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뜻을 몰라도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다. 백석의 시가 그렇다.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로 끝나는 ‘연자간’은 조사와 어미 정도만 빼면 모두 해독 불가다. 그런데도 고요한 시골 방앗간에 앉은 듯 한가로운 기분이 든다.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여우난골족’)도 마찬가지다. 무이징게국이 뭔지도 모르면서 입안에 침이 고인다. 연자간도 무이징게국도 생소한 21세기 한국의 독자는 시대도 지역도 사투리도 음식도 다른 1912년생 평북 정주 출신 백석의 시를 마음으로 읽는다.

〈백석 시의 물명고〉는 백석 시를 머리로도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 저자는 1935년부터 1948년까지 백석이 발표한 모든 시의 시어를 의미별로 분류하고 각 시어의 빈도수를 조사했다. 98편 시에 쓰인 시어 3366개의 정확한 뜻을 풀이했다. 뜻풀이에 따르면 ‘연자간’ 시에 나오는 토리개는 목화의 씨를 빼는 기구 씨아의 다른 말이다. 토리개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게 그림도 곁들여 있다. ‘여우난골족’ 시의 무이징게국은 새우에 무를 썰어 넣어 끓인 국이다. “정주와 인접한 청천강과 압록강, 대동강 하류에 새우가 많았다고 한다. 들과 논밭 지대는 물론이고 증강진 같은 산간 오지에서까지 새우젓이 식찬으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라는 배경 설명도 함께 붙었다. 백석 시를 통해 마음도 지식도 풍성해진다.

모르고 읽을 때나 알고 읽을 때나 백석의 시어들은 정겹고 또 쓸쓸하다. 음식, 장소, 사물 등 여러 분류로 나뉘는 말들 모두 내가 아니어도 내 부모, 내 조상이 먹거나 가거나 썼을 것만 같아 정겹고, 그것들이 이제는 모두 사라져 쓸쓸하다. 옛것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미련이 많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