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청와대)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이하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만든 문건 중 하나의 제목이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별조사단)이 붙인 문건 번호는 111번(이하 번호는 특별조사단이 붙인 문건 번호다). 작성일은 2015년 9월5일.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해 상고법원 로비에 온 힘을 쏟을 때다. 상고법원 과정에서 재판을 로비 수단으로 삼은 것이 양승태 대법원 사법 농단 사건의 핵심이다(〈시사IN〉 제561호 ‘대법원 문 앞에서 삼권분립이 멈췄다 기사 참조).

111번 문건 제목은 그래서 묘하다.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표현은 로비 기획단으로 움직였던 법원행정처가 쓸 말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박근혜 청와대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그걸 왜 대법원이 고민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사법 농단 사건에서 한국 사회가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이 드러난다. 사법 개혁 임무를 짊어진 김명수 현 대법원장의 핵심 딜레마도 드러난다.

ⓒ연합뉴스2015년 4월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 신임 법관들이 양승태 대법원장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날짜를 한 달 앞으로 돌려보자. 2015년 8월6일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 면담이 있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한다. “상고법관 임명의 민주적 정당성 결여 문제가 있다(358번).” 박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이란 표현을, 선거로 뽑힌 자신이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쓴다.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비공식 석상에서 “VIP에게 상고법원 판사 지명권을 주면 상고법원 도입에 찬성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80번).

문제가 있었다. 헌법이다. 헌법 제104조 3항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라고 되어 있다. 대법원장·대법관 외의 모든 법관 인사권은 대법원장에게 있으므로 상고법원 판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실질적인 인사권을 박 대통령 손에 쥐여줘서라도 상고법원을 따내려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111번 문건, ‘BH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이다. 헌법 제104조 3항을 우회해 대통령의 손에 실질적 인사권을 쥐여주는 방안을 연구했다. 111번 문건은 형식상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판사를 지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후보자 선정을 청와대가 관장하라고 제안했다.

이 시도는 실패했다. 박 대통령은 자기 손으로 틀어쥘 수 없는 최종심(상고법원도 일종의 최종심이다) 판사의 탄생을 결국 허락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최종심 재판부를 장악하는 것이 헌정 문란이 아니라 통치의 한 수단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양승태 대법원은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를 제시”하고, 심지어 “정부 운영과 관련되는 사건은 대법원”이 계속 보겠다(80번)며 청와대를 달래려 했다. 대통령의 위헌적 사법부 인식에 반발하기는커녕 로비의 고리로 삼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가 만든 111번 문건 ‘BH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과
33번 문건 ‘익명 카페 설득논리 및 대응방안 검토’.
대법원장 정점에 둔 ‘법관 통제’ 구축 시도

이것으로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말의 좌표가 확인됐다. 박근혜 청와대도, 양승태 대법원도 이 말의 진짜 의미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에게 민주적 정당성이란, 법원 통제력을 누가 얼마나 가져가느냐는 지분 조정 싸움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 그럴듯한 포장이 얼떨결에 중요한 딜레마를 드러낸다. 대통령은 선출직이다. 민주적 정당성은 임명직보다는 선출직이 갖고 있다. 대법원장을 선거로 뽑으면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는 간명하게 해소된다. 실제로도 양승태 대법원 파동 이후 법관을 선거로 뽑아서 책임지게 만들자는 주장이 온라인 여론에서 비등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대법원장을 선거로 뽑지 않는가?

민주주의는 다수가 통치하는 체제다. 민주적 정당성은 다수의 동의에서 나온다. 그런데 사법부는 그 특수한 성격 때문에, 다수 지배의 원리로부터 방파제를 쳐준다. 민주주의는 기본권, 특히 소수자의 기본권 보호 없이 돌아가지 않아서다.

