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면서 10대가 ‘미디어 프로슈머’로 각광받고 있다.
조선일보에 ‘김대중 칼럼’을 쓰는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평가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김 고문의 칼럼도 영향력을 잃었다. 정부 정책은 그의 칼럼과 반대로 진행되었고 그는 보수적인 독자들을 위무하는 데 그쳤다.

결국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권좌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MBC TV 〈100분 토론〉을 진행하는 성신여대 손석희 교수에게 넘어갔다. 이 변화는 신문에서 방송으로 ‘언론 권력’이 넘어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해석되었다. 손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했다.

‘언론 권력’의 이동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촛불집회가 본격화되면서 또 한 번 굴절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다음 아고라 토론게시판을 통해서 ‘서민 논객’으로 떠오르며 누리꾼의 인기를 얻었다. 인기 논객이 글을 올리면 ‘아고리언’들이 추천(혹은 반대) 단추를 눌러서 글이 ‘아고라 베스트’에 오르도록 만들어 수만~수십만 명이 읽게 만들었다.

경제 논객 ‘미네르바’의 등장은 ‘언론 권력’이 신문에서 방송을 거쳐 인터넷으로 옮아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였다.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지 않고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고도 그는 ‘국민 논객’으로 떠올랐다. 그를 ‘사이버 세계의 미륵’으로 추앙하는 누리꾼들은 그가 올리기만 하면 각종 게시판과 커뮤니티에 그의 글을 퍼날랐다. 

진입 장벽이 없는 인터넷에는 제2, 제3의 ‘미네르바’가 출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10대가 될 수도 있다. 미디어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과 ‘대형 사건’이라는 두 개의 조건이 충족될 때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다음 아고라나 블로그, 인터넷 생방송 같은 뉴미디어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촛불집회를 이끈 10대는 ‘뉴미디어의 강자’가 될 만한 필요조건을 만족하고 있다. 이미 10대는 ‘뉴미디어의 강자’다.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서 인기 논객으로, ‘블로그스피어(커뮤니티나 소셜 네트워크 구실을 하는 모든 블로그의 집합)’에서 파워 블로거로,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자로, 인터넷 생중계 사이트의 인기 BJ(Broadcasting Jockey)로 맹활약하고 있다. 또 하나의 ‘미네르바 신화’를 만들고 있는 10대들을 만나보았다.

탄핵 청원으로 촛불 키운 ‘안단테’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이·효순이 추모 촛불집회를 제안한 사람은 ‘앙마’라는 누리꾼이었다. ‘혼자라도 촛불을 들겠다’라는 그의 제안이 한 톨의 밀알이 되어 촛불의 바다를 이뤄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촛불집회에는 ‘안단테’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에 누리꾼 140여 만명이 서명하면서 촛불집회의 기폭제가 되었다.

‘안단테’가 탄핵 청원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 추진했던 영어 몰입식 교육이었다. 그는 “영어 몰입식 교육에 굉장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BBK 사건도 그렇고, 인수위도 엉망이고, 누리꾼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기에 대통령이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누리꾼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선거법 개정 청원을 하는 등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안단테’는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 자신도 그냥 하나의 촛불로 남고 싶다며 구체적인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청소년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언론 소비자 운동에도 관여한다. 그는 “Say-No(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모임)와 ‘언론 소비자 주권 캠페인’과 관련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수 논객에서 전향한 경민규군

경민규(The Soas)군은 ‘안단테’의 반대편에서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며 아고라 토론전에 참전했다. 그는 “보수적인 대구에서 자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 어른들이 ‘노무현이 임기 중에 잘한 게 있다면 쌍꺼풀 수술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여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보수를 대변하는 ‘키보드 워리어’로 활약했다.

그러나 경군은 토론을 하면 할수록 점점 밀리자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고라에 오른 글을 읽으면서 자기가 알고 있던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촛불집회에도 참여한다. 그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휴대전화 저장 목록이 두 배가 되었다. 늘어난 번호는 모두 촛불집회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전국청소년학생연합(전청련) 1기 대구지부 지부장을 맡은 ‘애교만쩜수아’ 형 등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정장원군(위)의 블로그 ‘나비효과의 Focus’에는 정권 실세와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글이 많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아고라라는 전장에서 기동전을 펼치던 그는 요즘은 블로그라는 진지를 구축하고 진지전을 벌인다. 이런 그의 활동을 가장 적극 후원하는 사람은 바로 386 세대인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그에게 “계속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고등학교 때는 더 풀어주겠다. 전교 꼴찌를 해도 좋다”라고 말했다. 

