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18일 월요일,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신장기내과에서 협진 의뢰가 왔다. 환자는 뇌 손상과 실명이 있었고, 메탄올 중독이 의심되는 소견이 뚜렷했다. 고용노동부에 전화를 했다. 부천지청에서 불시에 사업장을 점검했다. 회사는 휴대전화 버튼 가공업체로, 삼성전자의 3차 하청업체였다. 환자는 인력 파견업체 소속으로 불법파견되어 일했다고 한다. 며칠 뒤 같은 회사에서 실명 환자가 또 발생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 회사 사장은 기업 운영이 제때 월급 주고 세금 잘 내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고 했다.

다른 3차 하청업체에서도 메탄올 중독 환자가 발생했다고 뒤늦게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확인되었다. 원인은 모르지만 작업장에서 쓰러졌기 때문에 산재 신청을 했다고 한다. 이 회사 사장은 가족 모두 이 작업장에서 일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메탄올이 유해한지 몰랐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전 이 회사에서 일하다가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사람이 나중에 확인되었다. 그 역시 불법파견 노동자였고, 사장에게는 그냥 아파서 못 나간다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일하면서 취급한 메탄올 때문에 눈이 멀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모르는데 노동자의 알 권리 보장할 수 있나

ⓒ윤현지

한 달이 지나 인천 지역의 3차 하청업체에서도 메탄올 중독 환자가 발생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 사업주는 근로감독관이 방문했을 때 메탄올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한 달 전에 실명한 또 다른 환자에게, 불법파견 노동자는 산재 신청이 안 된다며 합의금 350만원을 주었다. 그 환자의 의무기록에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 쓰여 있었다. 담당 의사가 사업장에 전화했는데 메탄올 사용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그때 사업주가 진실을 말했다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시력을 어느 정도 보존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업주는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건수 11건에 대해 과태료 ‘0원’ 처분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이라서, 노동자의 안전에 무관심해도 사업주들은 안전하다.

2017년 10월, 형사재판에서 사용사업주 3명과 고용사업주 5명은 모두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 2차 원청회사와 삼성전자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하청 사업주들은 독성이 덜한 에탄올은 메탄올보다 4배 비싸기 때문에 납품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삼성전자의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던 그해 겨울, 그들은 평소보다 독한 냄새 속에서, 거의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했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남 아무개씨가 이미 2014년에 메탄올 중독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최소한 그때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다른 여섯 명은 눈이 멀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리라. 이 사건의 원인 진단과 재발 방지 대책은 앞의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첫째, 하청 사업주들은 메탄올의 유해성을 정말 몰랐다고 했다. 사업주가 모른다는데 어떻게 노동자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 사업주가 직접 산재 예방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둘째, 1·2·3차 하청 생산에 불법파견 노동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3차 하청업체 사업주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불법파견 생산을 처벌하고, 유해 작업의 다단계 하청을 금지하며, 원·하청 사업주 모두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법을 위반하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 셋째, 직업병인 줄도 모르고 일터를 떠나는 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 실태 파악부터 해야 한다. 부천 지역에서만 시범 운영하고 있는 직업병 감시체계를 전국으로 확대해 운영해야 한다.

기자명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