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

김항주씨(34·사진)는 미국 월가의 흥망을 현장에서 생생히 지켜본 8년차 모기지 채권 파생상품 트레이더다. 199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스쿨에서 금융과 경제학을,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에서 금융을 수학했다. 1999년 QFS라는 외환 전문 헤지펀드에서 한국에서는 흔히 외환 딜러로 불리는 통화 트레이더로 월가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얼라이언스캐피탈(자산운용 회사), 구겐하임파트너스(생명보험 자산운용회사), 워싱턴뮤추얼(미국 최대 저축은행) 같은 회사에서 채권 운용 전략가와 모기지 채권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특히 2005년부터 워싱턴뮤추얼에서 일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던 미국 월가가 어떻게 초토화하는지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올해 초 파산 위기에 몰린 워싱턴뮤추얼은 지난 9월 끝내 대형 상업은행 JP모건체이스에 인수되었다. 김씨는 현재 알파리서치캐피탈이라는 소규모 금융 부티크 회사로 옮겨 포트폴리오 매니저 겸 브로커로 일한다. 잠시 방한한 그를 10월15일 만나 월가가 왜, 어떻게 망했는지를 들었다. 미국발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등에 관해 그는 매우 비관적 예측을 내놓았지만,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말을 가급적 그대로 옮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가 아우성이지만, 진짜 위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년에 대폭락 장이 올 것이다. (미국) 다우지수 5000, (한국) 코스피지수 500, (일본) 니케이지수 5000으로 폭락하는, 반토막 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실물경제가 갈수록 나빠질 것이 틀림없고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확 줄어들면서 자산 가격도 급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동성과 레버리지, 그리고 자산 가격은 항상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아마 (당선된다면) 오바마 임기 시작 전에 폭락 장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선거가 있는 11월 4일부터 내년 2월 취임하기 전 대폭락 장세가 오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후버(대통령)가 경제를 다 말아먹고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당선했을 때 루스벨트는 후버를 만나지도 않았다. 오바마로서는 경제가 망가질 거라면 완전히 망가진 후 집무를 시작하기를 원할 것이다. 집권 뒤에도 경제가 계속 망가지면 일하기도 어렵고 연임에도 유리하지 않다. 오바마는 당선된 후 부시 행정부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스톱’을 요구하지 않을까. 폴슨같은 장관들도 어차피 다 갈릴 텐데, 대통령 당선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005년 말  딸꾹질하듯 아주 잠깐 위기 징후가 나타났으나 월가가 아연 긴장하기 시작한 때는 2007년 2월이었다. 모기지 업체 2위인 뉴센추리파이낸셜이 파산한 것이다. 그 후 자고 나면 중소 은행이나 헤지펀드 어디가 파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택 가격 하락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실해졌고, 모기지에 바탕해 만들어진 파생상품도 자산 가치가 떨어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연쇄 부실 상황에 처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부실은 사실 주택 값이 떨어지기 시작한 2006년부터 발생했지만, 지난해 7월 들어 물 위로 올라왔다.

앞으로 더 큰일이 벌어지리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내 지난해 9월 몸담았던 워싱턴뮤추얼에서 첫 번째 해고 사태가 일어나면서 나는 ‘모든 것이 괜찮지 않다(Everything is not fine)’는 생각에 미쳤다. 그동안 월가가 너무 쉽게 돈을 벌었고 나 역시 한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아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해왔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반성했다. 1달러라도 아끼자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끝이 아니었지만 올 3월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파산한 것은 월가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베어스턴스가 모기지 파생상품을 많이 취급해 부실이 많으리라는 짐작은 했지만 파산할 줄은 몰랐다. 넘어가기 겨우 일주일 전에 CEO가 텔레비전에 나와 ‘베어스턴스는 괜찮다’고 큰소리쳤었다. 베어스턴스가 JP모건체이스로 넘어가면서 월가에는 위기의식이 한껏 높아졌지만 이것으로 진정되리라는 기대 또한 높았다.

