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인근엔 골목마다 한복 대여점이 들어서 있다. 그중 한 군데를 찾았다. 한복이 사이즈별로 수십 벌 걸려 있는 옷걸이와 탈의실, 외국인과 외국어를 지나자 작은 스튜디오가 나왔다. 김준연 작가는 여기서 사진을 찍는다. 한복 입은 관광객을 찍어줄 때도 있고 커플과 가족의 화보 촬영도 한다. 언젠가, 탈북자 출신이 이곳을 찾았다. 그가 열두 벌을 갈아입었다.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보낼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일반 사진은 반입이 어렵지만 달력으로 만들어 보내면 괜찮다고 했다. 말투가 좀 달랐지만 사투리 정도의 이질감에 불과했다.

김준연 작가는 북한에 가본 적이 없다. 언덕에 오르면 북한이 보이는 경기도 파주에서 일한 적은 있다. 출판 편집자로 일할 때였다. 그가 북한어에 관한 책을 냈다. 〈북한 여행 회화〉. 부제는 ‘어느 여행자의 북한어 공부’다. 가보지 못한 곳의 말과 글을 공부하고 상상력을 보탰다. 여행지 회화를 다룬 책과 비슷한 구성이다. 북한을 여행하게 되면 나눌 법한 대화를 상황별로 담았다. 식당을 배경으로 남한과 북한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가 나오고 냉면을 무게 단위로 주문하는 북한의 문화와 언어 특성을 서술하는 식이다. 작가의 해외여행기도 곳곳에 녹아 있다. 북한어의 띄어쓰기, 신조어, 외래어 정책 등이 어렵지 않은 글 속에 담겨 있다.


ⓒ시사IN 이명익

김준연 작가는 여행을 다니며 수십 개 국경을 육로로 통과했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그때마다 ‘국가는 국가에 대해 국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적국으로 상정되는 다른 국가가 없다면 국경이라는 개념도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남과 북 사이에 놓인 국경을 희미하게 만들기 위해 세계 속에 위치한 우리의 모습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언어를 이해하는 일은 그 과정 중 하나다. 작가는 언어를 통해 북한이라는 국경을 넘는다.

여행기를 담은 책을 보면 ‘무작정’이란 단어가 자주 앞에 붙는다. 서사도 정해져 있다. 좋은 회사를 다니다 무작정 그만두고 무작정 출발해 여행을 다니며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작가가 보기엔 여행자들이 ‘무지한’ 상태로 여행하며 무지한 일을 많이 저지르는 것 같았다. 라오스에서 버스를 탔는데 스님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한 외국인이 옆자리 현지인에게 붙어 앉지 않는다며 뭐라고 했다. 그곳 스님들에게는 수행 중일 때 여성과 몸이 닿으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쿠바에 갔을 때도 일행 중 한 명이 화폐 제도가 두 개라 불편하다고 투덜거렸다. 경제 체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우리가 언젠가 북한을 여행하게 되면 비슷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 부른다고?

“동무, 려권 내라우.” 익숙한 북한말처럼 들린다. ‘합네다’체도 마찬가지다. 책의 감수를 맡은 탈북자 출신 허서진 새솔교육센터 원장은 북한에선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표준어 격인 문화어를 쓰는 주민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문장으로 뜻을 표현한다. 당장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는 북한 드라마를 봐도 알 수 있다. 어딘지 우스꽝스럽게 소비되는 북한어의 억양과 발음에 어느새 익숙해졌다.

북한 주민들은 북한어가 남한 말에 비해 전통을 지키고 순우리말에 가깝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탈북자들 역시 남한에 와서 외래어로 인한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영어에서 유래한 외래어를 접할 때 환멸감까지 느낀다고. 그런데 실제 북한의 외국어 어휘에는 러시아어보다 영어가 많다. 그런 줄 모르고 쓰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에스키모’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북한어 역시 띄어쓰기나 외래어 표기법이 바뀌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스튜디오에는 그가 갔던 여행지의 사진이 많이 걸려 있었다. 피라미드, 타지마할, 우유니 사막 등을 배경으로 그을린 작가의 얼굴이 보였다. 40여 개 나라를 다녔고 최근에도 뉴질랜드에 다녀왔다. 어딜 가든 사진과 요리 실력 덕에 일행을 잘 만드는 편이다. 책에는 재작년에 다녀온 쿠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북한이 곧 가닿게 될 모습 같았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지만 점점 개방되어가고 있는 풍경이 그랬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쓴다는 게 쉽지 않았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으며 가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공부하는 심정으로 썼다. 모자이크하듯 자료를 모으고 편집했다. 국회도서관에 있는 실제 북한 책을 참고하고 논문을 찾았다. 양각도국제호텔을 묘사하기 위해 전 세계 호텔을 모아둔 숙박 예약 사이트를 참고했다. 사진을 통해 식당과 연회장 같은 구조와 객실의 밍크담요와 일회용 슬리퍼 등을 재구성했다. 북한 사회상에 대한 자료는 관점에 따라 내용의 편차가 컸다. 북한에 실제 다녀왔다는 이들의 책이 최악인 경우가 많았다. 겁에 질려 바로 곁에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신의 오해나 상상을 실제라 믿으며 편견을 재생산했다. 공부하며 오해를 바꿔나갈 수 있었다. 페미니즘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해야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의 두 번째 책이고 이번이 첫 번째 인터뷰였다.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김준연 작가는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기 위해 한국어교원자격증을 땄다.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학비를 버느라 우연히 잡지사 편집기자가 되었고 그 길로 편집자가 되었다. 출판사에선 10년 정도 일했다. 잡지, 국어 교과서, 단행본 등을 다뤘다. 저자들을 ‘모셔야 하는’ 자리가 성정에 맞지 않았다. 그만둔 뒤 대학원을 마저 졸업하고 기간제 교사직을 찾았지만 잘 안 되었다. 출판사에 있을 때부터 작가 프로필 사진을 많이 찍었고 스튜디오 일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작가가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대학 선배이자 출판사 동료였던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의 제안 때문이었다. 강원도 속초에 한 달 머물며 강원도에 정착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책으로 냈다. 작가라는 생각보다 편집자 시절의 경험을 살려 여러 편의 보도자료를 쓴다는 생각으로 했다. 다만 마감은 빨랐다. 미루다 주는 글이 좋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박 대표에게 두 번째 책을 제안받았을 때는 의아했다. 국어학을 공부했으나 깊이를 자신할 수 없었다. 처음엔 관련 분야 전공자를 추천했다. 대표에 대한 믿음으로 이번 책도 냈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받아주겠지,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편집자라는 자리는 저자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하니까 사실 박 대표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표지 디자인도, 본문 일러스트도 모두 출판사 때 맺은 인연의 도움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김준연 작가는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토바 호수가 있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오지를 눈여겨보았다. 물가가 싸고 경치 좋은 그곳은 아주 덥지도 않다. 일주일 있으려다 한 달 머물렀던 그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사는 상상을 한다.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첫 책을 낸 뒤 그는 작가 소개에 ‘가능하면 여러 갈래로 난 샛길들을 함부로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소개했다. 편집자도, 사진가도, 작가의 길도 그렇게 걸어온 참이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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