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서울 중곡동에 있는 고촌학사. 제약회사 종근당 산하의 종근당고촌재단에서 운영한다.
대학생 김민용씨(가명)는 어느 날 아침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에 눈을 떴다. 모르는 남성 두 명이 자신과 룸메이트가 자는 모습을 찍고 있었다. 남성들은 방 구석구석을 찍고는 나갔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들은 기숙사 사실(私室) 점검에 나선 관리 인력이었다.

김씨가 사는 기숙사는 ‘고촌학사’이다. 고촌학사는 제약회사 종근당(회장 이장한) 산하의 민간 장학재단인 종근당고촌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기숙사이다. 종근당고촌재단은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생활고를 겪는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총 14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시설 세 곳을 운영 중이다. 주로 지방 출신 저소득·차상위계층 가정의 대학생들이 지원을 받는다. 기본 1년, 최대 3년간 무상으로 고촌학사에서 살 수 있다.

비싼 방값과 열악한 주거 환경에 시달리던 대학생 처지에서 반가운 사업이지만, 고촌학사 거주 비용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시설 점검 등의 이유로 방 비밀번호를 의무로 제출해야 한다거나 방 무단 침입을 당하는 사생활 침해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시설 사용 규정도 학생들을 옥죈다. 전기요금, 난방비, 수도 사용료 등 공과금 합계가 월 6만원을 초과하면 벌점 5점이 부과된다. 2~3인 1실로 이루어진 방에서 그 기준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한 학기에 벌점 10점을 채우면 다음 학기에는 기숙사를 나가야 한다.

고촌학사 기숙사생들은 ‘강제 봉사활동’에도 차출된다. 종근당고촌재단은 지난 4월 지역사회 저소득 계층 중학생에게 대학생 멘토링(학습 지도)을 제공하는 기존 교육 복지사업을 크게 확대했다며 언론에 보도 자료를 뿌렸다. 대학생 멘토의 규모를 40명에서 144명으로 늘렸다. 늘어난 멘토 가운데 대부분이 고촌학사 기숙사생이다. 그중 한 명인 민주한씨(가명)는 올해 초 기숙사 측으로부터 ‘매주 2시간씩 중학생 멘토링 활동에 참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선택이 아닌 의무 사항이었다. 참여하지 않으면 벌점이 매겨진다. 민씨는 “모두들 불만이 있지만 기숙사에 공짜로 사는 거니까 이것저것 시켜도 감수한다”라고 말했다.

종근당고촌재단 관계자는 “좋은 취지로 하는 장학 사업인데 (불만이 있어) 안타깝다. (멘토링 등 의무 사항이) 불만이거나 부담스러운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나갔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과금 규정은 무분별한 시설 이용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놨을 뿐 실제 시행하진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9월1일 재단 체육대회, 전 사생 필참.’ 기자와 인터뷰 중이던 고촌학사 기숙사생에게 날아든 카카오톡 단체 메시지다.

기자명 전범진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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