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프랑스 사진작가 스테판 글라디외는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보통 사람의 개성 넘치는 인물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북한 사람들은 독사진을 찍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애써 혼자 세워놓으면 약속이나 한 듯 말쑥한 차림에 억지웃음, 영락없이 체제를 선전하는 그림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적게는 두 명, 많게는 다섯 명이 함께 찍은 사진밖에는 건질 수 없었다. 그 정도 선에서만 사람들의 독특함이 살짝 살아났다. 그가 왜 답답해하는지 피사체가 된 사람도, 그의 작업을 내내 곁에서 지켜보며 따라다닌 안내원도 이해하지 못했다.
1989년 동독이 무너졌을 때 비밀경찰 슈타지가 모아놓은 개인 신상 기록의 양이 너무 어마어마해 사람들은 입을 딱 벌렸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인적 네트워크 역시 방대했다. 그런데 현대의 독재정권 정보기관은 그런 슈타지보다도 훨씬 유능하다. 디지털 감시체제라는 첨단 무기를 갖춘 덕분이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때는 자유의 친구처럼 보였던 디지털 기술이 거꾸로 사람들을 옭아매는 중이다.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경찰은 정보의 낟가리에서 어렵지 않게 바늘을 찾아낸다.
북한은 아직 동독에 가까운 유형이다. 아무래도 디지털 보급률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와 첨단 기술을 결합해 극단적으로 주민을 통제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특히 신장성 서쪽은 중국의 디지털 감시체제 구축 실험장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슬람교를 믿는 1000만명 남짓의 소수민족이 사는 이 지역에 중국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CCTV를 살포했다. 경찰차와 경찰의 보디캠(옷에 설치하는 카메라)까지 가세한 감시 카메라는 지나가는 위구르인의 얼굴과 자동차 번호판을 식별해 끊임없이 중앙통제센터로 보낸다. 위구르인은 휴대전화를 쓰려면 반드시 중국 정부가 배포한 소프트웨어를 깔아야만 한다.
이런저런 디지털 경로를 통해 중국 정부는 위구르인의 이름, 성별, 직업뿐만 아니라 친인척 관계, 지문, 혈액형, DNA 정보까지 데이터베이스화했는데 그 용량은 날로 커져간다. 중국 정부는 이 정보를 토대로 인공지능을 가동해 재교육할 위구르인을 걸러낸다. 신장 각지의 교화소에 적게는 50만명, 많게는 80만명의 위구르인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방식은 러시아·르완다·터키와 같은 독재국가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들은 중국의 전자기기와 감시 시스템까지 통째로 구입하고 싶어 한다. 중국 신장성은 민주주의를 잃은 나라의 미래이다.
국가나 악당이 내 신상 정보를 함부로 털지 않으리라고 믿으며 살아온 나라의 국민도 사실 안심할 처지는 못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눈이 늘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불어날 예정이다. 하늘에도, 벽에도, 집안에도 눈과 귀가 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 지르며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우리 머리 위 1600여㎞ 상공 지구궤도에서 약 1700개 위성이 돌고 있다. 그것들은 지구와 우주의 이미지와 비밀을 제공하는 대신 우리의 동선이나 내밀한 움직임을 훔친다. 그보다 낮은 곳에서는 민간 항공기와 경찰·의료·소방 헬기에 장착된 라이다(레이저 파장을 발사해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기기)가 도시의 3D 영상을 송출하고, 미국에서만 한 해 250만 대가 팔린 드론이 온갖 이미지들을 찍어댄다. 미국 국방부가 은밀히 작전에 투입하고 있는 숱한 무인비행기와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이 띄운 스파이 드론까지 포함하면 드넓은 하늘이 비좁아 보일 지경이다.
전 세계 300만 개 이상의 ATM 기계가 매일 고객의 사진을 찍는다. 옷에 카메라를 장착한 경찰, 병원 근무자, 호텔 벨보이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간다. 경찰의 안면 인식 장치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1년에 1억600만 개 이상의 새로운 감시 카메라가 팔려나간다. 각국은 차량 블랙박스와 차량 간 컴퓨터 소통 체계인 V2V 의무화를 확대해가는 중이다. 그들은 우리를 항상 지켜보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너무나 많은 정보를 흘리고 다닌다. 정신없이 스마트폰으로 우리 자신과 남의 이미지를 찍어 SNS에 올린다.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디에 돈을 쓰며 정치 성향은 어떤지 아낌없이 고백한다. 무심결에 그냥 흘려보내도 좋을 스스로와 타인의 은밀한 얘기까지 털어놓는다. 그런 정보들은 클라우딩 컴퓨팅 서비스를 통해 말 그대로 구름이 되어 인터넷상을 떠돈다. 예전 같으면 망각의 저편에 봉인되었을 낯 뜨거운 모습까지 나도 모르게 정처 없이 떠돌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가 되어 쏟아진다. 2020년이면 전 세계 61억명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지니게 된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자체가 주민등록증을 확대해 목에 걸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제게 자기가 누군지 열심히 설명하려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제게 15분만 스마트폰을 빌려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모르던 당신을 제가 알려드릴게요.” 이스라엘의 보안기술 업체 셀레브라이트의 중역 리오르 벤 페레츠가 한 말이다. 그의 사무실에 있는 데스크톱만 한 기기에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기기는 간단하게 암호를 우회한다. 곧바로 축적된 문자 메시지, 사진, 인스턴트 메시지를 맛보기로 보여준다. 그리고 얼마쯤 뜸을 들인 뒤 오래전에 지워버린 데이터마저 살려놓는다. 우리가 들렀던 사이트와 접속했던 기기들까지 순식간에 추적당한다.
