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김 아무개씨(30)는 1997년 인천의 ‘우리 집’을 나와 11년간 ‘내 방’에서 살았다. 반지하방, 하숙방, 고시텔, 원룸 등을 옮겨 다니면서 김씨는 자기의 주거공간을 줄곧 ‘방’이라고 불렀다. “공간 욕심이 많아져” 혼자 방 두 칸짜리 오피스텔에 사는 지금도, 그는 예전 버릇을 못 고치고 집을 ‘방’이라 한다. 언젠가는 ‘내 방’ 생활을 접고 ‘내 집’을 구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한국, 특히 서울의 많은 이들은 방에 산다. 기러기 아빠, 비혼 남녀, 소년·소녀 가장, 독거 노인 등이 단칸방 혹은 쪽방, 고시원과 원룸에 흩어져 산다. 방살이 인구는 ‘1인 가구’ 수치로 대략 짐작해볼 수 있다. 서울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2.4%인 76만8457가구(2008 서울통계연보). 대개 보증금을 낀 월세(39%) 형태로 사는 그들 중 다수(45%)는 바로 25~34세 사이의 청춘이다. 방에 사는 기러기 아빠와 홀로 사는 노인은 사회문제가 되지만, ‘방에 사는 청춘’을 걱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젊은이에게 방은 ‘우리 집’을 나와 ‘내 집’을 장만하는 사이 잠시 거쳐가는 공간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이제 달라졌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비정규직 고용 체제가 확산됐다. 졸업도 취업도 결혼도 유예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파트 값이 오른 만큼 방 값도 올랐다. 서울의 방 한 칸에 머물기 위해, 혹은 좀더 나은 방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방살이 청춘은 범위가 넓어지고 적체되기 시작했다. 방은 이제 더 이상 삶에서 잠시 거쳐가는 공간이 아니다.

일부 언론은 젊은 1인 가구의 증가를 두고 “화려한 싱글이 늘어났다”라고 분석했다. 겉이 반짝반짝해진 건 사실이다. 허름한 자취방은 ‘풀옵션 미니원룸’으로 탈바꿈했다. 웬만한 고시원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문이 열리는 현관을 갖추고 대리석 계단을 깔았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요새 인터넷이 안 깔렸거나 에어컨이 없는 방은 아무리 싸도 잘 안 나간다”라고 말했다.
인터넷과 에어컨을 갖춘 대신 방은 더 좁거나 어두워졌다. 외관이 깔끔한 고시텔 속에는 창문이 없고 방바닥이 세모난 방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학교나 직장에 다니거나 백수로 지내는 다양한 20대가 다달이 평균 30만원 이상씩을 내고 그런 방에 들어가 산다. 방에 사는 청춘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은 김애란 작가(28)는 “예전에도 젊은 사람들은 구질구질한 방에 살았다. 다만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가난과 고생은 반짝이는 원룸 자재들 속에 은폐되고 있다. 알고 보면 사실 다들 속은 구질구질한데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니, 절대적 상황은 나아졌어도 상대적으로 느끼는 박탈감은 더 커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싸고 열악한’ 최근의 방 환경은 젊은 층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같은 가격이면 옆 방 사람과 ‘N 대 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도 되는 방을 선호한다.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는 취업준비생 강 아무개씨(26)는 “하숙방은 어느 정도 내 생활을 공개해야 하는데 그게 불편해 환경이 덜 좋더라도 고시원을 택했다”라고 말했다.

젊은 층이 원하는 대로 방 안에 개인 욕실과 싱크대, 신발장까지 밀어넣다 보니 방은 더 좁아지고 비싸졌다. 전세 5000만원을 주고 13.2㎡(4평) 남짓한 ‘풀옵션 원룸’을 구한 황 아무개씨(26)는 “밖에 나가지 않고 방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어 풀옵션이 좋은 줄 알았는데, 신발장 먼지가 싱크대로 날아오고, 싱크대의 냄새가 침대에 배어 영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12년간 방살이를 한 학원강사 박 아무개씨(31)는 풀옵션 원룸이 어떻게 확산돼 왔는지 목격했다. “1990년대 말에 주변에 누가 원룸에 산다고 하면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처럼 부러움을 받았다. 휴대전화나 원룸은 ‘사생활을 보장하는 수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후 10년간 20대의 개인주의와 집주인의 장삿속이 맞아떨어지면서 ‘야매’ 원룸이 급속히 확산됐다. 기존 자취방에 화장실 하나를 뚝딱 만들어놓고 풀옵션 원룸이라고 비싸게 세를 놓는 광경을 수없이 봤다. 우리는 사생활이 보장되는 주거공간이라며 좋다고 찾아다니지만 실은 조악하게 만든 짝퉁 상품이다.”

‘방’을 감당 못하면 캥거루족이 되는 현실

직장인 김씨가 11년간 방에 들인 돈은 1억여 원이 훌쩍 넘는다. 3년 전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마이너스 통장으로 방 값을 댔다. 김씨처럼 어떻게든 자립한 경우도 있지만, 방을 잃고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경우도 많다. 사회는 그들에게 ‘캥거루족’ 따위 별명을 붙여줬다.

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캥거루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방’에 사는 젊은이 대다수는 언젠가 방을 벗어날 거라고 믿는다. 졸업을 하면, 정규직 일자리를 얻으면, 결혼을 하면 자기가 사는 공간을 ‘방’ 대신 ‘집’이라고 부를 때가 오리라는 기대를 막연히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살 만한’ 방이 턱없이 부족한 서울 땅에서 젊은이들은 고만고만한 방들을 서로 돌려 쓰는 데 돈을 탕진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놀지 않고 줄곧 돈을 벌어온 서른 살 김씨에게도 ‘집’은 아직 요원하다. 주거권네트워크 상임활동가 미류씨(31)는 “지금 한국의 주택 보급 구조·정책으로는 20~30대가 영원히 방에서 자취생으로 사는 생활을 벗어나기 힘들다”라고 전망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20대의 방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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