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장자연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경찰은 ‘장자연 리스트’ 수사에 착수했다. 정작 문건에 명시된 ‘조선일보 방 사장’에 대한 조사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피의자로 한 번 조사했다. 조사는 2009년 4월23일 조선일보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35분간 진행됐다(아래 사진의 문건 〈1〉 〈2〉). 경찰이 중간수사 발표를 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방상훈 사장은 장자연씨와 기획사 대표 김종승씨를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후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방상훈 사장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장자연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시사IN〉에 “(조선일보는) 주요 타깃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장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조선일보 방 사장이 누구인가’에 전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터라 예상 밖의 설명이었다. “증거가 없었다. 방상훈 사장과 김종승씨가 서로 모른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김종승 핸드폰을 조사했는데 통화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압수한 김종승 대표의 스케줄 표에서 ‘2008년 7월17일 조선일보 사장 오찬’이라는 메모를 발견했다. 수사의 초점은 메모 속 인물로 모아졌다. 경찰은 2008년 7월 김종승과 만난 ‘조선일보 사장’이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2008년 9월 접대한 조선일보 방 사장’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벌였다. 방상훈 사장은 경찰 조사에서 당일 LG상록재단의 오찬 모임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근거 자료를 내고, 방상훈-김종승 통화 기록도 나오지 않자, ‘조선일보 방 사장’ 찾기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2009년 경기경찰청장으로 장자연 사건 수사를 지휘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조선일보로부터 수사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조 전 청장은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시사IN〉 제570호 ‘전 경찰청장은 왜 1등 신문과 싸우나’ 기사 참조). “당시 이동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조선일보를 대표해서, 청장님께 입장 전달하러 왔다. 지금 왜 자꾸 방상훈 사장이 거론되냐.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하고 한번 붙자는 거냐’고 했다.” 이에 대해 이동한 현 조선뉴스프레스 대표는 조 전 청장을 만난 사실이 없고 협박한 적도 없었다고 검찰 과거사위에 진술했다.

조선일보 쪽은 스포츠조선 사장을 지낸 ㄱ씨를 장자연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몰아갔다. 2011년 3월 조선일보는 ‘장자연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 평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부른 게 오해 불러’라는 보도를 했다. 2009년 수사 당시 ㄱ씨는 ‘2008년 7월17일 조선일보 사장 오찬’에 관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다른 지인들과 식사를 한 영수증이 나왔다. 그는 “2008년 7월17일 김종승과 약속을 잡은 적 없다. 그날은 한 식당에서 일행 2명과 식사를 했으며 스포츠조선 법인카드로 내가 결제한 영수증을 경찰에서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ㄱ씨는 조선일보 사주 일가가 아니며 성도 ‘방’씨가 아니다.

한 아무개씨를 경찰에 보낸 사람은 누구?

9년이 흐른 지난해 12월 검찰 과거사위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를 소환했다. 방용훈 사장은 방상훈 사장의 동생, 방정오 전 대표는 방상훈 사장의 아들이다. 검찰 과거사위는 두 사람이 각각 장자연씨와 동석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9년 이미 수사기관은 방용훈 사장이 2007년 10월 서울 청담동 중식당 이닝에서 장자연씨를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방정오 전 대표는 2008년 10월28일 청담동 룸살롱 라나이에서 장자연씨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통신 기록이 나왔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방용훈 사장을 조사하지 않았다.

ⓒ연합뉴스2009년 3월16일 경찰이 ‘장자연 리스트 사건’ 수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방용훈 사장, 방정오 전 대표가 장자연과 함께한 자리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이 있다. 광고업체 대표 한씨다. 한씨는 방용훈·방정오씨가 장자연씨와 만나는 자리에 각각 동석했다. 한씨의 딸은 조선일보 기자다. 2009년 장자연 리스트 사건 당시 관련 기사를 쓰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를 잘 아는 스포츠조선 전 사장 ㄱ씨는 “한은 조선일보 사주 일가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1992년부터 하고 있는 전광판 광고 사업에 방용훈 사장이 도움을 줬다. 방용훈 사장의 집사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한씨는 방용훈 사장의 개인 약속을 주선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방용훈 사장이 나랑 약속을 잡을 때도 방 사장이 아니라 한씨가 연락했다.” 방정오 전 대표와 김종승 대표에게 연락해 2008년 10월28일 룸살롱 라나이 술자리를 주선한 사람도 한씨다.

2009년 4월15일 참고인으로 한 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한씨는 얼마 후 경찰에 자진 출석했다. 경찰 중간수사 발표가 예정된 4월24일 새벽 0시15분이었다(위 사진의 문건 〈3〉). 이 조사에서 한씨는 “김종승 스케줄 표에 나온 ‘2008.7.17 조선일보 사장 오찬’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아니라 전 스포츠조선 사장 ㄱ씨”라고 진술했다. 한씨는 경찰 출석 이틀 전 4월22일 일본에 있는 김종승 대표와 통화를 했다며, “김 대표가 말하길 ‘자신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모르며 2008년 7월17일 만나기로 한 사람은 스포츠조선 사장 ㄱ씨’라고 했다”라고 진술했다.

당시 수사팀의 한 경찰 관계자는 〈시사IN〉에 그날 한씨 조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음 날 중간발표라 저녁에 회식 겸해서 밥 먹고 고기 먹고 그러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누가 조사받고 싶다고. 그래서 미쳤냐고 했다.” 이 경찰 관계자는 “조선일보가 보냈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늦은 시간 찾아와 이틀 전 통화 내용을 알리는 이유”를 묻자 한씨는 이렇게 답했다. “김종승의 변호사가 저에게 진술을 부탁했다. ‘김종승이 사실관계를 확인해준다고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 발언은 당시 경찰 조서에 남아 있다.

석연찮은 방문과 관련해 최근 검찰 과거사위 조사에서 한씨는 새로운 진술을 했다. ‘경찰서로 가라고 권유한 건 김종승의 변호인이 아니라 강효상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장(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의원)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한씨는 “2009년 4월23일 밤 강효상한테 전화가 왔다. 경기청에 가서 방상훈 사장이 장자연과 무관하다는 말을 해달라고 했다”라고 진술했다.

강효상 의원은 당시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장으로 장자연 문건과 관련해 대응을 했다. 이에 대해 강효상 의원은 〈시사IN〉의 공식 질의에 “근거 없는 루머에 대해선 취재를 거부한다. 사실 확인 없이 저에 대한 명예훼손이 있을 경우 법적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연희·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