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인 김구라의 재능과 파괴력만은 과연 인정할 만한 것이었다. 김구라식 화법은 속을 후련하게도, 아찔하게도 만들면서 브라운관 너머 오락과 배설이라는 두 가지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그러나 과오가 너무 지독하다. 황봉알, 노숙자와의 인터넷 방송 도중 숱한 연예인이 세 치 혀에 참혹하게 도륙당했다. 이유라도 합당했다면 모를까, 외모나 성적 기호가 주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하리수와 박경림을 거론하며 입에 담았던, 도무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 끔찍한 언어는 아무리 근사하게 포장하고 화장해도 그저 한 무더기의 똥에 지나지 않았다. 엄청난 폭력이었다.
그랬던 김구라가 요즘은 거의 매일 사과를 하고 다닌다. 불편한 건 그 사과에 “먹고살기 위해 그랬다”라는 설명이 구차하게 따라붙어 연민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민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김구라는 지금,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고 결국 성공해 먹고살기 편해지면 무엇이든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례를 자처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김구라의 사과가 늘 카메라 앞에서만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한때 김구라의 욕을 팔아치웠던 텔레비전이 이제는 김구라의 사과를 똑같은 자리에서 팔아치운다. 먹고살기 위해 누군가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던 김구라는, 이제 또 먹고살기 위해 누군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한다. 사고도 사과도 체온도 진심도, 그 모든 게 돈 몇 푼과 등가로 교환되는 실용적 현장이다.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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