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서울 강남역 앞을 지나는 행인들 앞에서 다음 카페 ‘강남촛불’ 회원들이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7월3일 이래, 이들은 매일 저녁 7시에 약속 장소에서 만나 시위를 벌인다.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6번 출구. 촛불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벌써 3개월째다. 다음 카페 ‘강남촛불(cafe.daum.net/agorakn)’ 회원들이 일일 촛불집회를 시작한 지. 지난 7월3일 ‘서울시청 앞뿐 아니라 강남에서도 촛불을 알려내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헤쳐 모인 사람들이 강남역 앞에서 첫 촛불을 점화할 때만 해도 이 집회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추석 전야, 다들 웃으면서 ‘여기서 명절 인사까지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쩌면 새해 인사까지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라고 카페지기 김승태씨는 말했다.

이들 카페 회원은 1400여 명. 날마다 집회에 꾸준히 참가하는 인원은 20~40명 정도다. 이들이 모두 강남 주민인 것은 아니다. 강남에 사는 사람, 그리고 다른 데 살면서 강남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 양자가 섞여 있다. 초반에는 전자와 후자 비율이 2:8쯤이더니 요즘은 5:5 수준이라고 김씨는 어림잡았다. 강남 사는 사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강남 좌파’, 이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촛불집회 현장만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새롭게 출현한 강남 좌파들이 주목을 끈다. 인터넷 토론 사이트로 잘 알려진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 요즘 이곳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강남아줌마’ ‘변호사의 아내’ ‘내과의사’ 같은 닉네임을 가진 논객이다. 이들은 강남 부유층에 속함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는다. “평소 쇼팽이나 듣고 살았고” “미국 시민권이 있는 아이”(‘변호사의 아내’)를 둔 기득권층이지만, 그럼에도 “강남에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강남아줌마’)라며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18대 총선에서 존재감 드러내

강남 좌파는 지난 18대 총선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강남을에서 출마한 민주노동당 김재연 후보와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가 얻은 표를 합치면 10.1%. 당선권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지만 진보 정당이 예상한 득표율을 훌쩍 뛰어넘은 이같은 총선 결과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58쪽 딸린 기사 참조).

강남 좌파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5~2006께부터이다. 학계와 언론을 중심으로 사용한 이 용어에 대해 강준만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이렇게 개념화를 시도했다. “생각은 좌파적인데, 생활 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한국생활문화사전〉). 다시 말해 그의 정의에서 ‘강남’은 실제 거주 지역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생활 수준을 향유하는 계층’을 상징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강남에 거주하고, 강남 기득권층이라는 자각이 있으면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강남 좌파가 새롭게 떠오르는 것이다. 진보 계열의 한 언론은 이를 두고 ‘강남 좌파의 커밍아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의 커밍아웃을 독려한 것이 촛불 정국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이전에도 진보 성향을 지닌 강남 부유층은 존재했겠지만, 촛불 정국을 거치며 이들이 사회적으로 각성하고 실천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단, 이들을 ‘좌파’라 이름 붙이는 데는 논란이 따른다. 취재에 응한 이화영씨(41, 가명)는 “나는 시장경제주의자이다. 단지 상식적인 주장을 할 뿐인데 내가 왜 좌파인가”라고 반문했다. ‘강남촛불’ 회원 김대성씨는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라는 표현 자체가 폭력적인 낙인찍기”라고 주장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주부 유진아씨(57)는 ‘보편적인 가치에 무게를 두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는 강남 거주자’로 자신들을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사실 엄격한 학문적 잣대로 따지자면 이들을 좌파라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계급 정치의 맥락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그런 의미에서 이들을 좌파라기보다 이른바 ‘수도권 진보’의 한 블록으로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강남에 거주하면서 진보 성향을 지닌 고학력·고소득 계층’인 이들을 편의상 강남 좌파로 통칭하고자 한다. 이미 강남 좌파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면서 사회적 생명력을 얻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부세(종합부동산세) 개정 등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으로 그 누구보다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계층이면서 오히려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부드러운 선동의 대가, ‘강남아줌마’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녀는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토론 사이트 ‘서프라이즈’에 강우진씨(49·가명)가 ‘강남아줌마’라는 필명으로 글을 처음 올린 것은 지난 5월7일. 촛불 정국이 막 타오르기 시작한 때였다. 평소 ‘외제차와 명품 핸드백 가격을 관심 있게 보는 강남 속물’이지만, 거짓말을 일삼는 대통령에게 질려 급기야 대학생인 아들에게 “행동하는 신앙! 일곱 시에 청계천으로 가라. 엄마는 토요일에 뜬다”(강씨는 기독교인이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연으로 시작되는 강씨의 글은 게시되자마자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일주일에 두세 번꼴로 올린 글의 조회 수가 보통 5000회를 넘겼으니 신인 논객치고는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인기가 워낙 폭발적으로 치솟자 개중에는 이 글을 진짜 강남 사람이 올린 거냐,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
 

