 우석훈 (경제학 박사·〈88만원 세대〉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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