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16일 선영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동안 뒤쪽에 서 있는 형 노건평씨. ⓒ연합뉴스

고강도·전방위·저인망·동시다발·먼지털이·투망식…. 검찰의 전 정권 실세에 대한 수사는 온갖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서울지검 특수부 등 검찰이 총출동해 8개월 넘게 진행한 공기업 비리 수사 성과는 미미했다. 감사원·국세청·금융감독원 등 관계 기관을 총동원해 공조를 벌였지만 검찰이 의도하던 전 정권 실세 정치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론스타 사건 이후 2년 만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직접 칼을 빼든 석유공사 수사와 강원랜드 수사에서 건진 것은 거의 없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벌인 KT·KTF 비리 수사, 신성해운 세무조사 로비 수사, 그랜드코리아레저 비리 수사, 부산자원 특혜대출 수사, 서울 서부지검의 프라임그룹 비자금 수사, 서울 남부지검의 애경그룹 수사, 대전지검의 VK 수사…. 전 정권을 향해 계속되는 사정 칼날은 매서웠지만 손에 쥐는 성과물은 거의 없었다. KTF 수사 과정에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수사 성과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장 기각·무죄 판결 잇따라

그나마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영장이 기각되거나 무죄 판결이 잇따랐다. 법원은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교직원공제회 김평수 전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연달아 기각했다. 홍경태 전 청와대 행정관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신성해운 로비 의혹으로 기소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도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관광공사의 자회사 그랜드코리아레저 간부 김 아무개씨와 석유공사 간부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수사력과 정치적 중립성을 동시에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보수 언론에서는 일제히 검찰의 수사력을 비판하고 나섰다. 검찰은 정연주 전 KBS 사장과 MBC 〈PD수첩〉 제작진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도 효성·한국타이어 등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기업의 의혹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러자 ‘검찰이 형평성을 잃고 정권에 유착한다’는 국민의 비난이 높아만 갔다. 검찰 국감장은 ‘정치 검사들이 전 정권 죽이기에 총동원됐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전 정권과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차례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국민은 현재 검찰 기업수사를 편파·보복 수사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국감장에 나온 임채진 검찰총장은 “총장 취임 후 어떻게 하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을까를 가장 큰 화두로 뒀고, 어떤 경우라도 특정 정치세력을 표적으로 수사한 적이 없다”라며 기획사정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의 한 간부는 기자에게 “정권이 끝나면 전 정권 비리 수사가 한동안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검찰 수사가 정치적이라는 비판에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인저리 타임에 터진 ‘노건평 사건’

수사 초기 창대했던 거물 정치인 연루설은 수사가 진척될수록 미미해졌다. 검찰은 게이트로 불릴 만한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이번에는 여당에서도 검찰을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 10월20일 국감장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임채진 검찰총장을 삼성의 떡값 검사로 지목하고 마구 흔들었다. “노무현 정권과 좌파단체 수사에 소극적인 이유가 뭐냐” “촛불 수사에 미온적이었다”…. 한나라당 다른 의원도 ‘참여정부 때 임명됐으니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검찰총장을 압박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지난 8월25일 한국 법률가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임채진 검찰총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대구 출신인 청와대 한 관계자는 “검찰이 소리만 요란했지 한 일이 없다. 검찰총장은 국정원장과 함께 ‘개각 0순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검찰 주변에서 후임자 이름이 계속 나왔다. 총장 부인까지 나설 정도로 검찰총장은 외로운 처지였다”라고 말했다. 검찰청의 한 검사는 “정권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의 목줄을 잡고 흔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이보다 어떻게 더 잘하냐’는 푸념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검찰총장은 외롭고, 검찰의 전 정권에 대한 수사는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검찰이 던진 무수한 소나기 펀치 가운데 한 방이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66)에게 터졌다. 농협이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데 노건평씨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 정보기관 간부는 “건평씨 이름이 나오자 임채진 총장 교체설이 ‘쏙’ 들어갔다. 수사 결과는 어찌되든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세종캐피탈은 부실한 세종증권을 팔아야 했다. 세종캐피탈 측은 정대근 당시 농협 회장을 상대로 한 로비에 실패하자 정 전 회장과 친분이 있는 노건평씨를 소개받았다. 둘은 3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였다. 검찰은 2005년 4월 홍기옥 세종캐피탈 대표로부터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은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창 정화삼씨(구속)와 동생 정광용씨(구속)가 그해 6월 노건평씨를 찾아갔다고 밝혔다.

