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주가연계펀드(ELF)인 ‘우리2스타파생상품KW-8호’ 투자자 217명을 대리해 신아법무법인 이종수· 김장환 변호사(왼쪽부터)가 11월4일 서울중앙지법에 75억원 반환소송 소장을 냈다.
아이디 ‘리엔창룽’이라는 한 누리꾼은 11월1일 ‘펀드스쿨’이라는 다음 카페에 자신의 펀드 성적을 공개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신발 값도 아끼고, 술 값도 아끼고, 맛있는 것도 안 사먹고, 놀러도 안 가고, 정말 안 먹고 안 써서 10년간 모은 전 재산인데… 장가가려니까 걱정된다.” 지난해 3월부터 올 6월까지 중국 펀드 등 10개 펀드에 1억1548만원을 투자한 이 남성이 10월31일 환매했다면 그는 고작 5137만원을 손에 쥔다.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 55.51%에 이르기 때문이다. 특히 10개 펀드 가운데 지난해 3월 가입한 후 몇 차례 추가 불입한 미래에셋 중국 펀드는 원금 합계가 7554만원인데, 수익률은 무려 마이너스 61.82%에 달한다.

문제는 이 누리꾼의 사례가 그다지 특별한 축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펀드 분쟁 및 소송 관련 카페에는 원금이 반토막난 펀드 투자자의 눈물과 회한, 분노에 찬 사연이 넘쳐난다. 그만큼 펀드 피해자가 광범위하게 양산되었고, 손실 폭도 크기 때문이다. 9월 말 현재 펀드 계좌 수는 2444만 개. 전체 인구(지난해 말 현재 4926만명)의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펀드에 가입했다는 얘기다. 4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한 가구당 펀드 두 개씩은 가진 셈인데 이제 펀드 피해는 전국민의 문제로 비화했다.

펀드 투자자들의 분노는 민원 급증으로 발현되었다. 금융감독원 금융민원센터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말까지 접수된 펀드 관련 민원은 지난해(109건)의 6배를 넘는 665건이었다. 2004~2006년에 제기된 펀드 관련 민원은 각각 25건, 69건, 40건에 그쳤다. 특히 올해 전체 민원의 42%인 278건이 10월 한 달 동안 집중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외 주식형 펀드와 파생상품 펀드에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반토막 펀드는 이제 흔한 일이 돼버렸고, 아예 원금이 완전히 날아간 ‘깡통 펀드’까지 등장했다. 깡통 펀드는 ‘개인판 키코(KIKO)’라 불리는 역외펀드에서 주로 발생했는데, 고객에게 금융회사가 선물환 헤지를 하게 함으로써 환율변동 손실까지 추가된 것이다. 원금이 없어진 상태에서 환율 변동에 따른 추가 불입을 요구해 고객과 금융회사 간에 격렬한 마찰을 일으키는 등 역외펀드는 펀드 분쟁의 뇌관이 될 소지가 크다.

불완전 판매 펀드 소송, 봇물 이룰 듯

11월 들어서는 올해 한 달 실적을 하루 만에 갈아치우는 등 민원 제기 속도가 한층 가속페달을 밟는 양상이다. 하루 20여 건에서 100건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폭증 현상은 11월11일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결정이 기폭제가 됐다. 58세인 한 주부가 제기한  ‘우리파워인컴펀드’ 민원에 대해 판매 회사인 우리은행에 고객 손실의 50%를 배상하라는 결정은 사지에 내몰린 펀드 피해자에게 구세주 격이었을 것이다. 김동원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경영지원·소비자보호본부장)는 “은행 직원이 펀드 가입 경험이 없는 고객에게 복잡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 펀드 가입을 권유하면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식으로 말해 원금보장 상품인 예금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설령 자필 서명했다 해도 고객에게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잘못이 인정된다”라고 배상 결정 이유를 밝혔다. 금융당국은 종전에는 고객이 자필 서명했으면 무조건 민원인에게 책임이 있다며 금융기업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송도 갈수록 늘어날 조짐이다. 지난 10월20일부터 24일까지 파생상품 펀드인 ‘우리파워인컴펀드’ 관련 소송이 8건 제기되었다. 소송을 낸 이가 160명에 달한다. 주가연계펀드(ELF)인 ‘우리2스타파생상품KW-8호’에 투자한 217명도 발행회사가 BNP파리바에서 리먼브러더스로 변경됐고 그것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우리CS자산운용과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을 상대로 75억원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11월21일에는 ‘블랙록 메릴린치 월드 광업주펀드’ 등 역외펀드 4개와 ‘JP모건 러시아 주식형’ 등 역내펀드 2개의 투자자 4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판매 회사인 국민은행과 푸르덴셜투자증권이 소송 대상이다.

ⓒ연합뉴스우리파워인컴펀드 투자자(오른쪽)는 기자들에게 은행이 원금 손실 위험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이유로 ‘역외펀드 선물환계약 피해자소송 준비모임’ 회원들도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조기 상환이 중단된 ‘우리2Star파생상품KH-3호’ 투자자들도 조만간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에도 소송의 불똥이 튈 수 있다. 이것은 일반 주식형 펀드에도 불완전 판매 혐의를 둔다는 점에서 금융가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펀드는 투자해 이익이 나든 손실이 나든 투자자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실적배당 상품이다.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도 예외 없이 주가 폭락으로 펀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한국처럼 펀드 피해자가 총궐기하는 양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독 한국에서 금융당국에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비용이 드는 소송까지 불사하는 펀드 투자자가 많다는 것은 펀드 판매나 운용 과정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불완전 판매(Missell ing)’ 시비가 분쟁의 핵심 쟁점이다.