다수의 뜻으로 기본권도 제약할 수 있다고 해보자. 법 앞의 평등, 양심과 표현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제약받는 소수파는 이 게임에 참가할 이유가 사라진다. 게임의 규칙에 불복하는 구성원이 늘어나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는다. 그러니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 보호 장치가 있어야 돌아간다. 그게 사법부다. 사법부는 민주주의 원리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기관이다.

ⓒ시사IN 윤무영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 명쾌한 결론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모든 권력은 견제받아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고전적인 정치 이론가들은 인간의 선의와 헌신을 믿지 않고, 견제와 균형으로 야심을 억눌러야 한다고 믿었다.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는 권력은 반드시 남용된다. 권력에 책임을 묻는 가장 간명한 방법은 주기적인 선거다.

사법부도 권력이므로 책임을 물을 경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법부는 다수 지배의 원리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으므로 선거는 좀 곤란하다. 사법부는 책임성의 가장 좋은 수단인 선거를 봉쇄한 채로 책임성을 강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사법부 특유의 딜레마다. 양승태 대법원이든 김명수 대법원이든 가리지 않는, 민주주의 원리에 내재한 본질이다.

법관에 책임성을 묻는 방법으로 한국 사회가 시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최고 권력인 청와대가 사법부를 실제로 장악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74년 대법원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고인들에게 사형 등을 선고했다. 피고인 중 8명은 선고 바로 다음 날 사형이 집행됐다.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손꼽히는 ‘인혁당 사건’이다. 이런 방식의 ‘책임성’을 지금 되살릴 수는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 원리가 요구하는 책임성과는 정반대다.

민주화 이후 군사정권식 직접 통제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판사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근본 과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입법부나 행정부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결국 사법부 스스로 법관을 견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역할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자청했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법관 통제 체제다.

양승태 대법원은 판사들의 인터넷 익명 카페 ‘이판사판’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33번 문건 제목은 ‘익명 카페 설득논리 및 대응방안 검토’다. 문건은 ‘이판사판’을 탈퇴하라고 판사들을 설득할 논리를 검토한다. 33번 문건은 양승태 대법원이 법관 독립성과 책임성의 딜레마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33번 문건은 우선 본질적 딜레마를 정확히 인식한다. “주권자로부터 선출되지 아니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판결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을 부담하지도 않는 법관에 대하여 불가침의 독립성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여기까지는 정확한 문제의식이다.

ⓒ연합뉴스김명수 대법원장
그런데 답변이 놀랍다. “사법부 존립의 근거이자 기반은 국민의 신뢰”라고 쓴다. 민주적 정당성도 없고 책임성 고리도 약한 법관에게 독립성이 주어진 이유는, 국민이 믿어주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책임성 원리는 권력자에 대한 믿음에 기대서는 안 된다. 33번 문건은 시작부터 이 정치이론의 대전제로부터 이탈했다.

이후 전개되는 대목은 길게 인용할 가치가 있다. “국민의 신뢰를 위한 법관의 책무는 기본적 품위와 공정한 외관이다. 국민은 모두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법관을 희망한다. 재판 업무는 물론 사회적 이슈, 개인생활 등에 대한 법관들의 ‘민낯’이 국민에게 드러나는 경우는 물론, 법관들 사이에 ‘해방구(맥락상 익명 카페를 지칭)’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지는 경우에도 사법부에 대한 실망과 냉소,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법관의 표현의 자유는 법관의 책무를 위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선출되지 않은 법관의 독립성 보장은 고도의 자기 절제 및 공직윤리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견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고 절제와 품위를 중시하는, 보기에도 믿음이 가는 법관.’ 독립성과 책임성의 상충이라는 딜레마에, 양승태 대법원이 내놓은 해법이다. 그런 판사는 국민이 믿기 때문에 독립성을 쥐여주어도 책임성을 의심받지 않는다. 그 반대편, 그러니까 오답의 자리에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법관’이 배치된다. 겉으로 이견이 노출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이 믿을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이견’을 제한하려면 ‘바른 의견’이 먼저 있어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이 의도한 바른 의견이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의견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문장은 2번 문건 ‘인사모 대응 방안’에 있다(인사모는 양승태 대법원이 사찰한 판사 연구 소모임이다). 2번 문건은 인사모의 문제점을 이렇게 쓴다. “대법원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법원 내외부에 표출할 가능성 높음.” 건조한 사실 기술이 아니다. 대법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 표출을 ‘문제점’이라고 규정한다. 이 대목에 이르면 양승태 대법원이 ‘판사동일체 원칙’을 제시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사법부 장악에 더 큰 매력 느낀 대통령

