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클라이맥스인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백미는 〈해머 투 폴(Hammer to Fall)〉이다. 냉전을 비판한 이 노래의 가사 중에 이런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버섯구름의 그림자 아래서 꿋꿋하게 자랐지.” 194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겐 이 원폭의 이미지는 전쟁과 냉전의 상징이었다.
영화 개봉과 비슷한 시기, 원폭 사진은 BTS(방탄소년단) 한 멤버가 입었던 티셔츠 때문에 논쟁이 되었다. 일본 방송은 BTS의 출연을 취소했고, 국내 언론은 일본의 반응이 혐한이라며 비난했다. 퀸에게 원폭은 냉전의 공포였다면 BTS에게 원폭은 응징과 해방이었다. 이 논쟁은 SNS와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초기 민족주의적인 의견이 압도적인 듯했지만, 원폭은 이념을 넘어선 재앙이라는 견해가 반전을 일으켰다. BTS는 원폭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성공적으로 일본 공연을 마무리하면서 정리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버섯구름 사진으로 상징된 이 원폭의 이미지는 논쟁적이다. 또 ‘사진은 역사적인 증명을 가능케 하는 매체인가’ 하는 질문도 나온다.
1992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대규모 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스미스소니언 산하 항공우주박물관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는 데 투입된 B-29 전폭기 총 7대 중 ‘에놀라 게이’를 복원해 원폭 투하 50년이 되는 1995년에 전시할 계획이었다. 큐레이터와 역사가들은 원폭 투하를 결정한 트루먼의 정치적·도덕적 의미를 물을 생각으로 에놀라 게이와 함께 원폭 사진전을 준비했다. 전시는 물론 중립적인 태도로 관객에게 질문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바로 공군협회, 참전용사 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혔다. 미군의 희생 등을 생각하면 이 원폭 투하 판단은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이다. 미국 상원도 이 전시가 수정주의적이며 편향적이고 모욕적이라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박물관과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압력이 검열이라며 반발했다. 미국 정부의 전방위적 압력으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마이클 헤이먼 관장은 사과를 했고, 전시 담당자였던 항공우주박물관의 마틴 하윗 관장은 축출됐다. 결국 사진전 없이 오직 에놀라 게이를 전시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말이 없는’ 사진은 축복일까, 모자람일까
이처럼 미국에서조차 원폭 문제는 정부 주도로 규정된 역사를 강요한다. 원폭이 꼭 투하되었어야 했는가에 대한 회의론은 일방적 분위기에서 기각당한다. 이런 미국 내 분위기로 인해 원폭과 관련한 사진전은 공공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기피 대상이 되었다. 여전히 미국의 역사학자나 큐레이터들은 “역사의 해설이나 상충하는 관점을 보호하고 전시를 억압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폭 사진은 B-29 복스카가 원폭 ‘팻맨’을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한 후 폭발하는 장면을 관측기 B-29 빅스팅크가 촬영한 것이다. 그들은 이 폭탄이 어떤 참상을 일으킬지 알지 못했지만 폭발 직후 그들을 스치고 지나간 감마선에 의해 입안에서 납 맛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이 사진은 폭탄이 터졌다는 것 외에는 어떤 역사적인 증언도 못한다. 사진은 말이 없다. 발언하는 것은 이 사진을 보고 해석하는 이들이다. 이것은 사진의 축복인가, 모자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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