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1990년대 말을 풍미한 만화 〈광수 생각〉의 그 광수가 아니다. 극우 인사 지만원씨가 말한 ‘광주 북한군 특수부대’를 줄여서 ‘광수’라고 한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가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만원씨는 “광주 사태는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일으킨 폭동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공청회에서 광주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의원 제명 정도가 아니라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까지 나온다. 북한군 개입설은 학살을 저지른 전두환씨도, 현장에 가서 취재한 조갑제씨도 부정하는 황당한 주장이다. 지만원씨 등이 수년째 퍼뜨려온 음모론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이 음모론의 증거가 사진이라고 한다. 지씨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찍힌 사진을 수집해 북한 사람들 사진과 비교 분석한 뒤 북한군 600명을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명칭을 붙인 게 ‘광수1’ ‘광수2’ ‘광수3’… 등이다. 북한군 사진이 모자랐는지 평범한 북한 인민이 등장하고 탈북자 54명까지 동원됐다. 지씨는 광수 사진을 찾는 기법으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가정보원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관에서 사용하는 ‘3D 분석 시스템’을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사진가로서 나는 지만원씨가 2D인 사진을 왜 3D까지 동원했는지도 의문이다. 그가 사진을 증거라며 악용하는 까닭이 있다. ‘사진은 사실이다’라는 대중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사진은 발명 초기부터 증거능력을 인정받았고, 그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사진이 사물의 진실에 가깝다고 믿게 했다. 그래서 사진은 종종 권력자들에 의해 조작되고 변조되어 진실을 왜곡했다. 그렇다면 지만원씨도 사진을 조작했을까? 그건 아니다. 훨씬 더 교묘한 장치를 활용했다. 파레이돌리아 (Pareidolia)라는 현상이다.
‘화성의 얼굴’ 같은 사진 음모론
아마도 수십 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사진 음모론 중 하나가 ‘화성의 얼굴’일 것이다. 1976년 화성 탐사선 바이킹 1호가 처음 촬영한 화성 언덕 사진이 인간의 얼굴과 닮아서, 화성에 존재하던 고대 문명이 이를 새겨놓았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퍼졌다. 물론 아니다. 음모론자들의 요구에 결국 나사(NASA)는 정교한 3D 사진을 공개했고, 이는 사람 얼굴과 전혀 닮지도 않았다. 이런 믿음의 배경은 상관없는 사물의 형태 속에서 의미 있는 무엇을 발견하려는 인간 뇌의 작용인 파레이돌리아 현상 때문이다.
지씨는 5·18 시민군과 북한 사람의 얼굴 사진에서 비슷한 부위를 지목해, 얼굴 전체가 비슷하다고 인지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음모론이 문서 증거보다 사진 증거를 더 선호하는 것은 이렇게 대중을 속이기 쉽기 때문이다. 지씨처럼 허술한 사기극에 국회의원들까지 넘어가는 데에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유튜브의 시각적인 세뇌도 한몫했다. 지금도 유튜브를 검색하면 북한군 개입설을 담은 동영상 등이 엄청나게 공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씨 탓에 사진은 거짓말쟁이가 됐다. 아마 열 받은 사진이 그에게 당장 명예훼손 소송이라도 걸고 싶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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