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멜라민 파동은 식품첨가물의 독성이나 관리 기준을 정할 때 어린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겨우 보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에게 ‘멜라민’은 낯선 용어였다. 그래서 그 물질로 인한 피해가 처음 보도되었을 때 사람들은 ‘멜라닌’(피부나 머리카락에 존재하는 색소)을 떠올렸다. 심지어 “머리를 검게 하는 색소가 어떻게 갓난아기들의 목숨을 빼앗은 거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 번 더 멜라민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문제의 물질이 멜라닌이 아니라 멜라민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처럼 어리둥절하게 등장했지만, 멜라민의 그늘이 짙다. 소비자는 여전히 과자를 의심하고, 제과업계는 식약청의 ‘멜라민 검사’ 발표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있는 것이다. 주로 아이들 군것질거리를 파는 동네 슈퍼 주인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서울 중계동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멜라민 때문에 과자 판매가 줄지 않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멜라민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이젠 아이들조차 과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시사IN 윤무영소시지나 햄이 선홍색을 띠는 것은 아질산나트륨 덕이다.
그런데 멜라민에 대한 식약청 발표를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그 물질이 온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을 정도로 독하냐는 것이다. 식약청에 따르면, 멜라민의 독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사람들이 다량 섭취하기도 어렵다. 또 몸에 들어온 멜라민은 수용성이어서 24시간 이내에 대부분 소변 등으로 배출된다. 이 때문에 이번에 멜라민이 137ppm 검출된 ‘미사랑 카스타드’의 경우 체중이 60kg인 성인은 매일 낱개 포장 40개, 체중이 20kg인 어린이는 14개 이상을 섭취해야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물론 갓난아기나 개처럼 멜라민이 들어 있는 분유나 사료를 매일 주식으로 먹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위해 가능성도 적고, 피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환경운동가나 건강 전문가는 멜라민보다 오히려 다른 식품첨가물의 위험성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을 쓴 안병수 후델식품건강연구소장은 “멜라민에 대한 관심을 식품첨가물 쪽으로 돌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1991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가 내건 슬로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에 빗대어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바보야, 문제는 식품첨가물이야!”

ⓒ시사IN 윤무영청량음료의 맛깔스러운 색과 새콤달콤한 맛도 모두 식품첨가물의 ‘마술’ 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멜라민은 어쩌다 섭취하게 되는 물질이지만, 식품첨가물은 매일 70~80가지씩 10g 정도를 섭취하기 때문이다(1년에 1인당 평균 4kg 정도 섭취하는 것으로 추정됨). 물론 대다수 식품첨가물은 국가 연구 기관으로부터 안전성을 검증받고, 그 사용량도 지정받아 안전한 편이다. 문제는 일부 식품첨가물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허가받은 식품첨가물은 약 620가지(합성 향료 1834가지 제외). 그 중에는 식품에 신맛을 부가하거나 증가시키는 산미료, 식품의 색깔을 보기 좋게 만드는 착색료, 과채류의 조직을 단단하게 해주는 연화 방지제, 제품을 오래 보존해주는 보존료, 식품의 단맛을 돋우는 감미료,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을 균일한 혼합물로 만드는 유화제 등이 포함된다.

그 중 안 소장이 크게 걱정하는 식품첨가물은 아질산나트륨과 타르 색소. 아질산나트륨은 소시지나 햄 같은 육가공품의 선홍색을 유지해주는 색도 유지제이고, 타르 색소는 캔디나 음료수의 색깔을 맛깔스럽게 만드는 착색제이다. 물론 두 물질 모두 효과는 놀랍다. 육류는 상하거나 익으면 색깔이 변하는데,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가면 소시지나 햄처럼 불에 굽거나 지져도 여전히 선홍색을 띤다. 하지만 이 물질은 육류와 결합해 니트로소아민이라는 발암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의심을 받는다. 다행히 비타민 C를 병용하면 니트로소아민의 생성이 잦아들지만, 그렇다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물질이 다른 첨가물과 결합해 어떤 독성 물질을 만들어낼지 아무도 모른다. 식품첨가물의 칵테일 효과는 검증된 것이 없다”라고 안 소장은 말했다. 

ⓒ시사IN 윤무영라면 수프에는 천연 국물이 한 방울도 없다. 오로지 단백가수분해물이 맛을 좌우한다.
EU, 타르 색소 청량음료에 경고문 부착

석탄의 부산물로 만드는 타르 색소도 요주의 대상이다. 일부 색소가 간에 해롭고, 혈소판 감소증, 천식, 암 등을 유발한다고 의심받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발암성을 이유로 적색 제2호의 사용을 금지했다(우리나라도 지난해부터 과자나 아이스크림류에는 사용을 금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황색 제4호, 황색 제5호, 적색 제102호, 적색 제40호 등이 들어간 음료에 대해 경고문을 부착하라고 권한다. 이들 색소가 어린이 과잉행동장애나 집중력 결핍, 분노 따위 장애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경고문은 한 줄, “어린이의 행동과 주의에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이다. 

환경 시민단체 ‘환경정의’의 박명숙 기획실장은 거기에 안식향산나트륨과 아황산나트륨 그리고 MSG를 덧붙인다. 이유는 하나, 이들 식품첨가물 역시 안전성이 100%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실장은 “먹을거리는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가장 보수적으로 원칙을 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식향산나트륨과 아황산나트륨 등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안식향산나트륨은 탄산음료 등의 부패를 막으려 첨가하는 물질. 그런데 최근 DNA를 손상시켜 간경변이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질병을 불러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안식향산나트륨은 음료 속에 첨가된 비타민 C와 결합하면 벤젠이라는 발암 물질도 생성한다. 지난해 영국 식품기준청(FSA)은 벤젠 농도가 짙다는 이유로 음료수 네 종류를 회수하기도 했다.