ⓒ시사IN 한향란‘강남아줌마’(필명·위)는 인터넷 칼럼을 통해 강남 또한 사람 사는 곳임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직접 만나본 강씨는 순도 100% ‘강남 아줌마’였다.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피부가 고왔고 옷맵시 또한 날렵했다. 강씨는 스스로를 ‘공주처럼 자랐다’고 소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부친, 온갖 관변단체 장(長)을 도맡는 모친 아래 유복한 집 막내딸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서울로 유학을 온 뒤 5·18이 터졌다는 얘기를 듣고도 고향(광주) 가는 길이 막혔다는 사실에 답답해할 뿐 명동에서 구두 골목이나 뒤지며 신나게 놀던 ‘속없는 여대생’이 조금이나마 변한 것은 결혼 이후였다. 남편 유학으로 인해 갔던 독일에서 송두율 교수, 소설가 황석영씨 등을 만나며 광주의 실상을 알게 된 강씨는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하고 속물적으로 살아왔는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쇼핑하고 아이 교육에 신경 쓰는 평범한 강남 주부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마음 한켠에 늘 있었으되, 그녀의 저항은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찍는 것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지난 봄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이른바 쇠고기 정국에 대처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자세가 ‘얌전히 담긴 휘발유통에 성냥개비를 던진 격’이었다고 강씨는 말한다. 처음에는 우리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에 관한 문제라 관심을 갖게 됐지만 이어진 대통령의 거짓말과 정부 대책을 보면서 타들어가는 분노를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일단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이상 그녀는 내부 고발도 서슴지 않는다. 그녀가 속해 있는 강남 커뮤니티의 탐욕과 무지를 거침없이 까발린 것이다. 그녀에게 이웃들은 ‘종부세 때문에 현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이며, 이런 자기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대통령의 뻔한 거짓말마저 미화하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이들을 보며 강씨는 혐오감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고백한다.

단, 그럼에도 강씨는 강남을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진보의 지역적·계급적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강남 또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씨는, 강남 또한 사람 사는 곳이고 어찌 보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동네’임을 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강남아줌마’라는 필명을 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격한 구호에 싫증난 사람들을 상대로 한 ‘부드러운 선동질’이 장기라는 강씨는 그녀의 글이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기를 소망한다.

▒ 자칭 ‘강남 좌파’의 분열적 자기 고백

폴로 셔츠에 CP컴퍼니 재킷, 450만원짜리 까르띠에 시계. 엔터테인먼트 관련 중소기업체 사장으로서 거래처를 접대하느라 고급 일식집과 룸살롱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한 달 접대비로만 2억원 넘게 쓰기도 한다는 최만수씨(41, 가명). 그는 스스로를 ‘강남 좌파’라 부른다.
말로만이 아니다. 그는 민주노동당 창당 때 당원으로 가입하고, 민노당이 분당한 뒤에는 진보신당에 당비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진성당원이다. 비록 2002년 대선 때는 권영길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를 찍는 ‘배신’을 감행했지만 지난해 대선에서는 권영길 후보를 찍었다.

그는 사람들 틈에서 스스로를 ‘고립된 섬’처럼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거래처 사람과는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 자칫하면 쌈박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가 한나라당 지지자인 이들 사이에서 그는 별종으로 통한다. 대학 다닐 때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그는 ‘정치적 린치’를 당한다. 대기업 해외 지사장이 된 친구나, 유력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된 친구나 촛불집회에 나가는 그를 보고 철이 덜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가증스럽다고도 한다. 외제차 몰고 다니면서 하룻밤 술값으로 노동자 평균임금 서너 배를 쓰면서 좌파라니, 가당키나 하냐는 힐난이다.
그 또한 딜레마를 느낄 때가 많다. 그가 주식을 산 유망 기업에서 장기 노동쟁의가 벌어졌을 때 그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하나’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진보 정당 당원이지만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융통성이 없고 대안 제시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우리 사회 20~30%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 보수 정당을 견제하는 것 정도가 진보 정당의 역할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무늬만 좌파? 스스로도 의심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는 곧 반격에 나선다. 나처럼 제대로 돈 벌면서 부유세·종부세 내겠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있는 사람이 먼저 나누려고 해야 내 딸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도 열리지 않겠느냐고. 그나마 위안이라면 요즘 들어 주변 ‘골수 한나라파’의 기세가 현저히 꺾였다는 것인데, 종부세 논란 이후 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게 그는 영 못마땅하다. “자기를 찍어준 서민과 샐러리맨을 위한 포퓰리즘적 정책을 펴도 시원찮은 마당에 상위 1%를 위한 정책 먼저 추진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 실정이 임계점에 달했다고 판단하면 생업을 잠시 미뤄놓고서라도 다시 촛불을 들겠다고 말했다.
 