지난 11월2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씨는 “정화삼씨 동생과 홍기옥 세종캐피탈 대표가 찾아와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기에 다음날 정대근 농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가까운 데 사는 사람이 연락할 테니 말 좀 들어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11월26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2005년 5, 6월쯤 정화삼씨가 전화를 세 번쯤 했다. 정광용씨가 봉하에 찾아와서 커피도 한잔 했다. 그 후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을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에게 소개해달라고 해 소개해줬다. 이것이 잘못됐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 대가로 단돈 10원짜리 하나 받은 사실이 없다.”

이로부터 7개월 뒤인 2006년 1월 농협은 세종증권을 1039억원에 인수한다. 거래를 성사시킨 대가로 세종증권 측은 증권사를 인수한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 50억원을 주었다. 로비에 성공한 대가로 정화삼씨 형제는 홍기옥 대표로부터 29억6000만원을 받았다.
 

ⓒ뉴시스10월24일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정화삼 전 제피로스 골프장 대표(가운데).

검찰 관계자는 “세종증권 김형진 회장이 정화삼씨에게 간 30억원 중 일부는 건평씨를 보고 준 것이라고 진술했다. 노씨 계좌에 대한 추적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건평씨 사건을 지휘하는 최재경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기자 브리핑에서 “정씨 형제가 여러 차명계좌로 쪼개 관리한 30여 억원의 사용처를 상당 부분 확인했는데, 그 중 일부로 경남 김해의 상가 점포 한 곳을 매입했다”라고 말했다. 최 기획관은 지난해 대선 직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내면서 ‘BBK 사건’을 지휘한 인물이다.

건평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할 듯

정화삼씨는 29억6000만원이 든 통장을 건네받아 사위인 이영수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관리를 맡겼다. 이씨는 이 돈을 여러 개의 통장에 쪼개서 관리했고, 경남 김해시 내동 상가를 샀다. 이 상가에는 2006년 7월7일 홍 대표 명의로 채권최고액 5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됐다. 검찰은 이 건물이 ‘노씨의 몫’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근저당 설정은 건물을 담보로 잡았다는 의미다. 정씨 형제나 이씨가 임의로 팔 수 없도록 한 것은 노씨의 안전장치라고 보고 증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물을 근저당한 것이 노씨 소유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서류에는 노씨 이름도 없다. 세종증권 관계자 진술 이외에 ‘김해상가=노건평 몫’을 입증하는 증거와 정황은 뚜렷하지 않다. 노건평씨는 물론 정화삼씨 형제도 이 건물이 건평씨와 관계가 없다고 진술했다. 한 경찰 간부는 “검찰이 서두르는 것 같다. 대통령 형이 단속 가능성이 높은 오락실을 했을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상가 취득세와 관리비도 제때 내지 않았는데 차명 재산일 경우 더 확실히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성과는 박연차 회장의 비자금이나 노건평씨의 차명계좌 쪽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뉴시스검찰은 경남 김해시 내동의 C빌딩(위) 1층 점포를 노건평씨가 소유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검찰이 노씨를 소환하면 일단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관계자는 “30억원 가운데 절반은 정씨 형제가 사적으로 썼고 나머지가 건평씨 몫이라는 혐의를 두고 있다. 부르면 (노씨는) 구속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재경 수사기획관은 “구체적인 부분은 말할 수 없지만 (수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 (노건평씨를) 최대한 빨리 조사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경제위기를 검찰의 ‘사정 국면’으로 덮는다?

결국 검찰이 김해 상가의 실질적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즉 노씨가 영업수익이나 상가 임대소득을 챙겼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마지막 승부처다. 만약 오락실 운영 자금이나 임대료의 일부가 노씨에게 갔다면 노씨는 구속을 면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악성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건평씨의 죄질은 노량진 수산시장을 강탈한 전기환씨나 수백억원을 횡령한 전경환씨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구설에 오른 것 자체가 노건평씨를 감독하지 못한 전 정권의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단돈 1원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잘못이 드러나면 검찰이 발표해도 늦지 않다. 검찰이 언론을 내세워 너무 앞서 달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국민소득 1000달러 때의 경영관으로 나라를 경영하려고 하다가 한국만 외국발 금융위기에 취약해졌다. 금융정책의 실패로 인한 경제위기를 검찰의 사정 국면으로 덮고 넘어가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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