논쟁 덕에 성적 오른 이준희군

논쟁을 좋아하는 그는 친구들과도 시사 이야기를 즐긴다. 촛불집회 전까지 그런 그를 이상하게 보던 친구들이 요즘은 더 적극적으로 되었다. 그는 “관심 없던 친구들이 요즘은 ‘민영화는 우리 집에 피해를 주니 절대 안 된다. 대운하는 도대체 뭐 하려고 하는 거냐, 국민의 세금 낭비 적당히 해라’라면서 정부를 열심히 비판하고 있다. 촛불 이후 많이 변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민규군처럼 보통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가한 10대들은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준희군은 예외였다. 그는 촛불집회 때문에 오히려 성적이 올랐다. 오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성적이 더 떨어질 수 없을 만큼 바닥이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학을 가고 싶다는 목표가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이군은 학교 생활에 별 관심이 없었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문제 없는 문제아’였던 셈이다. 그러다 지난해 말 정치 과목 수업 시간에 갑자기 온몸에 수백 볼트 전기가 흐르는 경험을 했다. 갑자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샘솟았다. 

그런 이군이 찾아간 곳이 바로 다음 아고라였다. 그때를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회와 또 다른 사회가 펼쳐져 있었다. 이런 공간에서 내 생각을 내비춰보겠다는 생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올리자 ‘오늘의 토론’에 오르게 되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개인 생중계 사이트 〈아프리카〉에서 인기 BJ로 활약 중인 황아름양.
공부에도 탄력이 붙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은 바로 향학열로 바뀌었다. 그 덕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꿈도 못 꾸었던 대학에 안전하게 들어갈 만큼 높은 수능 점수를 받았다. 학교 선생님들도 그를 인정해주었다. 그는 “선생님들이 나중에 꼭 정치인이 되라며 추천해주신다. 내 미래에 자신감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미 그는 정치를 시작했다. 그의 맞상대는 자기가 사는 동네의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이었다. 그는 촛불집회를 폄훼했던 김용태 의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강하게 항의했다. 여러 차례 여러 사안에 대해 조목조목 항의하는 이군의 글에 답하다 지친 김 의원이 면담을 요청했다. 

‘맞장 토론’을 하겠다고 잔뜩 벼르고 찾아간 이군을 김 의원은 어르고 달랬다. 이군은 “김용태 의원이 자신이 살아온 얘기도 하고 책도 주면서 친하게 지내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포섭 작전’은 실패했다. 그는 “만나고 나니까 나와 김 의원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때 인기를 끌기 위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에 대한 글을 주로 쓰던 그는 요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데 집중한다. 이군은 “내 글에는 ‘고3이 본’ 이라는 구절이 제목에 꼭 들어간다.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어른들 글을 읽어보면 다 그 말이 그 말이다. 나만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군은 자신이 쓴 글 말미에 이메일 주소를 남겨서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전청련 카페와 ‘안티이명박’ 카페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요즘은 자신의 블로그와 토론 사이트 ‘서프라이즈닷컴’에서 주로 활동한다. 그는 “객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서 조·중·동 등 보수 일간지와 한겨레·경향 등 진보 신문을 함께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10대 미네르바’로 불리는 정장원군

아고라에서 활동하던 ‘10대 미네르바’들이 블로그에 둥지를 틀면서 블로거로서 가장 활약이 돋보이는 10대는 정장원군(블로그 ‘나비효과’)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까다로운 대학원생처럼 글을 쓰는 정군은 고등학생이다. 그것도 1학년이다. 작은아버지가 유명 언론인인 그는 요즘 작은아버지보다 더한 유명세를 인터넷에서 누리고 있다. 

그가 〈PD수첩〉 왜곡 논란을 제기한 번역가에 대해서 쓴 글과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의 성차별 발언에 대해서 쓴 글은 수만명이 읽었다. 특히 나경원 의원에 대한 글은 나 의원이 이전 ‘자위대’ 관련 행사에 참여하고 오리발을 내미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문제 발언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정군은 “블로그는 나에게 해방구다. 나는 ‘날이 선’ 사람이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발달해 있다. 꼴불견이나 부정은 웬만해선 참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자제했던 것을 블로그에 푼다”라고 말했다. 정군이 올겨울 날을 세울 대상은 한나라당 지도부다.