양승태 대법원은 이런 논리가 무너지는 경로를 그야말로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대법원장의 장악력이 높아지자, 대통령은 사법부 장악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3000명 판사를 장악하는 것보다 대법원장 한 명 장악이 훨씬 쉽다. 대통령이 사법부 장악에 관심을 보인 상황에서,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관심을 이용해 로비를 시도했다. 거기 걸린 판돈이 바로 재판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의 판사동일체식 책임성 체제는 이렇게 파산했다.

지금 김명수 대법원이 서 있는 땅이 바로 이 폐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요구받는 사법 개혁의 본질은, 독립성·책임성 딜레마에 대해 박정희 군사정권이나 양승태 대법원보다 더 나은 답을 내놓는 것이다.

대법원장의 권한을 내려놓고 법관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은 이 폐허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안이다. 하지만 그것도 해법이 되기 어렵다. 책임성을 물을 고리가 없는 상태로 독립성만 강화한다면, 그때는 판사 개인에 대한 로비에 사법부가 취약해진다. 특히 사회의 강자들, 이를테면 재벌의 사법부 로비를 제어하기 어려워진다. 판사들이 조직 보위 논리를 스스로의 판단과 열정으로 추구할 위험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책임성 고리가 약한 채로 독립성만 챙겼던 검찰이 간 경로다.

권력 이론은 어떤 권력자의 선의도 믿지 않는다. 오직 견제와 균형을 통해 책임을 강제받는 권력만 믿는다. 정치학자들은 그래서 사법부 내에 ‘이견의 노출’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판사동일체식 접근’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사법부 구성원들의 공개 논쟁은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이 보여준 ‘협조(80번)’와 ‘조율(82번)’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든다. ‘떠드는 입’을 많이 만들수록 협조와 조율의 위험부담은 커진다. 권력을 길들이는 방식은 선한 사람을 선출하는 게 아니라, 야심 있는 사람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보는 눈과 떠드는 입과 개입하는 손을 만드는 것이다.

역대 대법원은 대체로 이견 표출을 금기시했다. 특히 재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우려가 컸다. 이제는 법원 내에서 ‘떠드는 입’이 늘어야만 독립성과 책임성의 딜레마를 풀 수 있다는 반론이 유력해졌다. 법원 내 연구회를 활성화하고, 연구회들이 법원 밖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토론하도록 권장하자는 제안도 그래서 나온다. 이런 상호 관여 체제가 책임성뿐만 아니라 독립성도 더 잘 보장한다고 이론가들은 본다. 판사의 독립성이란 제멋대로 재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을 내리는 데 권력자의 개입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판사가 모든 이견과 보는 눈으로부터 외따로 떨어져 있을 때가 아니라 상호 견제로 얽혀 있을 때 달성 가능하다. 그것은 양승태 대법원의 관료적·수직적 개입과는 다른 개방적·수평적 개입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김명수 대법원이 받은 핵심 과제는 법관에게 독립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쥐여줄 ‘개방적·수평적 개입’을 설계하는 것이다. 검증된 정답이 있을 리 없는, 매우 까다롭고 섬세하며 오래 걸릴 작업이다. “사법 적폐를 쓸어내자”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 원리와 사법부 원리에 내재한 근본 긴장을 다루는 문제다. 공론장이 딜레마의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이 될 수 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