그러나 (9월)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가 넘어가면서 월가는 공황 심리에 빠졌다. 위기를 예감했던 나도 정말 충격적이었다. 시장이 무섭다는 생각을 비로소 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3, 4위 투자은행이 이렇게 한순간에 자빠지는구나 하는 공포가 엄습했고 ‘이제 월가도 끝이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막막했다. 월가 사람들은 누구나 고액 연봉자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직장을 잃은 내 동료들은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이 태산 같다. 요즘 월가는 금융회사의 무덤이 되다시피 했다. 이미 직장에서 잘려 나간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앞으로 더 많을 것이다. 전성기 때 인력의 절반은 집에 가야 할 것이다. 은행만 해도 1000여 개가 도산하리라는 관측이 나오지 않나.

월가가 초토화된 가장 중요한 이유를 딱 한 가지로 꼽는다면 ‘과도한 레버리지’를 들겠다. 가령 내 돈(자기자본)은 1000원뿐인데 3만원 빌려 그것으로 무엇을 사 3만6000원을 만든다. 3만원 빌려준 쪽에 이자를 쳐서 3만2000원을 갚아도 4000원의 수익을 거둔다. 레버리지가 30배가 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2006년까지는 별일 없이 큰돈을 벌었다. 남의 돈을 많이 빌려 투자할수록 똑똑하고, 레버리지가 낮으면 바보스럽다는 풍조마저 만연했다. 이런 거래는 드러나지도 않았다. 대차대조표에 넣지 않아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부외(off sheet) 거래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지나친 레버리지를 조장한 주범은 앨런 그린스펀(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IT 버블이 꺼진 후 경기 침체를 막겠다는 이유로 2001년부터 연준 기준금리를 떨어뜨리기 시작해 1%대의 초저금리 상태를 너무나 오래 방치했다. 1%라는 싼 이자로 돈을 빌려 몇 달 만에 몇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보 아닌가. 아마 금리가 5%였다면 함부로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린스펀이 가장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돈 냄새를 가장 잘 맡는 투자은행이 앞장서긴 했지만, 상업은행 같은 금융기업도 모두 과도한 레버리지 대열에 뛰어들었다. 

 

ⓒReuters=Newsis

모두의 ‘탐욕’이 금융위기라는 참극을 빚었다. 사실 개인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직장(소득)이 없어도, 심지어 숨만 쉬어도 가능하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모기지론을 빌리는 게 쉬웠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모기지 대출회사들은 찾아오는 고객만 기다리지 않고 고객을 찾아 다녔다. 나중에는 한국의 보험 아줌마 같은 모기지 브로커들이 무자격자에게도 모기지론을 줄 테니 집을 사라고 꾀었다. 주택 수요는 계속되었고 그러니 집값도 계속 올랐다.
 
“위기 몰고온 대표 인물은 그린스펀”

금융기업이나 주택 구매자(소비자) 모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같은 흐름을 깬 이가 벤 버냉키(현 연준 의장)다. 2006년 버냉키가 연준에 들어서면서 경기 과열을 막겠다며 금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집값이 떨어졌다. 한국의 경우 노무현 정부가 적어도 50%는 자기 돈으로 집을 사게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미국도 30% 정도는 다운페이먼트(자기 돈으로 내야 하는 계약금)하게 했는데, 모기지 업체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모기지론이 집값의 70%에서 거의 100%까지 올라갔고 급기야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 모기지까지 폭증한 것이다. 신용도를 따지지 않고 대출한 것은 한마디로 신용의 붕괴다. S&P나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기관도 잘못했다. 무조건 트리플 A(AAA) 등급을 준 것이다. 그들도 이윤 극대화를 꾀하는 민간 기업이니 후하게 평가를 해주어야 돈벌이가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 책임이 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굿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모두 공범이다. 연준도 그렇고 투자은행도 그렇고 프레디맥이나 패니매 같은 공적 성격의 모기지 업체도 그렇다. 특별히 누구를 콕 집어서 비난하기 어렵지만 굳이 꼽으라면 그린스펀을 들겠다. 그린스펀으로부터 부실한 유산을 물려받은 학자 출신의 버냉키는 요즘 아마 프린스턴(대학)에서 책이나 쓰고 있을걸 하고 후회할 것이다. 골드만삭스에서 떵떵거리던 폴슨은 악쓰고 성질내고 쇼하던 게 습관이 됐는지 낸시 펠로시(하원 의장) 앞에 가서 무릎 꿇고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쇼도 잘하던데 버냉키는 잔뜩 찡그리고만 있다.

