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지난해 대선 패배와 18대 총선 패배(위 사진) 이후 민주당은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국정감사가 한창인 요즘 민주당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자신들이 외부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 새삼 실감하는 중이다. 대개 국감을 전후해서는 의원실로 각종 민원이 쏟아진다. 대표적인 것이 증인 선정에서 빼달라는 청탁. 특히 정치인에게 추궁당하기를 죽기만큼이나 꺼리는 기업 총수나 임원들은 계열사를 총동원해 로비에 나선다. 여야 국회의원이 국감 때마다 수십명에 이르는 재계 인사를 증인 리스트에 올려놓고 협상을 벌이는 것도 어찌 보면 재계를 상대로 세를 과시하는 측면이 있다.

이번 국감을 앞두고도 어김없이 많은 총수의 이름이 증인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비가 한나라당으로만 집중될 뿐 민주당 쪽에는 아예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올해로 13년째 국회 밥을 먹는다는 한 민주당 의원의 참모는 “야당 때도 꼬박꼬박 민원에 시달렸다. 여당에서 아무리 빼주려 해도 야당 의원이 물고 늘어지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야당 의원에게는 밀고 당기다 거절하는 재미가 짭짤하다. 헌데 이번에는 면담 요청조차 없다. 민주당을 졸로 본다는 얘기 아니겠는가”라며 개탄했다.
 

 

“기업마저 민주당을 ‘졸’로 본다”

민주당이 추락한 위상을 실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대선과 18대 총선에서의 연이은 참패 이후 민주당은 대중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서 민주당은 시위대의 냉대를 받았고, 이명박 정부의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10%대에 머무른다. 언론이 민주당을 대하는 태도는 더더욱 차갑다. ‘한편 정당’이라는 별칭은 이를 함축한다. 여권 내부의 주장과 갈등을 한창 늘어놓은 다음, ‘한편, 민주당은’으로 시작해 한마디 걸치는 기사가 요즘 민주당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라는 얘기다(〈시사IN〉 제55호 34쪽 참조).
정치권과 연예계에서는 욕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한다. 표와 인기를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그렇다면 83석이나 되는 의석을 가지고도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한 민주당에 정녕 미래는 없는 것일까? 국민은 민주당의 무엇에 실망했고,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것일까? 
〈시사IN〉은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민주당’을 주제로 한 심층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우선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는 19.5%로 여전히 10%대에 머물렀다. 한나라당이 31.7%로 압도적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민노당 4.5%, 친박연대 3.4% 순이다. 이런 한나라당 강세는 노무현 정부 4년차에 들어선 2005년 5월 이래 꾸준히 이어지는 흐름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20% 초반에 머무르는 상황에서도 한나라당 지지도가 월등히 높게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안티 이명박 정서’를 수렴할 만한 대안이 없음을 보여준다. 조사를 진행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한귀영 실장은 “제1 야당인 민주당이 각종 이슈를 선점하는 데서 한나라당에 밀리고, 특별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등 양당 간에 경쟁 구도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이 결국 한나라당 강세가 지속되는 요인이다”라고 분석했다.

 

 

서울 지지층(11.9%)이 대구·경북(5.5%), 부산·경남(9.5%)에 이어 세 번째로 적다는 점은 민주당에 뼈아픈 대목이다. 호남과 더불어 민주당의 최대 지지 기반이었던 수도권 진보층이 대거 등을 돌렸다는 의미여서다. 호남에서도 51.6%만이 민주당 지지를 밝혔고, 나머지 40% 이상은 부동층으로 빠졌다.
민주당 지지층에게 민주당을 왜 지지하는지 물었다. 35.7%가 ‘지지할 만한 다른 정당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대안이 생기면 언제든지 다른 정당으로 옮아갈 지지자가 많다는 얘기다. 특히 서울과 부산·경남 지지자가 그랬다.

지난 9월22일 실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정책 추진 능력’을 한나라당 지지 이유 1위로 꼽았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정책 추진 능력’을 꼴찌로 뽑았다. 그만큼 민주당은 지지층에서조차 ‘무능한 당’으로 평가받는다는 얘기다.

현재 지지도야 그렇다 쳐도, 민주당의 미래를 훨씬 더 불투명하게 만드는 대목은 집권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전망과 차기 리더의 부재다.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5.9%가 낮다고 대답했다. 집권 전망이 높다는 응답은 25.6%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의 차기 정부가 진보개혁 성향이기를 바라는 층에서도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은 30.8%에 그쳤다. 다만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낙관적인 전망(52.5%)이 비관적인 전망(42.6%)보다 약간 높았다.

 

 

 

 

ⓒ뉴시스민주당의 정체성을 두고 진보 논객은 ‘좌로 한 클릭’을, 보수 논객은 ‘우로 한 클릭’을 외친다. 위는 소설가 복거일씨(왼쪽에서 네 번째)가 연사로 나온 민주당 정책포럼.

