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미투(미니 투룸), 투룸. 주인 직접 임대(부동산 수수료 없어요).’ ‘단기 방 가능, 그날 입주, 원룸 월 10만, 미투 월 13만. 투룸 월 23만.’

5월29일 경상북도 김천시 자산동. 골목 초입에 위치한 빌라 건물마다 각종 전단지가 도배되어 있었다. 마침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나온 빌라 주민에게 사정을 물었다. “재작년부터 갑자기 이런 전단지가 건물 가득 붙기 시작했다. 나도 이 건물에 보증금 300만원, 월세 25만원으로 계약하고 들어왔는데, 주변 시세가 떨어져서 집을 옮기겠다고 하니 집주인이 월세를 내려주더라.”

자산동 일대는 과거 김천시 중심부였다. 그러나 2018년 4월 기준 이곳에 거주하는 인구는 7662명이다. 인근 평화남산동 인구(8763명)까지 합치면, 김천시 원도심 중심부에 사는 사람은 1만6425명이다. 김천시 전체 인구(14만2209명)의 약 11%에 불과하다. 10년 전인 2008년만 해도 이 동네에는 2만1273명(자산동 9981명, 평화남산동 1만1292명)이 살았다. 10년 사이에 4848명이 빠져나갔다.  

ⓒ시사IN 조남진충청남도 당진시 서문1길은 10여 년 전부터 재개발이 수차례 번복되었다. 골목 담벼락 곳곳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철거’라고 표시한 흔적이 남아 있다.
원도심 공동화(도시 중심부 상주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에 속앓이를 하는 지방도시가 늘고 있다. 개념 자체가 낯설진 않다. 서울 종로구나 중구 인구가 줄어드는 것처럼 도시가 발전하면서 생겨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지방 중소도시의 원도심 공동화는 대도시와는 원인과 여파가 다르다.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부도심이 발전하는 점진적인 공동화가 아니라 인구가 감소하거나 정체되는 와중에 원도심이 비어가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주택 공급 과잉이다. 원도심 공동화를 겪는 지방 중소도시의 공통적인 특징은 ‘신도시’를 개발하고, 시가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줄곧 추진했다는 점이다.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시 외곽에 공동주택(아파트)이 늘어날 경우 원도심 인구는 그만큼 빠르게 감소한다.

김천시 상황도 다르지 않다. 김천시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하나다. 동쪽 끝 율곡동 일대에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조성한 경북드림밸리 혁신도시가 있다. 10년 전까지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에 한국전력기술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입주하면서 ‘율곡동’이라는 새로운 행정구역이 만들어졌다. 전체 직원 수 5000여 명 규모의 공공기관을 유치했고, 이들을 따라 유관 업체가 함께 내려오면 도시에 젊은 인구가 많아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외부 인구 유입 효과는 크지 않았다. 새로 생긴 율곡동에는 2만235명(목표 인구 2만6000여 명)이 이주했지만, 김천시 전체 인구로 보면 답보세다. 혁신도시 착공 시점인 2007년 14만564명에서 겨우 2000명 정도 늘었을 뿐이다. 일종의 풍선효과라 할 수 있는데 율곡동(혁신도시)으로 이주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인구는 줄어드는 경향이 눈에 띈다. 2008년과 비교하면 대신동(2만5358명→2만4538명), 양금동(5980명→4393명), 대곡동(2만3479명→2만61명), 지좌동(1만387명→1만293명) 인구가 줄었다. 인구 감소 폭은 원도심 중심부인 자산동·평화남산동이 더 크지만, 이들 주변부 지역도 쇠락하기는 마찬가지다.

인구는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신규 아파트도 과잉 공급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분양 주택이 발견된다. 2018년 4월 기준 김천시 전체 미분양 주택 수는 1379개다. 김천시 전체 세대수가 6만3375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구 수 대비 미분양 주택의 비율이 2.18%에 이른다.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분양이 안 된 ‘준공 후 미분양’도 850여 개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체 미분양 주택 가운데 803개가 율곡동 혁신도시에 위치한다. 도시 전체가 주택 과잉공급에 시달린다는 의미다.

미분양 주택은 지방도시의 주택 공급 과잉과 원도심 공동화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 이후 지방 부동산에 대한 투기성 수요가 한풀 꺾인 상태라 실수요 규모를 추정해볼 수 있다. 특히 부동산 업계에서 미분양은 그 자체로 ‘자산으로서 가치를 갖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지역과 도시에 비전이 없다는 판단이 반영된 지표다. 김천시와 유사한 다른 도시의 사례를 추출해내는 것도 가능하다.