이준희군(위)은 아고라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현직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 따지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정군의 장래 희망은 기자다. 그는 “맛깔나는 클로징 멘트를 던지는 신경민 앵커 같은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2004년처럼 보수화된 MBC의 기자는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되려는 정군은 언론 문제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에는 조선일보 휴대전화 뉴스 서비스에 성인광고가 뜨는 것을 고발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조선일보 측에서 삭제 요청을 해 블라인드 처리(글 내용이 보이지 않게 처리)가 되기도 했다. 

그가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이유는 남다르다. 그는 “내가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념 성향 때문이 아니다. 기회주의적인 자세가 싫다. 미국산 쇠고기 보도가 지난해와 올해 내용이 다르다. 황우석 사태로 MBC에 광고가 끊길 때 당연한 일이라고 좋아하더니 올해 조선일보에 광고가 끊기자 소송을 걸어왔다. 이런 기회주의가 싫다”라고 말했다.

10대가 뉴미디어에서 강점을 보이는 것은 적응력이 높다는 점 때문인데, 정군의 경우가 그렇다. 유명인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겪는 성장통은 바로 ‘악플(악성 댓글)’이다. 그러나 정군에게는 이런 ‘악플’이 반갑다. 그는 “욕설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게 웃어넘기고 꼬박꼬박 덧글도 달아준다”라고 말했다.

‘소통의 달인’ 황아름양

‘1인 미디어’로 활약하는 10대가 정장원군처럼 날을 세우고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는 것만은 아니다. 개인 인터넷 방송 사이트 ‘아프리카’에서 BJ 황아름양처럼 기분 좋은 소통을 도모하는 10대도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3인 지금까지 거의 매일 방송을 한 황양은 이제 ‘소통의 달인’이 되었다. 

보통 3~4시간 정도 방송을 하는 황양의 ‘알미 TV’에는 매일 200~300명이 들어온다. 황양은 “방송을 보는 사람은 대부분 20대 오빠 팬들인데,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봐주는 열혈 팬도 있다. 이분들 덕분에 방송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만 하고 말려다가도 아쉬워하는 분들 때문에 매일 무리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황양은 다른 10대 BJ들과 교류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방송에 출연하는 등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그녀는 “분위기가 좀 가라앉았다 싶으면 필살기인, 일명 ‘뿌잉뿌잉’이라고 불리는 볼살 늘리기로 승부수를 건다. 계속 방송을 하고 싶고 여행방송 같은 전문 방송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뜸해진 이후 사이버 공간도 다소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10대 미네르바’들은 활발히 의견을 개진한다. 특히 요즘은 ‘금성 교과서로 근현대사 공부해 대학 가는 학생입니다(kimyoubin11)’ ‘성적순으로 고등학교 회장 추천 말이 되나요?(김삿갓)’ ‘학원 교습 24시간 허용!!! 학생들 죽이는 일이다!!!(바이올렛)’ 등 자기들과 직접 관련된 사안에 대해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역사 교과서 개정과 관련해 김유빈군은 “금성 교과서를 보면 북한은 이미 분단에 대비해 건국 준비를 다 해놓고 남한이 총선거를 실시하자 옳다구나 하면서 선거를 실시했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좌빨’ 교과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극우 역사 강의를 비판하며 “내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동생이 김구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로, 위안부 할머니는 매춘부로 생각할까봐 끔찍하다”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토론 사이트 등을 통해 활발히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10대는 20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아고라 논객으로 활동하는 대학생 변홍균씨(아이디 ‘이웃소년’)는 “정치·사회에 대한 대학생들의 무관심이 워낙 심한 터라, 같은 대학생과는 소통이 잘 안 된다. 오히려 10대와 소통이 더 잘 된다. 8월 명동성당에서 본 열여섯 살 중3 여학생이 있는데, 저 멀리 경북 영주에서, 그것도 여러 번 올라왔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겨울방학이 가까워지면서 ‘10대 미네르바’들이 서서히 날개를 펴고 있다. 지난 11월28일, 10대의 활동 중심지였던 ‘10대 연합’의 부활을 알리는 글이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왔다. ‘무능한 이명박 정권 퇴진운동을 전개한다’고 선언하며 12월31일 밤 종각에서 촛불을 들고 다시 모이자고 호소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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