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문제를 두고 누군가는 역차별을 말하고, 누군가는 갈등을 경계한다. 미러링이니 반격이니 하는 이야기가 몇 년째 분분하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정말 어떤 변화가 온 것만 같다. 여성들이 주축이 돼 벌이는 대규모 시위는 연일 논란의 도마에 오른다. 이들이 내뱉는 과격한 불만의 언어를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끝나지 않는 논쟁 속에 성폭력 피해자의 삶도, 피해자를 지원하는 변호사의 일상도 덩달아 뜨거워진다. 이렇게 뜨거운 일상을 살면서 정말 ‘위험한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지 만 3년6개월이 되었다. 개업 초기부터 성폭력 피해 상담 및 법률 지원을 주로 해왔다. ‘미투’ 이후 관련 사건이 더 많아졌느냐고 여러 사람들이 묻는다. 그 질문은 정말이지 현실을 모르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질문이다. 성폭력은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있어온 일이다. 미투 ‘바람’이 불었다지만 피해자에게 성폭력은 여전히 입 밖으로 꺼내기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나서는 건 훨씬 더 어렵다.

ⓒ정켈 그림

최근 우리 사무실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은 성폭력 관련 사건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성폭력 피해 자체가 아닌,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거나 말했다는 이유로 무고·명예훼손·위증으로 고소당한 피해자가 더 많이 찾아온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받은 피해자가, 고소당하거나 소송을 치르게 될까 봐 걱정하는 피해자로 북적인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했을 뿐, 그 밖에 할 수 있는 대응에는 한계가 많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난다. 미투가 사람들의 마음엔 변화를 일으키고 있을지 몰라도 사회나 제도를 바꾼 건 거의 없다. 과거나 지금이나 적잖은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후 상상했거나 상상했던 이상의 고난을 맞닥뜨리고 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말하기’에 크게 당황했으나 잠시뿐이었다. 불쾌와 당황으로 움찔했던 가해자들은 그리 오래지 않아 반격을 ‘업그레이드’한다. 오죽하면 가해자가 범죄 혐의만은 부인하더라도 피해자를 각종 소송으로 괴롭히지 않는다면 ‘아주 악질은 아닌 사람’이라고 평가받을까.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많은 가해자가 법 절차를 악용해 형사 고소를 하고 거액의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자를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히기 때문이다. 가해자라고 법적 권리가 배제되어야 할 것은 아니지만, 그 권리를 악용해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이 ‘지금처럼’ 쉬워서도 안 된다.

성폭력 피해자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법과 제도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무고로, 명예훼손으로, 위증으로 고소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피해자 주변인에게까지 소송을 남발한다. 피해자를 수사기관과 법원에 불려 다니게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소송전을 펼치며 피해자를 주변으로부터 고립시킨다. 피해자를 도운 동료나 활동가, 기자들이 어느 순간 ‘피의자’가 되어버리고, 피해자와의 관계는 덩달아 불편해진다. 변호사인 나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사무실 기록봉투 사이에 내 이름을 태그한 봉투가 생기더니 심지어 두툼해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성폭력 피해자 처지에서 아직까지 무언가 해본 경험이 없다. 변화는 그 ‘낯선 자리’에서 낯섦을 어떻게 대처하느냐로부터 시작된다. 여성에게 위험한 건 변하지 않는 이 사회이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아직까지 너무 높기만 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문턱이며, 법을 악용해 피해자를 양껏 괴롭히는 가해자들이다. 그러므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와 사법 당국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기자명 이은의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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