원도심과 동떨어진 곳에 택지 개발 추진

전국 시군구 미분양 데이터에서 눈여겨볼 만한 지역을 선별해 42쪽 〈표〉에 정리해보았다. 최근 미분양 주택이 급격히 늘었고, 미분양 주택이 전체 가구 수 대비 1% 이상인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비중도 높은 편이다.

충청 지역과 영남 지역에 위험신호를 보내는 지방 소도시가 많다. 이들 도시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김천시와 같은 대형 신도시 유형이다. 충북 음성군이 가장 유사하다. 이곳에도 음성군과 진천군에 걸쳐 형성된 충북 진천음성혁신도시가 위치해 있다. 도청 소재지를 옮기면서 행정단지형 신도시가 개발된 곳도 있다. 충남 예산군은 인근 홍성군과 함께 충남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를 개발 중이다. 경북 예천군도 안동시와의 경계에 경북도청신도시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 지역 모두 원도심과는 동떨어진 지역에 대규모 택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단지가 확장될 것을 예상하고 주택 공급을 대폭 늘린 곳도 있다. 충남 서산시와 당진시, 경남 통영시와 거제시가 대표적이다. 서산시는 ‘서산 테크노밸리’를 조성했고, 당진시는 서해안 연안에 공장 지대를 조성하고 있다. 두 도시 모두 최근까지 인구가 늘었지만, 올해 들어 인구 성장률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경남 통영시와 거제시는 조선산업의 위기로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이다. 통영은 성동조선해양이 문을 닫았고, 거제는 대우조선해양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도시가 확장되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 동해시가 대표적이다. 동해시 인구는 2007년 9만6652명에서 2018년 4월 9만1845명으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동해시 북평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면서, 최근 미분양 주택이 급격히 늘었다. 2017년 1월 동해시 전체 미분양 물량은 184개에 불과했지만, 2018년 4월에는 1214개로 6배 이상 늘었다.

이 중에서도 경남 사천시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역이다. 사천시 전체 인구는 2007년 11만2499명에서 2013년 11만6851명으로 잠시 늘었지만, SPP조선이 문을 닫으며 산업단지 인근 지역에서 인구가 빠져나가 2018년 4월 11만4033명으로 감소했다. 행정기관을 옮긴 소규모 신도시 개발도 이 사이에 이뤄졌다. 본래 사천군과 삼천포시를 합친 사천시는 삼천포와 좀 더 가까운 용현면 일대에 시청과 법원 등 공공기관을 한꺼번에 이전했다. 옛 사천 원도심에서 8㎞, 삼천포 지역에서 7㎞ 떨어진 외딴 지역이다. 여기에 삼천포 지역 외곽에도 신규 아파트 건설 허가가 나면서, 동해시와 마찬가지로 최근 1년 사이에 미분양 아파트가 급격히 늘었다. 2017년 1월 277개에 불과했던 사천시 미분양 주택 수는 2018년 4월에는 1162개로 폭증했다.

통계가 ‘위험신호’를 보내는 지방 중소도시의 실제 원도심 현장은 어떨까? 5월27일 충청남도 당진시 서문1길. 옛 당진군청사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 이곳은 당진에서 이른바 ‘서문리 폐가촌’으로 불리는 동네다. 옛날에는 도심 시장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였지만, 10여 년 전부터 재개발이 수차례 번복되면서 지금은 버려진 동네가 되었다. 골목 담벼락 곳곳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철거’라고 표시한 흔적이 남아 있고, 버려진 집에는 인근 지역민이 내다 버린 생활 쓰레기로 가득했다.

ⓒ시사IN 김동인‘임대’ 전단지가 붙어 있는 경상북도 김천시 자산동의 한 빌라 외관.
문제는 원도심인 이곳이 재개발을 다시 추진할 만큼 더 이상 매력적인 주거지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문리가 버려진 10여 년 사이, 시 외곽에는 신규 아파트 단지가 차곡차곡 들어섰다. 서문1길 인근에 있던 당진군청사도 시 승격과 함께 외곽 신도시인 수청동으로 이전했다. 원도심인 당진1동은 주거지로서 매력을 잃고 인근 당진2동과 당진3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외곽 지역인 당진 2·3동에 새로 지은 아파트마저 제대로 분양이 안 되는 상황이다. 서문1길 폐가촌 뒤로 늘어선 아파트 벽면에는 ‘수청지구 59㎡ 분양’ ‘수청지구 오피스텔 분양’ 문구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원도심 남쪽 지역(당진2동)에 새로 조성된 신도심 수청지구 아파트 분양 광고였다. 당진시의 미분양 주택은 2017년 9월 409개에서 2018년 4월 964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미 완성된 빈집, 즉 준공 후 미분양도 512개로 전체 미분양 주택 가운데 53% 수준이다.

