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나래아동 인신매매 피해자 양양 씨.
“그때 나는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내 의붓아버지는 대우건설에서 일하던 트럭 운전기사였다.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가 드라이브를 시켜준다며 날 데리고 나갔다. 그때 옆에 미스터 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아무튼 신이 나 있었다. 그런데 트럭이 한참 달리다가 사람이 안 다니는 깊은 산길로 들어가더니만 딱 서버렸다. 아버지는 그 남자와 나만 두고 차에서 내리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미아타 키아졸라 씨(36)는 무표정한 얼굴로 20년 전 일을 떠올렸다. 미아타는 의붓아버지의 알선으로 한국인 심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했다. 꽤 힘든 수술 끝에 제퍼슨(21)을 낳았지만, 그녀의 의붓아버지는 해고될 것이 두려워 딸의 임신 사실을 심씨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여자를 성폭행하지 맙시다’ ‘성폭행은 죄입니다’ ‘성폭행을 당한 뒤에는 에이즈 검사를 받으세요’.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 거리에는 거의 100m마다 하나씩 이러한 공익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여전히 구조적 불안에 시달리는 라이베리아에서 성범죄는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공론화된 지 오래이다. 미아타가 심씨를 성폭행범으로 신고하지 않은 것은 당시 그녀가 어렸던 탓도 있지만, 실제로 라이베리아 내에서 벌어지는 외국인 관련 성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 여성이 직접 신고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열네 살에 한국인 아이 낳고…

라이베리아 여성 변호사 협회의 세루 쿠퍼 변호사(38)에 따르면, 수도 몬로비아 내에서만 성폭력 사건이 하루에 대략 열 건 신고되는데, 놀랍게도 외국인, 특히 평화유지군이나 사업가에 의한 범죄가 많다. 그녀는 “정서상 신고하지 않는 피해자가 대부분임을 고려할 때 외국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훨씬 더 많다”라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피해여성이 신고도 하지 않는 이곳에서 몇몇 한국 남자들은 거리낌없이 성범죄를 저질렀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거나 성매매하는 행위를 넘어, 아동 인신매매도 서슴지 않았다.

열세 살 되던 해 양양 씨(34)는 한국인 심 아무개씨에게 팔려갔다. 양양의 증언이다. “나는 ‘보미’라고 불리던 시골 마을에 살았는데, 아이가 셋이라 부모님은 내 학비까지 댈 수 없었다. 심씨가 우리 부모님에게 약간의 돈과 음식을 주면서, 나를 식모로 쓰는 대신 시내에서 더 좋은 학교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이듬해인 1988년, 나는 열네 살의 나이로 첫째 은보(20)를 낳았다.”

그녀의 삶은 열세 살 이후로 망가졌다. 8학년을 마지막으로 학교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심씨는 당시 한국에서 액세서리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을 수입해다 팔곤 했다. 양양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심씨가 시키는 일만 했다. 그녀는 마른 눈물이 느껴지는지 뼈만 앙상한 손으로 눈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강은나래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범죄’ 관련 공익 광고판.
“1993년에는 둘째 현보(15)까지 낳았다. 심씨가 갑자기 한국으로 떠난 것은 1995년이었는데,  그 이후로 종종 연락을 하고 생활비도 부쳐줬다. 1997년에는 나를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대전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나는 6개월 동안 여관방에 갇혀 지내면서 텔레비전만 봤다. 노예처럼 하루 종일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셋째 은실(10)을 임신했다. 1998년 이후로는 연락도 없다.”

라이베리아 현행법에 따라 인신매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처벌 대상이지만, 양양 씨는 법도 희망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녀는 지지난해부터 알 수 없는 복통에 시달린다. 병원에서는 비타민제만 줄 뿐이다. 그녀는 계속 말라만 간다. 양양 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한국인 부부가 현보와 은실이를 맡아 안정적인 가정에서 키우고 있다. 첫째 은보는 돌봐주던 한국인 사업가에게 겁탈당할 뻔한 충격으로 학업을 잠시 중단했으나, 현재는 한 중국인 여성의 도움으로 나이지리아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나라 법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

해외에서 벌어진 성범죄의 경우, 피해 당사자의 신고나 고소에 따라 피의자가 속한 국가의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미성년자 성매매의 경우는 부모에 의한 알선이라 하더라도 국내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 제10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공소시효는 10년. 또 아프리카 현지에서 성폭력 또는 성매매 과정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는, 한국인 생부를 상대로 인지청구(친자확인)를 해 인정받은 후 양육비를 청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라이베리아 피해 여성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이들은 소송 관련 비용은커녕 비행기 값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루 쿠퍼 변호사는 “라이베리아 정부가 외국인 관련 성범죄를 더욱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 생부는 거의 대부분 도망가기 때문에, 여성이 출산 전에라도 요구하면 생부와 양육비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국인에 의한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라고 호소했다.

기자명 라이베리아·강은나래 (자유 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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