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미국 제41대 대통령 선거 얘기다. 민주당 마이클 듀커키스 후보의 지지율은 공화당 후보이자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허버트 부시(아버지 부시) 후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지율 격차가 무려 17%포인트나 됐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듀커키스는 완패했다. 부시 측의 집요한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먹혀들었다. 결정적 한 방은 악랄한 영상 광고였다. 부시 측은 한 단체를 매수해 영상을 내보낸다. ‘윌리 호턴이라는 흑인 살인범이 사회 복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주말 휴가 제도를 이용해 교도소 밖으로 나온 뒤 한 여성을 강간했다. 듀커키스가 주지사 시절 주말 휴가 제도를 시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이 정책을 처음 시행하고 확대한 사람은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부시 후보가 부통령이던 그 레이건 정부 말이다. 게다가 듀커키스가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있던 시절, 범죄율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다. 노골적인 인종차별 영상이었지만 유권자들은 이를 비판하거나 진실을 따져보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은 공포심에 압도당했고 듀커키스의 지지율은 걷잡을 수없이 추락했다.
제주도 예멘 난민과 관련된 언론 보도와 SNS상에 넘쳐나는 가짜 뉴스를 보면서 30년 전 미국 대선이 새삼 생각났다. 지난달 한 일간지는 1면에 “제주 예멘 난민 페북엔 총 든 사진도 있다”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사진 10장을 두 면에 걸쳐 보도했다. 처음 신문을 보는 순간 충격적이어서 흠칫했다. 제주도 예멘 난민 50명의 페이스북을 분석해보니 이 중 5명이 총기를 휴대했으며 6명이 ‘카트’라는 마약을 씹는 사진 등을 올렸다는 것이다.
기사를 자세히 읽다 보니 의문이 잇달아 생겨났다. 예멘은 내전에 시달려온 나라다. 예멘에서 성인 남자가 총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어서 개인 총기 보유율이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다. 과거에 총기를 휴대했다고 반드시 위험한 존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기사도 이 점에 동의한다고 밝히고 있다.
‘카트’ 복용은 국제적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예멘에서는 합법이다. 마약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 순간 불안감이 가중되지만 중독성은 커피 정도라고 한다. 언젠가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인을 개고기 먹는 야만인으로 비난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한국인까지 한꺼번에 싸잡아 비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는데, 혹여 그 같은 잣대를 예멘 난민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멘 난민 총기 소유 뉴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돼 유포된다. 총기를 든 사진을 반복적으로 계속 보여주는 유튜브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어느 인터넷 매체는 기사를 인용 보도하면서 복면을 한 무슬림 남자가 커다란 총구를 독자의 얼굴을 향해 겨냥하고 있는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기가 막히게도 사진 아래쪽에 아주 작은 글씨로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쯤 되면 “올바른 난민 정책은 사실(fact)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힌 원래 보도 취지에서 멀어져도 한참 멀어졌을 뿐 아니라 듀커키스와 윌리 호턴의 범죄를 연관시키는 것만큼이나 왜곡된 결과를 낳게 된다.
독일 내각 ‘가짜뉴스 안 지우면 최고 600억원 벌금’ 의결하기도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인권 보도 준칙은 난민이나 이주노동자 등 이주민에 대해 희박한 근거나 부정확한 추측으로 ‘범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멘 난민 보도에서 언론은 섬세한 인권 감수성과 수준 있는 인권 전문성을 보여야 한다. 지난해 독일 대연정 내각은 증오 콘텐츠나 가짜 뉴스를 찾아내고도 이를 삭제하지 않으면 해당 소셜 미디어 회사에 최고 600억원가량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법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예멘 난민 보도를 보면서 언론에 대한 인권영향평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아니면 한국도 독일처럼 강력한 벌금제도라도 도입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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