2016년까지만 해도 당진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산업 시설이 늘고, 인구가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2012년, 당진은 ‘군’에서 ‘시’로 승격했다. 당진시는 수청지구를 중심으로 주택 보급을 대규모로 늘렸다. 새로 유입되는 인구가 수요를 뒷받침했다. 2009년 13만8798명에서 2016년 16만6630명까지 인구가 늘었다. 그러나 최근 인구 증가세가 주춤하면서 미분양도 늘기 시작했다. 올해 4월 인구는 16만7540명, 사실상 2016년부터 정체된 상황이다. 그러나 당진시는 2기 신도심인 수청2지구까지 개발 계획을 세워두었고, 과잉 공급된 아파트를 해소하지 못하는 수준에 달했다.

인근 충남 예산군에서도 수도권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예산군 서쪽에 위치한 내포신도시. 지난 2월 입주를 시작한 이곳 한 아파트는 분양 사무실과 편의점, 떡집 외에 모든 상가가 비어 있었다. 입주 시점이 지났지만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분양 사무실에서는 ‘전세 분양’이라는 독특한 계약을 제안하고 있었다. “현재 미분양 물량인 72㎡ 아파트를 1억3000만원에 전세로 드리겠다. 그리고 2년 후에 분양가(2억~2억5000만원)로 전환하시면 된다”라고 소개했다. 2년 후 분양을 전제로 당장 싸게 전세를 내주되, 만약 2년 후 분양을 안 받겠다고 선언하면 위약금을 내야 하는 구조였다. 이미 쌓여 있는 ‘준공 후 미분양’을 떨어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미분양 주택은 신도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산군 원도심에도 철지난 미분양이 쌓여 있었다. 예산읍 한복판에 자리한 한 아파트에도 “실입주금 1800만원 최고급 아파트”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아파트는 2015년에 지어, 준공된 지 3년이 지났다.

‘면’ 지역보다 ‘동’ 지역에서 빈집 늘어

당진시와 예산군의 사례는 원도심 공동화가 슬럼화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분양 자체는 추후 신규 사업 인가를 틀어막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해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미분양 해소 과정에서 인구가 연쇄 이동한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하향 필터링 효과’로 설명한다. 인구가 정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최신 주택(미분양)으로 기존 고급 주택에 살던 사람이 이주하고, 그 자리를 그다음 단계 주거지에 살던 사람이 채운다. 그러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은 원도심 노후 주택이 되는 원리다. 자연스럽게 마지막에 남는 ‘빈집’에 대한 우려를 만든다. 특히 원도심이 공동화될수록, 원도심 거주민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는 고령화도 함께 나타난다.

학계와 정부에서는 이런 흐름을 한국형 ‘축소도시’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2017년 6월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국토정책 브리프〉에 따르면, 현재 전국 20개 도시(〈그림 2〉)에서 김천시와 같은 물리적 공급과잉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인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축소도시’를 추려낸 국토연구원은 “대부분의 축소도시가 인구가 감소하는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규 개발용지 확보를 위해 달성 불가능한 수준의 계획인구를 설정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 결과 지방도시의 원도심에서 공가율(빈집 비율)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센서스)를 통해 측정한 전국 빈집 수는 약 106만9000가구, 공가율은 6.5% 수준이다. 1995년 센서스 조사 당시 약 3만6000가구에 불과했던 걸 감안하면, 급격히 늘어난 수치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발견되는 빈집은 우리가 흔히 ‘시골’이라고 규정하는 ‘면’ 지역보다 ‘동’ 지역에서 더 가파르게 늘어났다. 지방 중소도시의 원도심 ‘빈집’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방도시 살생부〉를 지은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광역 단위로 행정구역을 정비하고, 그 안에서 도시의 위계를 정해 서로 역할을 분담하게 해야 한다. 광역 단위 간에는 분권과 균형이 필요하지만 226개 기초자치단체 모두에게 균형을 맞출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대규모 인구가 이동하지 않는 이상, 빈집과 도시 슬럼화 문제는 전국 곳곳에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규모가 작은 지방도시일수록, 그 후유증은 깊을 수밖에 없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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