 

 

 

ⓒReuters=Newsis다우지수가 189포인트 떨어진 10월8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전문가가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데 은행이나 모기지 전문 대출회사들은 어떻게 모기지론을 그렇게 끝없이 팽창시킬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것이다. 그것은 월가라는 무궁한 판매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기지 대출회사가 20~30년 만기가 될 때까지 모기지를 들고 있어야 했다면 대출 규모(대출 여력)의 한계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기지 이자가 6%라면 0.25~0.375%의 이자를 서비스 수수료 명목으로 떼고, 모기지론의 원금과 나머지 이자를 묶어 MBS(주택담보부채권·대출금을 회수하기 이전에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발행하는 유동화 채권)를 발행해 월가 금융회사에 넘겼다.

 이 대목에서 활약하는 것이 파생상품이다. 리먼브러더스나 베어스턴스 같은 투자은행과 워싱턴뮤추얼 같은 저축은행 등은 여러 은행과 모기지 전문 대출회사에서 사들인 MBS를 한곳에 넣고 재유동화 혹은 구조화(원금과 이자의 상환 기간과 상환 형태, 상환 주체와 주체별 우선순위 등에 대한 규칙을 짜는 일) 과정을 통해 여러 형태로 잘게 쪼갠다. 쪼개진 이것을 트랜치(tranche)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판매 단위가 된다. 모기지론을 잘게 쪼개는 것은 투자자의 요구가 다른 탓이다. 가령 상업은행은 이자는 덜 받더라도 원금을 빨리 회수하기 원하지만 보험회사는 원금을 늦게 받더라도 이자를 많이 받길 원한다.

내가 워싱턴뮤추얼에서 한 일도 이것이다. 모기지 대출회사로부터 MBS를 회사 돈으로 사들인다. 한 달에 적게는 1조 달러 많게는 2조 달러어치를 사서 ‘풀(pool)’을 만들고 구조화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을 거쳐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회사에 판다. 거래 당사자는 100% 기관투자가(투자은행·상업은행·보험회사·헤지펀드·연기금·자산운용 회사 등)이다.

나는 취급하지 않았지만, 유독 부채담보부채권(CDO)이 요즘 부실의 온상으로 지목된 것은 이자뿐 아니라 원금을 넣은 데다 풀을 만들 때 모기지 채권과 상관없는 다른 고위험 채권까지 넣어 위험의 크기를 잔뜩 키웠기 때문이다. 구조화 과정이라는 ‘당의정’을 입혀 괜찮은 상품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기관투자가는 CDO 같은 파생상품을 사들인 후 이 상품의 가격이 올라가기를 기다린다. 상승 조건은 스프레드가 줄어드는 것, 다른 말로 모기지 채권 가격이 오르는 것인데, 이것은 주택 값이 계속 올라야 가능하다. 모기지 파생상품을 집중 취급했던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 워싱턴뮤추얼, AIG 등이 거꾸러진 것은 이 상승 조건이 하락으로 돌변한 탓이다. 메릴린치는 CDO 거래가 많았다. 결국 모기지 채권 신용 파생상품에 많이 노출된 금융회사는 모두 망했다. 모노라인(보증업체)이나 AIG의 경우는 부도가 날 때 손실을 보장하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보장 매도를 많이 해 파산하거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내몰렸다.

 

 

ⓒReuters=Newsis‘블랙위크’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난 9월16일 월가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한 달 후 세계는 다시 실물경제 위기에 휩싸였다.


“각국 정부의 개입, 큰 효과 없을 것”

이미 많은 금융회사가 넘어졌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초기 상황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주로 투자은행만 부실을 인정하지 않았나. ‘얼마의 부실을 갖고 있노라’고 고백하는 금융회사가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다. 소비자도 자동차 할부대금 못 내고 신용카드 대금도 못 내고 급기야 마지막까지 버티던 모기지론 상환까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악화로 급속히 귀결된다.

앞으로 부실을 인정하는 금융회사가 파산하거나 자본량이 줄어들면서 갈수록 금융 활동이 위축될 것이다. 누군가는 돈을 꿔주고 빌려 써야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에 각국 정부가 신용경색을 누그러뜨리려고 최후의 보루(Last Resort)를 자임하며 개입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큰 효과는 없을 것 같다. 죄 많은 인간들이 워낙 위험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엄청난 레버리지를 썼기 때문에 정부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금융시장 규모가 커졌다. 쥐가 공룡을 잡겠다고 덤비는 형국 아닌가. 지금은 1970년대 유가파동 때와는 판이하다.