이런 데이터들을 모아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집어넣고 돌리면 우리도 몰랐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전 세계 150개국 1만 개 이상의 경찰 조직이 이 셀레브라이트의 기계를 사용한다. 그들은 기계를 살 때도 사용할 때도 좀처럼 그 사실을 공표하는 법이 없다.
개인이 정보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누구도 열고 들어오기 힘들도록 암호를 설정해야 한다. 예전에 최선은 신기종 아이폰을 사는 것이었다. 차선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2015년 샌프란시스코 총격 사건 범인의 아이폰을 잠금 해제해달라며 애플과 갈등을 빚었던 미국 연방경찰은 6주 만에 소송을 철회했다. 포기해서가 아니라 우회할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아이폰도 최선은 아니라는 뜻이다.
1749년 유명한 런던 경시청이 세워진 이래 전 세계 메트로폴리탄의 경찰은 범죄 사실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숱한 탐문과 잠복근무, 미행을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경찰은 끝없는 서류 작업에 진절머리를 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도청하고 검열하기가 쉬웠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법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휴대전화는 경찰에게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용의자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암호를 우회하기만 하면 수고를 덜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생활 보호법은 우편과 유선전화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법은 아직 명료하지 못하다. 특히 메타 데이터, 즉 언제 누구에게 전화를 했으며 누구로부터 전화가 왔는지 등의 기초 정보는 엄격하게 보호를 받지 못한다.
경찰은 스트링레이(노랑가오리)라고 불리는 가짜 중계탑을 세워 용의자의 휴대전화 신호를 포착하기도 한다. 가짜 중계탑에 걸려들면 접속한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이 전화와 연결됐던 모든 기기의 메타 데이터가 순식간에 털린다. 적어도 미국의 25개 주 73개 경찰 조직이 이 스트링레이 추적기를 도입했다. 여기에 미국에서는 ALPRs(Automated License Plate Readers)라 불리는, 경찰차와 주차장에 장착하는 자동차 번호판 식별장치까지 갖추게 돼 경찰은 범인을 추적하는 데 그야말로 날개를 달게 되었다.
‘사생활이야말로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사치가 될 것’
이런 시스템을 통해 경찰이 범죄를 예방하고 응징하는 데 더 유능해졌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무단 가택 침입을 법으로 막는다. 영장 없이 경찰은 남의 집 전화 녹음 기록이나 캐비닛에 보관한 자료를 뒤질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경찰은 닫힌 문 밖에서만 서성대지 않는다. 그들은 캐비닛에 꽁꽁 숨겨놓은 자료보다 훨씬 가치 있는 개인 신상 자료를 마음대로 빼간다. ALPRs 시스템은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의 동선도 멋대로 추적할 수 있는 힘을 경찰에게 부여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경찰 수백명이 기자나 전 여자친구의 약점을 캐다 징계를 받았다.
만약 경찰이 지나다니는 모든 이들과 차량의 사진을 찍고 돌아다닌다면 당신은 께름칙하게 여길 것이다.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미국 경찰은 거의 비슷한 일을 하느라 바쁘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 법률센터에 따르면 대략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 대부분이 전과가 없는 이들의 ‘용모파기’를 FBI 데이터베이스가 간직하고 있다. 시스템은 곧 대상의 눈 사이 거리나 코 넓이까지 재는 표준 방식을 뛰어넘어 걸음걸이나 제스처까지 파악하는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자기 국민 각자의 생물학적 특징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자료는 언제든 오용될 소지가 있다.
기술 발달에 혼이 나가 우리도 북한 사람들처럼 사생활의 실종에 무감각해진 것은 아닐까. 앞으로 사생활이야말로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사치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영국 작가 클로이 콤비의 얘기가 과장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항상 연결되고 노출돼 있는’ 영국의 10대와 수백 시간을 인터뷰한 뒤 쓴 책 〈제너레이션 Z(Generation Z: Their Voices, Their Lives)〉에서 그녀는 한탄했다. 우리의 삶에서 뉘앙스가 사라지고 말았다고.
참고한 활자 :〈대량살상 수학무기〉(흐름출판),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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