불완전 판매란 은행과 증권사 등이 펀드를 판매하면서 상품 구조와 원금손실 위험을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민원과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들도 주로 이 불완전 판매를 문제 삼았다. 특히 증권사보다 은행이 직격탄을 맞았다. 민원의 60%를 차지한다. 은행에 분쟁이 집중된 것은 펀드의 속성을 잘 모르는 고객 성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

판매자의 전문성을 문제 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은행의 경우 교육을 한 번만 받고 창구에 투입된 초보자가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 펀드를 팔았다는 것이다. 은행 지점별로 펀드 실적을 독려하는 분위기에서는 창구 직원으로 하여금 기대 수익률을 과장하거나 심지어 원금 손실의 위험이 없다는 식으로 고객을 현혹할 유인이 컸으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사IN 윤무영금융감독원 1층에 있는 금융민원센터(위)에는 10월 들어 펀드 관련 민원이 폭증하고 있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금융가에서 불완전 판매는 조만간 터질 잠재 위험에 속했다. 11월12일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이 펀드 불완전 판매에 강경 대처하겠다고 밝혔지만 금융계는 ‘뒷북’이라고 반응했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폭발하기 전에 막았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를 넘을 때 (적립식) 펀드는 한국 주식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으며 전국민 펀드 시대를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펀드 열풍은 한국 증시의 대세 상승이 시작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금리와 맞물려 유동성이 풍부했던 당시 코스피지수는 겨우 500선에 머물러 있어 주식 투자의 매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인구 고령화 이슈도 부각돼 재테크에 관심이 크던 때였다. 이때 적립식 펀드 붐이 일었다. 랜드마크자산운용(현 ING자산운용)에서 출시한 ‘1억만들기펀드’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3억만들기펀드’ 시리즈 등이 전국민을 펀드로 끌어들였고, 2005년 코스피지수가 1000선을 넘어서면서 목돈을 넣는 거치식 펀드까지 크게 늘어났다.

펀드 열풍은 2006년 잠시 주춤했지만, 2007년 들어 해외 펀드로 옮아가면서 ‘광풍’으로 급변했다. 지난해 6월 정부가 환율 방어를 목적으로 해외 펀드에 비과세 조처를 취한 것이 주효했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 2000선을 돌파한 지난해 10월과 11월 펀드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국내외 주식형 펀드로 67조원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이 가운데 3분의 1인 23조원이 이 무렵에 집중됐다. 은행 창구에는 결혼자금에 노후자금, 모아뒀던 적금까지 털어 펀드에 가입하려는 투자자로 장사진을 이뤘으며, 판매 회사는 한층 공격적으로 투자자를 끌여들였다.

펀드 열풍은 수익률이 떨어지던 올해 상반기까지도 수그러들지 않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된서리를 맞았다. 펀드 평가회사에 따르면 11월 초 국내 주식형 펀드는 마이너스 40% 이상, 해외 주식형 펀드는 마이너스 50% 이상 떨어진 상태다. 이로 인해 올해 들어서만 주식형 펀드에서 63조원(해외 주식형 34조원, 국내 주식형 29조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펀드는 전국민이 애용하던 재테크 수단에서 ‘대량살상무기’로 돌변한 셈이다.

분쟁을 제기한 투자자나 금융회사에서 펀드를 어떻게 팔았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펀드 판매회사, 특히 은행 창구에서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판매 행위가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는 혐의가 짙다. 문제는 투자자가 이를 어떻게 입증하느냐에 있다. 펀드는 실적배당 상품이므로 손실이 났다는 이유만으로는 금융회사에 책임을 물을 순 없다. 손실을 배상받으려면 판매 회사나 운용 회사가 명백하게 불완전 판매를 했거나 약관 위반 등 운용상 잘못이 있었음을 법률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성장통’ 되려면 감독 혁신 이루어야

물론 투자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불완전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 판매 창구에서는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뒤에 서 있던 고객이 핀잔을 주는 일까지 생길 만큼 ‘묻지마 투자’가 성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감독당국과 금융회사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지적은 금융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금융기업은 펀드 판매 수수료에 눈이 어두워 고객에 대한 ‘적합성 원칙’을 어김으로써 신뢰가 붕괴되는 등 제 발등을 찍는 사태를 자초했다. 특히 감독당국은 이런 금융기업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투자자 보호라는 가장 중요한 책무를 방기한 점은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주가 폭락기에 펀드 소송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자본시장이 후진적이라는 방증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도 펀드 반토막 소송이 넘쳐났으나 운용사와 판매사, 투자자에 대한 감독 규정을 정비하면서 시장 규율이 제자리를 찾았다. 한국은 2004년 말 설정액이 186조원이던 주식형 펀드 시장이 최근 350조원까지 급증했지만 펀드 투자 문화는 도리어 뒷걸음질쳤다. 이번 사태가 투자 문화가 성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성장통’으로 기능하려면 일대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자명 장영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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