‘다음 대선에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차기 지도자로 적합한 인물’을 묻자 ‘박근혜’라는 응답이 35.1%나 나왔다. 민주당에서는 정동영·손학규·추미애·김근태 정도가 거론되었는데, 수치가 미미하다. 지금 추세라면 박근혜 전 대표의 위세는 갈수록 대단해지리라 보인다. ‘박근혜’라는 응답이 한나라당 지지층의 과반(52.7%)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당 등 비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가장 높게 나타났다(박근혜 21.9% 〉 정동영 19.2% 〉 문국현 9.3% 〉 손학규 7.7%…). 이런 지지세 때문인지 내후년 지자체 선거 때는 ‘박근혜 공천장’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돈다. 안티 이명박의 수혜자가 야당인 민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내 야당 격인 박 전 대표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야권 지도자로 거론되는 이름도 다 지난 대선 때 인물이라 야권의 인재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갈수록 대단해질 ‘박근혜의 위세’

단독 지도자감이 시원찮으면 신망받는 세력이 구심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민주당은 희망이 안 보인다. 최근 민주당 내 개혁 성향을 지닌 김근태·천정배·이미경 등 몇몇 전·현직 의원이 우경화하는 정세균 체제의 민주당에 균형을 잡아보겠다며 ‘민주연대’라는 새로운 결사체를 만들었지만, 이에 대한 평가 역시 싸늘하기 때문이다. 응답자들은 ‘민주연대’에 대해 기대가 된다(26.7%)보다 ‘열린우리당 출신의 옛날 인물이 대부분이라 기대가 되지 않는다’(67.9%)고 매몰차게 평가했다.

 

 

 

 

집권 능력 없고, 참신한 리더는 안 보이고, 정체성도 모호한 마당에, 쇄신을 위한 노력은 부족하고…. 이 정도 평가면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진단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이 아닌 대안 야당의 필요성이 자연스레 제기된다.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당이 아닌 다른 대안 정당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 가까이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74.3%가 제3의 대안 야당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여기까지는 응답자들의 생각이 일관된다. 그런데 ‘대안 야당’을 만드는 방식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대번 혼란상을 드러낸다. ‘민주당을 포함한 비한나라당 진영의 향후 진로’에 대해 ‘새로운 세력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응답(27.1%)보다 ‘민주당 중심으로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63.7%)이 두 배 이상 높이 나온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물론 민노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지지층에서조차 민주당 중심의 개혁을 더 많이 지지했다는 것은 해석 난망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민노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이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 해체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결과다”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문제인데, 그렇다고 무조건 해체했다가 아무런 대안도 못 내놓으면 더 큰 문제가 아니냐는 현실적 걱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개혁 방향을 놓고도 혼란은 이어진다. 이른바 정체성 논란이다. 응답자들은 이명박 정부 이후 차기 정부가 지향할 가치로 ‘보수·안정’(41.6%)보다는 ‘진보·개혁’(52.4%)을 선호했다. 2005년 말부터 보수안정 대 진보개혁의 선호도가 팽팽하게 이어져왔던 것에 비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다(31쪽 상자 기사 참조). 심지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차기 정부는 ‘진보·개혁 성향이었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40% 가까이 나왔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대변할 만한 정치 세력이 출현하기를 기대하는 심정이 녹아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정세균 체제에 대해서도 진보·개혁성을 강화하라고 주문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 안에서 논란이 불붙기 시작한 정세균 체제 민주당의 구실에 대해서는 오히려 보수 안정을 용인하는 결과가 나왔다. 정세균 체제 민주당이 ‘견제와 비판을 하는 야당’(33.4%)이기보다 ‘국정에 대한 동반자로서 책임을 지는 정당’(59.2%)이 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민주당을 포함한 비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선명 야당’을 주장하는 한 민주당 의원은 “발목잡기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 어감, 국정의 동반자, 책임 정당이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적 뉘앙스가 작용해서 나온 모범 답안”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헷갈리는 답변에 혹해서 진보 가치를 포기하거나 비판과 견제를 게을리 하면 지지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1996년 ‘젊은 피’로 수혈한 김민석 후보 지원에 나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민주당의 변화 방향을 놓고는 훈수를 두는 이들의 의견도 사뭇 다르다. 민주당의 싱크탱크 격인 민주정책연구원이 마련한 정책포럼에서 진보 논객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민주당이 회생하려면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성과 투쟁성의 회복을 통해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반면 보수 논객인 소설가 복거일씨는 “경제적 자유정책은 이미 전체주의 경제와의 경쟁에서 이겼다.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더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내놓아야만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다”라고 조언했다.

민주당은 개혁진영의 ‘계륵’

이처럼 민주당의 정체성을 두고 당 내부는 물론 지지층·훈수꾼 사이에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마치 열린우리당 시절의 정체성 혼란을 연상시킨다. 이 때문에 민주당 해체론자들은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과감히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35·37쪽 인터뷰 참조). 아무리 토론해봤자 지금 민주당으로는 대안 야당이 될 수 없으니, 새로운 세력의 태동을 위해 밑거름이 되라는 것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 중심 개혁론자들은 “무책임한 소리 그만하라”고 되받아친다. 개혁 진영에 최소한의 비빌 언덕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4·36쪽 인터뷰 참조). 개혁론자들은 DJ식 모델을 예로 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 재야와의 정책 연대, 정동영·김민석·추미애 등 젊은 피 수혈을 통해 끊임없이 지지 기반을 넓혔듯 민주당도 길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개혁을 주도할 리더십도, 외부에서 데려올 만한 인재풀도 없다는 것이 해체론자들의 재반박이다.
해체론과 개혁론의 물고 물리는 공방을 듣다 보면 민주당의 미래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2008년 현재 민주당은 먹지도 뱉지도 못하는 개혁 진영의 계륵이라는 점이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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