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나라의 거리에서는 장애인들과 자주 마주친다. 이때 일종의 착각이 일어난다. “이곳은 한국보다 장애인들이 많은가?” 한국에서 장애인을 자주 마주치지 못하다 보니 장애인을 자주 마주치는 나라가 오히려 유별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과 복지 프로그램이 보장된다면 야외 활동을 하는 장애인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애인이 야외 활동을 못하는 데서 오는 고충은 물리적 불편에만 그치지 않는다.
폐쇄적 세계에 고립된 장애인은 사회적 교류, 생각과 감정의 공유, 삶의 질 향상 모두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비장애인은 어떤가? 그들은 장애인이 없는 세계에 산다. 그들은 미디어에서 간혹 묘사되고 재현되는 장애인들을 ‘관람’할 따름이다.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은 캐릭터이고 이미지이다.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비가시적인 존재가 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접촉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드물게 일어나는 접촉 상황에서 한쪽은 지나치게 위축되고 다른 쪽은 지나치게 무심하고 무례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친절할 것이다. 이처럼 ‘실패한’ 만남의 경험은 그 빈도가 높을 리 없는 미래의 접촉을 더욱 제약할 것이다. 이것이 악순환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은 비정상이라 낙인찍힌 이들은 소위 정상적 사람들과 만남에서 과도한 감정노동에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낙인을 지닌 존재는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낼 때, ‘정상인’들이 불편하지 않게, 말하자면 적절하게 처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긴장을 덜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비장애인이 자신들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는 그나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접촉이 어느 정도 있을 때이다. 그러한 접촉조차 없을 때, 장애인은 도대체 어떻게 상대를 대해야 할 줄 몰라 경직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상대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인은 장애가 아니다. 원인은 장애인들이 처한 사회적 고립이며 그러한 고립을 조장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한국에는 악명 높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도가 있어왔다. 이 제도들은 장애인의 고립과 그에 따른 낙인 효과를 강화해왔다. 극단적인 경우, 장애인들은 죽음에 내몰렸다. 활동보조인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화재로 장애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장애인 자식을 수급 대상자로 만들기 위해 부모가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식화했다. 그는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와 수요를 존중하면서 그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장애인 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한 부양의무제는 순차적으로 폐지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검찰에 의해 범죄로 규정된 장애인 해방 운동
그런데 두 제도의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 사람이 감옥에 갈 처지에 놓여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다. 검찰은 재판에서 그에게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했다. 장애인 인권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일반교통방해, 공동주거침입 및 공동재물손괴, 업무방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다.
장애인의 삶을 파괴해온 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박경석 대표는 도로에 진출했고, 미신고 집회를 열었고, 명동성당에 진입하다 차단봉을 훼손했다. 장애인의 고통과 죽음을 철저하게 외면한 사회의 장벽을 온몸으로 건너뛰어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장애인인 한 사람이, 아니 한 사람인 장애인이 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장애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절규해왔다. 정부는 그의 절규에 제도 개선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의 절규를 범죄로 규정했다. 하나의 감옥이 사라지고 있는데 또 다른 감옥으로 그를 보내려 한다. 갑갑하고 화가 난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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