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육군은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기 위해 함정수사를 벌인다. 육군은 ‘게이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군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접근한 뒤 얼굴 사진 등 신상 정보를 얻어내 ㄱ씨를 체포했다. 그 후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받아 ㄱ씨가 다른 군인과 성관계한 증거를 찾고 강압으로 자백을 받아내 기소했다. 그 후 ㄱ씨와 성관계를 맺은 다른 군인을 체포하고, 그런 식으로 또 체포하는 함정수사를 이어나갔다. 이 사건의 첫 피고인 ㄱ씨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나머지 피고인들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올해 3월에는 해군에서 동성애자 군인을 기소했다. 이 사건의 피고인 ㄴ씨는 상담관에게 병영 생활의 어려움을 상담하며 다른 남성 군인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이야기했다. 상담관은 내담자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상부에 이를 보고했고, 상담은 수사로 전환되었다. ㄴ씨는 합의한 성관계가 처벌 대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바로 자신의 성관계를 인정하고 상대가 누군지도 밝혔다. 해군은 ㄴ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그와 성관계를 맺은 군인들을 색출 중이다.
이 사건들에는 피해자가 없다. 성인 간 합의한 성관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고인들은 대부분 데이팅 앱을 통해 모르는 사람을 만났다. 군대가 있는 지역에서 또래 남성들은 대체로 다른 군인이기에 군인 간 성관계를 갖게 됐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헌법재판소 논리에 따르면 두 군인의 섹스가 피해를 주는 대상은 다름 아닌 국가다. 헌법재판소는 동성 군인 간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해야 하는 이유로 ‘건전한 성 군기’를 든다. 군영 내에서 한 행동도 아니고 개인 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한 행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행위가 과연 성 군기를 얼마나 어떻게 위협한다는 걸까. 동성애를 색출하겠다면서 함정수사를 벌이며 인력을 낭비하는 게 ‘군기’에 더 큰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닌가(참고로 동성애자 함정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은, 공관병에게 음식을 집어던지고 영하의 온도에 발코니에 가둔 박찬주 대장 부부에게 구두 경고만 했다).
확실히 하자. 이건 동성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헌법의 문제다. 동성애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문제다. ‘군인으로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제92조 6항에 대해 논의할 때 쟁점은 국가가 잠재적 위협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없는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형제복지원이나 홀로코스트 사건과 유사
부랑인이라는 의심만으로 감금되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특정 정체성 집단을 잠재적 위협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경우와 유사하다. 군형법 제92조 6항 폐지 논란은 동성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들은 공익과 개인의 기본권, 형사법의 한계와 같은 우리 헌정 질서의 기본에 대한 질문이다. 당신이 형제복지원과 홀로코스트에는 반대하지만 ‘어쩐지 그래도 군형법 제92조 6항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 마음속 잣대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흐려진 것이다. 무엇보다 군형법 제92조 6항은 국가와 국가조직이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한 의심만으로 한 개인의 권리를 빼앗을 수 있는 조항이다. 군형법 제92조 6항을 폐지하는 것은 국가에 맞서 국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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