ⓒ시사IN 윤무영커피 크리머는 고소한 맛이 나지만, 우유가 아니라 물과 기름으로 만든다.
아황산나트륨은 식품에 첨가되어 세균 발육 억제, 색 변화 방지, 밀가루 반죽의 품질 개선, 표백 작용을 한다. 그러나 물에 녹으면 이상 작용을 한다. 강한 산성을 띠어서 인체에 유입될 때 식도를 훼손하는가 하면, 위 점막을 자극하고 통증을 일으키고 신경염·만성기관지염·천식 등을 유발하는 것이다. 때문에 물엿·포도주·잼 등을 통해 지나치게 섭취하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그 유명한 글루타민산나트륨(MSG)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물질이다. 지금도 이 물질을 다량 섭취하면 두통·메스꺼움·허약·팔뚝과 목덜미 부위에 타는 듯한 증세를 경험한다는 연구 보고가 나온다. 최근에는 MSG를 함유한 식품이 ‘비만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사정이 이렇지만 식약청 같은 정부 기관은 비교적 식품첨가물에 관대한 편이다. 식약청이 홈페이지(www.kfda.go.kr) ‘식품첨가물 데이터베이스’에 올려놓은 자료를 보면 식품첨가물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서 제작한 홍보 책자는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을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

식용첨가물은 ‘마법의 가루’

물론 식품 회사들은 이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식품첨가물을 ‘마법의 가루’처럼 활용한다. 제품을 더 맛깔스럽게 보이게 하고, 보존 기간을 늘려주는 데 누가 마다할까. 지난해 11월 환경정의가 가공육 식품 128개를 조사한 결과  햄  52종, 어육 소시지를 제외한 소시지 27종, 베이컨 6종이 아질산나트륨을 사용했다. 또 어묵 전 제품과 맛살 제품 대부분이 MSG를 사용했고, 다수의 햄·소시지·어육 소시지·베이컨에서도 MSG가 검출되었다.

ⓒ시사IN 윤무영맛깔스럽게 보이는 명란젓에도 20여 가지의 식품첨가물이 들어간다.
현대인의 기호 식품 커피·녹차·콜라·초콜릿 등에 함유된 카페인도 요주의 식품첨가물이다. 적당량의 카페인은 체내 피로를 풀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등의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 물질 역시 지나치면 역효과가 난다. 불안·메스꺼움·수면장애·가슴 두근거림 따위 증세가 그것. 식약청은 안전한 하루 카페인 섭취량을 성인 400mg 이하, 임산부 300mg 이하, 어린이 체중 1kg당 2.5mg 이하로 정해놓았다. 그러나 커피믹스나 자판기 커피로 피로를 달래는 현대인들은 이 양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12g짜리 커피믹스 1봉에는 평균 69mg의 카페인이 들어 있고, 캔 커피 하나에는 74mg이 함유되어 있다.

식품첨가물이 아토피피부염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식약청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지난해 174명(소아 122명, 성인 52명)의 알레르기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했다. 피시험자에게 공급한 식품첨가물은 아토피피부염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받는 식용색소 적색 제2호· 황색 제4호·안식향산나트륨·글루타민산나트륨 등 7가지. 식약청은 시험 뒤 “시험 결과 둘 사이에 관련이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환경정의 박명숙 실장은 “관련성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언제 어떻게 위해성이 확인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건강에 직접 해를 주지는 않지만, 식품첨가물로 범벅이 된 식품도 적지 않다.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의 저자 아베 스카사에 따르면, 우리가 먹는 햄은 주로 돼지고기를 이용하는데, 100kg으로 130kg의 햄을 만들 수 있다. 어떻게? 여러 식품첨가물과 보조 재료 덕이다. 명란젓도 비슷하다. 대부분의 명란젓에는 합성착색료·아질산나트륨·구연산나트륨 같은 식품첨가물이 20가지가 넘게 들어간다. 양조간장도 식품첨가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름을 짜고 남은 콩 찌꺼기를 발효시키면 아미노산이 나오는데, 여기에 글루타민산나트륨으로 맛을 내고, 감미료로 단맛을 보태고, 산미료로 상큼한 맛을 내고, 증점제로 걸쭉한 느낌이 나게 하는 것이다. 짙은 색깔을 띠게 하는 것은 캐러멜 색소.

자판기 커피의 고소한 맛도 식품첨가물의 마술 덕이다. 비밀은 크리머에 있다. 크리머의 고소한 맛 때문에 분유가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지만, 뜻밖에도 크리머에는 우유 한 방울 들어 있지 않다. 오로지 물과 기름만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물과 기름을 유화(乳化)시키는 유화제, 점성을 만들어주는 증점제가 첨가된다. 진한 우유처럼 보이게 만드는 열쇠는 캐러멜 색소가 쥐고 있다. 그렇다면 라면이나 수프는? 식품첨가물의 결정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멜라민 파동은 많은 교훈을 남겼다. 임종한 교수(인하대 의대·산업의학과)는 “식품첨가물에 대한 평가나 관리를 할 때 어린이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웠고,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입에까지 오게 되는지를 따지게 만들었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멜라민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다. 그 교훈을 잊지 않고 실행하는 것.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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