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김용철 변호사

김용철 변호사(49·사시 25회·사진). 1989년 인천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부산지검 특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강직하고 수사를 잘하는 검사로 역량을 인정받았다. 잘나가던 김 검사가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삼성으로 갔다. 기업으로 이직한 최초의 검사였다. 김씨는 삼성에서도 잘나갔다. 그룹의 관제탑이라는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 들어가 재무팀과 법무팀에서 일했다. 한때는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문상을 가기 위해 제트 비행기를 띄울 정도로 권한도 막강했다. 그런데 김씨는 ‘별 중에 별’이라는 삼성 임원 자리를 갑자기 박차고 나온다. 삼성을 그만둔 뒤 법무법인 ‘하나’의 대표변호사를 거쳐 법무법인 ‘서정’에서 활동했다. 김씨는 한겨레신문사에서 기획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검사를 그만둔 까닭은?
검사 시절 음주 사고를 내고 도망간 친동생과 만취 상태에서 폭행한 처남을 구속하도록 했다. 때문에 친가와 처가 형제들과 의절한 상태로 지냈다. 나는 그것이 검사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전두환 비자금 수사를 하다가 쌍용 김석원 회장이 관리하고 있는 비자금을 찾아냈다. 그런데 YS가 (수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굽히지 않았다. 바로 부천지청으로 좌천성 발령이 났다. 일은 그만하고 덕을 쌓으라고 했다. 검사에게 수사를 하지 말라니, 나가라는 소리 아닌가?

곧바로 변호사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초임 검사 시절 변호사를 수사한 적이 있는데 수주 과정이 너무 지저분했다. 부하들에게 뇌물 주고 사건을 수임하고, 판·검사에게 일이 있을 때마다 인사해야 하는데 난 그런 짓 못하겠더라. 그래서 삼성으로 가게 된 것이다. 내가 지원했다. 국가 다음으로 망하지 않고 월급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아들 녀석 대학 등록금은 빚 안 얻고 벌었으면 하는 가난한 검사의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 들어간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

삼성에는 언제 갔나?
1997년 8월1일 변호사 업무를 안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삼성에 입사했다. 수습 기간인 인문교육이 끝나자 노조 분쇄팀에서 일하라고 했다. 검찰에서도 공안부에는 안 갔다고 버티자 법무 일을 보는 파트로 발령났다. 삼성이 바로 약속을 어긴 것이다.

7년 동안 삼성에서 잘 먹고 잘산 것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고 용궁 갔다가 몸 버리고 나왔다. 한 개인이 벌 수 없는 엄청난 돈과 권력을 줬다. 그 당시 삼성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 소송이 많이 걸리자 나를 쓸 데가 생겼다. 당연히 조직에서 인정받았다. 한때 삼성에서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사치를 했고 재산도 좀 모았다. 삼성은 더 많이 해주려고 했다. 타워팰리스나 수서 아파트도 준다고 했지만 받지 않았다.

삼성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비은행권 회사들의 재무 일을 맡았다. 또 에버랜드 편법 증여와 관련해 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하지 않도록 막는 게 내 임무였다. 삼성은 무리한 경영으로 수없이 소송을 당했다. 여기에 조언을 한 것도 내 몫이다. 후에 훌륭한 판·검사를 스카우트해 법무팀을 새로 짰다. 아무래도 내가 검찰 출신이니 검찰 내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이게 가장 힘들었다. 물론 안 한 건 아니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X파일 사건 때인 1999년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씨와 박인회씨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데.
이학수 부회장이랑 같이 만났는데 박인회가 테이프를 사라는 식으로 협박해 응하지 말자고 했다. 복사본은 끝없이 나온다. 정면 대응하라고 했다. 이와 관련한 보고서를 썼더니 이학수 부회장이 청와대에 보냈다. 이 부회장이 미행을 붙이고 여러 일을 했지만 이후 일은 나는 잘 모른다. 

삼성을 왜 그만두었는가.
임시로 빌려 입은 옷은 내 몸에 맞지 않았다. 여러 번 출근을 안 하고 도망도 가봤다. 하지만 자식 등록금도 내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공범이 되고자 노력도 많이 했다. 같이 술도 먹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 특히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사내 분위기는 참기 힘들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노릇을 하게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희 회장의 어록과 지시 사항은 사내에서는 헌법과도 같다.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게 내게는 무리였다. 삼성의 실체를 깨닫고 양심이 움직였다.

삼성에서 나오자마자 양심선언을 하는 것을 고민하지는 않았나?
다들 삼성과 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도 노력했다. 삼성을 떠나고 나서는 나도 감시 대상이었다. 어느 날 조선일보 기자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다음날 구조본에서 전화가 왔다. 한겨레 기획위원을 했는데 삼성과 관련 있는 기사가 나오기만 하면 나를 의심했다. 지난 5월에는 삼성의 한 인사가 한겨레 기사를 트집 잡아 내가 일군 로펌에서 날 내쫓았다. 그 삼성 인사는 나에 대한 조처를 요구하면서 ‘가볍게 듣지 말라, 다른 기업들에게도 반기업적인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이라 알려 영업을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로펌에 복귀를 하려면 삼성에 가서 각서를 받아오라고 한다. 내 회사 내가 다니는데 삼성에서 각서를 받아오라고?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나도 사람인데 솔직히 두렵다.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들의 거대한 힘을 안다. 삼성 조직을 잘 아는데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조직에서는 벌써 강수를 썼을 것이다. 내 자격을 없앨 수도 있다. 검찰과 언론에 상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은 건드릴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못한다고 했다. 나는 공범이다. 나의 고백이 양심선언은 아니다. 자수서를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모두가 자살 폭탄 테러라고 말한다. 삼성의 공이 크다. 욕할 생각 없다. 하지만 모든 국가기관을 능멸하는 구조본과 이건희 회장의 행위는 범죄다. 

삼성에서는 뭐라고 하나?
언론을 다 막았으니 해봐야 소용없다고 한다. 유언비어와 협박으로 나를 미치광이로 몰아가고 있다. 미친놈의 망상이라고 보기에는 7년 동안 경험한 게 너무 많다. 가정마저 파탄나게 한 주범들이 내 아내가 보낸 편지를 구실로 돈을 바라는 부부 공갈단으로 만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삼성에서 돈을 주겠다고 하고, 로펌을 차려주겠다고 한다. 내가 삼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데 검찰과 청와대에서 더 설치고 나선다. 모든 권력기관이 경제 권력 삼성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선까지 온 것이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삼성의 숙원 사업을 정책으로 들고 나와 떠든다. 삼성에서 누명을 만들겠다는데 그것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 황량한 뒷골목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삼성은 그 죽음을 감수하고도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거악이다. 내가 이 사회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공범이다. 깊이 뉘우친다. 구속될 각오가 돼 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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