어쩌면 자유주의 경제학을 부르짖은 밀턴 프리드먼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1981년 레이건 정부 때 자유경제가 시작했지만  본격 활성화한 것은 1990년대다. 이때 금융 관련 규제가 없어지면서 파생상품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금융회사가 파생상품을 개발한 이유는 한 가지다. 레버리지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동안 레버리지를 높여 폭탄 돌리기를 해왔고 2006년까지는 누구의 뒤에도 폭탄이 놓여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폭탄이 놓여 있다.

 

 

 

ⓒ뉴시스10월10일 다우지수 9000포인트가 붕괴된 탓인지 1241포인트로 가파르게 내리꽂힌 한국 주식 가격을 스크린이 비추고 있다.

 

월가 출신이 워싱턴(미국 재무부)을 장악했기 때문인지 정부도 (건전성) 규제를 하지 않았고 금융회사 스스로도 위험 관리를 하지 않았다. 아니 위험을 잘 몰랐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위험관리 시스템이 붕괴했다. 사실 레버리지가 과도하게 높은 상태에서 파생상품의 리스크는 더더욱 파악하기 어렵다.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혜안통(慧眼通)이 있는 사람만이 리스크를 볼 수 있다. 과거 몇 년간 일어났던 일을 중심으로 아무리 모델을 돌려봐야 위험의 크기가 파악되지 않는다. 사실 레버리지가 과도하면 리스크가 올라가는 것은 상식인데, 빚 얻어 아파트 한 채 사서 돈 번 사람이 두 채 다섯 채 사는 데 별 위험을 못 느낀 것과 비슷하게 미쳐 돌아갔다. 앞으로는 고강도의 규제가 이루어져 은행의 자산·부채와 투자 상황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이번 계기로 금융감독을 하는 국제기구가 출현하지 않을까 싶다.

갈수록 세계 실물경제가 나빠질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과 연결짓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주장이 많지만, 당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앞으로 레버리지가 줄어들어야 하고 줄어들 것이다. 규제가 가해지겠지만, 더 이상 이렇게 영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산 가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령 10억원 나가던 아파트가 3억으로 폭락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현재  드러난 모기지 부실은 6000억 달러다. 경제학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누리엘 루비니(뉴욕 대학 교수)는 1조~2조 달러가 되리라고 추정하지 않나. 그렇다면 현재 손실이 절반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손실 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될지는 신만이 알 것이지만, 부실이 빨리 드러나지도 않을 듯하다. 나는 지난해 부실이 한꺼번에 튀어나올 것으로 봤는데, 일년 이상 늦어졌다. 빨리 매 맞고 자빠질 것은 자빠져야 하는데, 인간의 심리가 이를 억제할 것이다. 부실 회사 CEO일수록 손실을 가급적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칠 것이어서 누가 콕 찍어서 드러내지 않는 한 자백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미국식 투자은행 도입은 무리”

한국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체는 아니지만, 과잉 유동성 기류에 편승하지 않았는가. 지난 10년간 부동산 가격도, 주식 가격도 지나치게 많이 올랐다. 모두가 긴축하고 레버지리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도 규제를 강화해 레버리지 줄이고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려야지 반대로 가면 큰코다칠 것이다. 미국식 투자은행 모델을 도입한다고 들었는데, 무리라고 본다.

레버리지를 확 줄이면 금융회사든 제조 기업이든 도산이 속출할 것이고 그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지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한국도 세계적인 과잉 유동성 시기에 분수에 넘치도록 흥청망청 쓴 죄값을 치러야 한다. 죄 값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내 손의 현금이 가장 안전한 투자다. 손해 봤더라도 팔아야 한다. 원래 못살던 아프리카 빈국이나 이 위기 상황에서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내년 봄쯤 내가 겪었던 월가와 금융위기 이후의 파장, 그리고 미국이 나아갈 길에 대한 생각을 책(가제 〈매봉역 비닐하우스에서 월가까지〉)으로 엮을 작정인데, 나 역시 앞으로 전개될 일이 두렵다.

 

기자명 장영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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