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시사IN 윤무영, 조형물:시사IN 이정현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급기야 방송가를 덮쳤다. MBC의 한 고위 간부가 “20여 년 MBC에 있는 동안 이렇게 경영 상황이 급작스럽게 악화한 적이 없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도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다”라고 토로할 정도로 방송가에는 매서운 삭풍이 몰아친다. 최근 지상파 방송 3사의 광고 매출은 마치 단시간에 급락한 주가처럼 가파르게 내리꽂히고 있다.

11월10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는 이병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본부팀장, 지역 방송총국장과 방송국장 등 간부 200여 명이 모여 ‘비상경영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사장의 인사말과 회의 발제문, 참석자의 자유 발언 내용이 다음 날 나온 〈KBS 열린마당〉(사보) 특보를 통해 고스란히 공개된 것도 KBS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 경영 위기 상황을 전 직원과 공유하겠다는 취지인데, 경영진이 이런 이례적 조처를 취한 이유는 임창건 정책기획센터장 말에서 잘 드러난다. “양치기 소년 우화가 생각날 정도로 위기가 닥쳐도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는 무감각과 무기력증이 KBS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위기다.”

MBC 지방 계열사, 인원 감축 시작

MBC와 SBS는 한발 앞서 움직였다. 엄기영 MBC 사장은 10월29일  ‘사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전직원에게 보내 비상 경영을 선언했다. “올해 광고 매출이 대폭 줄어들 것이 예상돼 대규모 영업적자가 불가피하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고 아낄 수 있는 것은 아껴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전사원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SBS도 10월24일 확대 간부회의를 열어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이미 지난 7월부터 1단계 비상조처를 취했으나 예상보다 경영 악화 속도가 가팔라진 것이다.
경영 타개안을 가장 먼저 내놓은 곳은 MBC다. 11월12일 노사가 최종 타협에 이른 것이다. 전직원이 상여금 200%를 반납하고 연월차 수당의 50%를 안 받기로 합의했다. 임원은 평균 3000만원 수준의 급여를 반납한다. 업무추진비와 자가운전 보조금 같은 경비도 크게 줄일 작정이다. 아직 서울 본부에서는 인력 감축 기류가 없지만, 지방 계열사에서는 20% 이상 감축에 들어간 곳이 꽤 있다고 알려졌다.
SBS도 임원들이 임금 10%를 반납하고 접대비 등 식대성 비용을 30% 감축하며 교통비도 줄일 작정이다. 노사가 임금 동결에도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는 타개책을 짤 회의체 구성에 나섰을 뿐 아직 내놓은 게 없다. 비상경영 회의에서 논의된 인력운용 효율화, 아웃소싱, 팀장급 간부의 임금 반납, 직원 5% 임금 삭감 등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11월10일 KBS 이병순 사장 등 경영진을 비롯한 팀장급 이상 간부 200여 명이 비상경영 대책회의를 하는 모습.


KBS 올해 예상 영업적자 900억원

11월 초 이루어진 가을 개편에서 제작비 삭감이 추진된다. 주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와 고액 출연료 논란이 일었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 직격탄을 맞았다. KBS 2TV는 일일 드라마를, MBC는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를, SBS는 금요 드라마를 폐지한 것이다. KBS가 외부 MC를 내부 MC로 대폭 교체한 것도 제작비 줄이기의 일환이다. MBC는 평일 오후 재방송 프로그램을 투입하는 파격 결정을 내렸다. SBS도 고비용·저수익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해외 촬영을 억제하며 출연료도 줄일 작정이다.

공중파 3사가 일제히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은 경영 지표에서 잘 드러난다. MBC의 경우 광고 매출액이 지난해 말 편성한 2008년 광고 매출 목표치에 비해  9월과 10월 각각 85억원, 125억원이 줄었고, 11월과 12월에도 각각 2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올해 광고 매출액이 600억원가량 감소하리라고 본다. MBC 서울 본사의 2007년 총수익은 8681억원. 이 가운데 광고 수익(6192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71%를 넘는다. 올해 광고 수익을 지난해보다 258억원 늘어난 6450억원으로 예산을 편성했는데, 실적이 6000억원도 안 될 것이라 보는 것이다.

MBC에 비해 절대 규모는 작지만, 상대 감소율은 SBS가 더 크다. 올해 광고 매출액은 지난해(5291억원)보다 500억원 가까이 줄어들리라 전망한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지난해 325억원)이 0에 가까우리라 예측한다.

광고 수입은 주는데, 환율 상승 등으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공중파 3사 공통 사항이지만, 특히 KBS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반짝 성과를 냈던 2005년을 빼면 2004년부터 올해까지 4년째 적자 행진이다. 빚내서 운영해온 것이다. 올해 예상 영업적자 규모는 무려 900억원에 가깝다. 그러니 차입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차입금 규모는 1037억원인데 올해는 180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자본금 규모와 비슷한 20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 내다본다.  

 

 

고통 분담을 호소한 KBS 사보와 SBS 사보.

