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레나나 임플라논 같은 피임 시술은 생리통과 생리량이 줄어드는 부가적인 장점이 있다. 그래서 선근증이나 자궁내막증 같은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쓰였지만, 질환이 아니더라도 생리를 회피할 목적으로 시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 한 언론과 인터뷰하며 이 내용을 설명했다. 생리대 파동과 낙태죄 폐지운동 이후 생리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높아졌고, 피임 관련 인식과 실천이 확산되어 고무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촬영이 끝나자 PD는 이렇게 말했다. “이 주제로 몇몇 산부인과의 자문을 받았는데 ‘생리통이나 피임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생리를 피하려고 시술하는 것은 장려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기사 제목도 이런 조심스러움을 반영해 ‘생리 중단 시술,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로 달렸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자기 몸을 통제하는 것을 왜 이렇게 무서워할까?
여성은 피임을 잘해도, 못해도 욕을 먹고 의사는 피임을 권유해도, 권유하지 않아도 의심받는다. 4개월 간격으로 연달아 두 번 인공임신중절을 하고 출혈이 지속돼온 환자에게 피임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근데 피임약은 몸에 나쁘잖아요.”
“피임약만 있는 게 아니에요. 주사나 미레나는 생리통, 생리량도 줄여줘요.”
“부작용 있는 거 아니에요?”
“출혈이 있을 수 있는데 2~3개월이면 적응돼요.”
“‘자연적’인 건 없나요?”
“매일 아침 기초체온을 재며 질 분비물 체크와
배란 테스트를 병행하면 94% 이상 성공한대요. 올해부터
미국 식약청(FDA)에서 피임법으로 허가받았어요.”
“매일 그걸 어떻게 하고 있어요?”
선험적인 의혹에 대한 방어를 하는 동안 ‘비급여 시술해서 돈 벌려 그러지’라는 불신에 찬 표정은 풀리지 않는다. 〈피임사전〉(〈시사IN〉 제491호 ‘이런 피임법은 처음입니다만’ 기사 참조)을 쥐여 보냈지만, 그는 결국 다시 오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환경호르몬과 불면, 고지방식을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는 처방을 잘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감정·신체 기복이 심해 일상에 지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피임약으로 이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자궁을 떼고 싶다고까지 말하는 사람이라면 생리 중단 시술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여기에 기저질환이 있는지, 피임의 필요성이 있는지 등을 고려한다면 그 선택은 더 정교해져야 하고, 그건 여성과 의료인이 충분히 시간을 들여 합을 맞춰나가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여정과도 같다.
공공 재원으로 피임과 성교육 지원하는 나라들
정부는 올해부터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비급여 항암제나 검사를 평가해서 효용성이 있으면 급여화하는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 담당자에게 피임을 여기에 포함시킬 계획이 있느냐고 질의한 적이 있다. 담당자 반응은 이랬다. “피…임요…?” 피임을 포함한 재생산 건강이 공중보건의 영역이라는 걸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피임에 1달러를 투자하면 원치 않는 임신이나 성매개 감염, 생리통 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 7달러를 아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공 보험으로, 피임을 담당하는 전담 기관에서 공공 재원으로 피임과 성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의사로서 내가 주고 싶은 건 단순히 피임약 처방전이 아니다.
내 몸을 스스로, 파트너와, 의료인과 조율해나가는 자율성,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아 적절한 가격에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 ‘힘(Power)’을 처방전에 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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