ⓒ강은나래최근 강남에서는 학부모 모임(위), 직장인협의회 등을 자발적으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 MB 미워 전교조 후보 찍었다는 ‘대치동 맘’

이화영씨(41·가명)는 이른바 ‘대치동 맘’이다. 각각 중학교 1학년·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둘을 두었다. 대학 연구교수이면서 평론가이기도 하다. ‘강남 엄마=반(反)전교조’라는 통념과 달리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그녀는 이른바 전교조 성향으로 알려진 주경복 후보를 찍었다. 전교조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한나라당 성향인 공정택 후보(현 교육감)가 너무 ‘후지게’ 느껴져서였다.
말만 21세기를 지향하지, 0교시 및 일제고사 부활로 상징되는 공정택 교육감의 교육 마인드는 1970년대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이씨는 비난한다. 서울시 교육청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국제중·영재고 등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이씨는 최근 열린 영재고 입시설명회에 갔다가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영재고 전환을 앞둔 학교 교장이 “우리는 시설에 투자할 돈이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서였다. 국제중도 마찬가지다. 특수교육을 뒷받침할 예산과 시스템도 갖추지 않은 채 무작정 우수한 학생들을 싹쓸이해두려는 듯한 서울시 행태를 보면 이씨는 “차라리 명문고를 부활시키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싶어진다.

이씨 주장에 따르면, 공정택 교육감은 ‘MB(이명박) 축소판’이다. 임기 안에 실적을 내야 한다는 욕심과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사교육비는 더 폭증할 테고, 월 300~400만원을 사교육비로 쓰는 대치동 엄마들도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이씨는 전망한다.
그렇다고 이씨가 다른 정치 세력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대신 정동영 후보를 찍기는 했지만 기꺼이 찍은 것은 아니었다. “한쪽(야당)은 답답하고, 한쪽(여당)은 꼴 보기 싫고 해서, 그 중 답답한 쪽을 택했다”라고 이씨는 말한다.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세대로서, 양심상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둔 정당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 이기적 ‘신상녀’의 일대 변신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만큼 자주 ‘보톡스’를 즐기며 유기농 식품만 먹는 클라우디아 씨(31)는 요즘 흔히 말하는 ‘신상녀(신상품 중독자)’다. 명품 수입업체에서 일을 하는 그녀에게 일은 취미 생활에 가깝다. 명품 박람회에 가서 남들보다 먼저 신상품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최고 기쁨이다.
언론에 흔히 등장하는 강남 부자의 행태를 그녀는 자라면서 모두 거쳤다. 원정 출산으로 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조기 유학을 가 그곳 대학에서 학업을 마쳤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고급 아파트와 병원(한의원)이 있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매년 휴가는 해외 호화 리조트에서 스파를 하며 즐긴다.

보수 성향의 현실주의자였던 그녀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성향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특히 촛불집회를 멀리서 바라보며 많이 변했다. 그녀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고, 그걸 나 혼자 잘살겠다고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변에 자기와 같은 사례가 많다고 했다. 경영 컨설턴트이면서 민주노동당을 후원하는 사람이 생겼는가 하면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무한 이기주의자가 갑자기 사회참여적인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을 직접 목도했다는 것이다.

촛불집회는 그녀의 가치관도 바꿔놓았다. 그녀는 “내 목표는 300억원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쓰임새가 바뀌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쓸 것이다. 300억원을 다 모으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팔레스타인에 갈 예정이다. 거기서 학교 짓고 우물 파서 사람들을 도우며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금 내고 떳떳한 부자로 살고 싶다”

그녀는 이명박 정부가 부자 위주의 정책을 편다고 비판했다. 부자는 제도가 뒷받침해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가 돌봐야 할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모에게 넓은 아파트를 상속받은 그녀는 이번에 종부세 감세 혜택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감세 정책은 나한테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내 작은 이익을 위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세금 내고 떳떳한 부자로 살고 싶다. 왜 세금 몇 푼 깎아주고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나”라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강남 좌파들은 이명박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집권 보수 세력이 “촌스러워서 싫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같은 촌놈이라도 ‘촌놈 같은 촌놈’은 호감이 간다. 그런데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은 ‘도시놈을 흉내 내는 촌놈’이라 싫다”라는 클라우디아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엘리트 집단도 아니고 전통 있는 ‘올드 머니’도 아닌 강남에서도 가장 질이 떨어지는, 땅 투기로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 같다.” 이에 강남 좌파는 부자들이 세금 부담을 더 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꺼이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논란이 된 종부세 개편안에 대해서도 이들 대부분은 부정적인 태도를 밝혔다(54쪽 표 참조).

이들 강남 좌파는 ‘자기들만의 성벽’을 짓는 데 골몰하는 구 기득권층과 달리, 공동체적 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한 신 기득권층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촛불 든 기득권층’(‘변호사의 아내’)을 자처하는 이들의 앞날이 순탄할지는 알 수 없다. 취재에 응한 이들 대부분은 자기 얼굴을 드러내기 꺼렸다. 신분을 노출할 경우 “사업하는 데 지장이 있을 수 있다”(최만수) “다른 엄마들이 꺼려 할 수 있다”(이화영)라는 이유에서였다. 지상준씨(가명, 사업)는 이런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민주적 사고를 가진 올바른 ‘좌파’ 정권이 들어서 제도적으로 구 기득권층의 성문을 열지 않는 이상 강남 좌파는 계속해서 소수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기자명 김은남·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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