균형 예산 편성이 숙원 과제가 될 만큼 KBS는 올해도 439억원 적자 예산을 짰다. 총수입은 1조4009억원(광고 매출 6365억원, 수신료 5421억원, 기타 2223억원)인데 지출은 1조4448억원이나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9월 들어 광고 매출 급감으로 차질이 빚어졌다. 올해 책정된 사업상 경비 6822억원(제작비 5490억원 포함)과 인건비 4870억원(직원 5300여 명)을 대폭 줄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MBC와 SBS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 9월부터 광고 매출이 급감했지만 KBS는 이미 올해 들어 8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0억원, 목표치에 비해서는 396억원이나 광고 매출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전체로는 광고 목표치에 비해 925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민영방송에 비해 KBS의 시청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진 탓이다. 시청 점유율이 줄면 광고 수입이 따라서 줄고 재무구조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올해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집계한 공중파 방송 청약률(광고주가 언제, 어느 프로그램에 광고하겠다고 계약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올 들어 10월까지 MBC가 60~80%대, SBS 50~60%대 청약률을 보인 데 비해 KBS는 40~50%대에서 맴돌았다. 청약률이 70%는 유지돼야 정상 운영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11월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방송가에서는 MBC와 SBS 청약률이 40%대 초반, KBS는 30% 중반대로 떨어졌으리라 예측한다.

사실 공중파 광고가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중파 방송(라디오 포함)의 광고시장 점유율은 2002년 39.7%로 정점을 친 뒤 계속 떨어져 급기야 지난해 ‘마의 30% 벽’이 깨졌다. 방송보다 먼저 쇠락의 길을 걸은 신문과 잡지 등 인쇄 매체의 경우는 이미 2005년 30% 벽이 무너진 후 지난해 27.8%까지 떨어졌다. 2002년(37.5%) 정점에 비해 점유율이 10% 포인트가량 곤두박질친 것이다. 이들이 놓친 광고 수익을 챙긴 것은 인터넷과 케이블 텔레비전이다. 두 매체의 광고 매출은 2002년 각각 2.7%와 3.4%에서 지난해에는 12.8%와 10.5%로 수직 상승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의 입구에 섰다”

방송에 비해 신문은 광고 실적이 즉각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방송에 비해 하락률이 가파르다고 알려져 있다. 광고주인 기업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전국 종합지의 경우도 메이저 3사가 10~20%대, 마이너 신문은 30% 이상 광고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언론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종합지는 중앙일보를 뺀 대다수 신문이 흑자를 냈지만, 신문 본업에서 수익을 거둔 신문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부동산 임대 수익 등 신문 외 사업에서 수익을 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한국언론재단이 펴낸 〈미디어기업의 사업다각화 성과와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종합지의 사업 수입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12.2%에서 2006년 23.1%로 꾸준히 늘고 있다.
 
미디어 기업에 광고를 주는 쪽인 광고주는 광고 시장의 재편 흐름을 어떻게 바라볼까. 대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케이블 텔레비전과 인터넷이라는 뉴 미디어의 등장으로 올드 미디어들이 타격받은 경향도 있지만, 기업 부문의 원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라고 지적한다. 그 원인이란 글로벌화와 인식의 변화다. 이미 2005년께부터 광고선전비를 국내보다 해외 마케팅하는 데 훨씬 더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LG·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표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은 이미 70%를 넘어섰으니 수익을 낼 곳에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들이 광고 효과를 좀더 과학적으로 분석해 매체 선별을 까다롭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이든 신문이든 광고 효과가 큰 메이저이거나 자신의 목표 고객과 일치하는 특정 매체에 광고하려 들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매체는 생존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광고주는 줄고 있는데, 매체는 더욱 늘어나는 기현상을 지적했다. 활자 매체의 퇴조 속에서도 매체가 꾸준히 생겨났지만, 전반적으로 기업 성과가 부진한 데다 올해 들어 건설회사와 금융기업, 통신회사 같은 광고업계 ‘큰손’이 광고를 대폭 줄였다는 것이다.  

이미 비상 경영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나빠졌지만 미디어 기업의 내년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금융위기가 이미 실물경제로 전이된 상태에서 내년에는 경제성장률이 잘해야 3% 중반을 기록할 만큼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디어 기업 수익의 70~90%를 차지하는 광고 매출 비중이 더욱 곤두박질 치리라 보는 것이다. SBS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터널의 입구에 있을 뿐이다. 이 터널이 얼마나 길고 어두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어 공포스럽다”라며 올해를 전초전으로 이해했다.

벌써부터 방송 3사에서는 정부에 수신료 인상(KBS), 중간광고 허용 같은 재원 확보 방법을 들고 나오지만 외부의 시각은 곱지 않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방송은 최근까지도 호가호위하지 않았나. 연봉을 확 줄이고 결국 사람을 대거 잘라내야 한다. 경영 전반의 비효율을 제거하지 않으면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이 먼저라는 얘기다.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광고 의존도를 줄이고 사업을 다각화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미디어 기업의 위기는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장영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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