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서울 청담동이나 신사동 어드메를 어슬렁거릴 때, 문 닫기 직전 환하게 불 밝힌 카페 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유리창 너머 어떤 다른 세계, 아직 내가 속하지 않은 그 세계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톡 하고 불이 꺼지는 순간. 투명한 장벽 너머 세상은 덧없이 사라지고 초라한 내 모습만 반사해내는 커다란 유리창 앞에 서 있게 된다.

좋은 영화는 때로 그런 유리창과 같아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 같다가도 어느 한 순간, 톡 하고 관객 머릿속 불을 꺼버린다. 그때부터 스크린 속 어떤 다른 세계, 그래도 내가 아직은 그렇게까지 야박한 곳에 살지 않는다며 스스로 위로하게 만들던 낯선 세상이 사라져버린다. 대신 영락없는 내 모습, 내가 속한 이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고스란히 반사해내는 커다란 스크린과 마주하게 되는 거다. 알고 보니 내 이야기, 듣고 보니 내 이웃 이야기, 보고 나니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주인공의 타락이 곧 나의 타락인 듯, 부끄러움에 얼굴 붉히며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게 만드는 영화. 〈자유로운 세계〉는 저 멀리 영국의 그늘진 현실 위로 지금, 2008년 대한민국의 암울한 오늘을 반사해내는 커다란 유리창 같은 영화다.

이주노동자 인력소개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싱글맘 앤지(키어스턴 워레잉)가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상사의 성희롱을 참지 못해 성질 한번 부린 대가가 해고라니. 분하고 원통한 마음, 자수성가 인생역전으로 복수하리라, 굳게 다짐하며 자기 회사를 차린다. 배운 게 도둑질인지라 멋모르고 이주노동자 알선업체를 덜컥 차려놓고 보니 기존 업체와 경쟁할 방법이란 게 빤하다. 더 싼 임금에 더 오래 일하는 노동자를 공급하는 것. ‘이번 한 번만…’을 되뇌며 가난한 노동자 등을 떠밀고, ‘회사가 자리잡을 때까지만…’을 속삭이며 체불임금까지 ‘슈킹’하다 보니 어느새 악덕 기업주가 다 되었다. 남부럽지 않게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시작한 사업. 결국 나의 자유는 누군가의 부자유를 먹고 자랄 수밖에 없다는 걸 눈치 채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깨닫는다.

‘소박한 꿈=야박한 욕망’ 보여줘

켄 로치 감독은 늘 멋진 영화를 만들었다. 〈레이닝 스톤〉 〈랜드 앤 프리덤〉 〈칼라 송〉 〈내 이름은 조〉 〈빵과 장미〉로 이어지는 연출 작품을 차례로 떠올려볼라치면, 환갑이 넘어서도 ‘꼰대’로 타협하지 않고 ‘연대’로 돌파해온 고집스러운 인생 궤적이 엿보여 좋았다. 200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그 중 최고였다. 관객 가슴에 흔들바위만 한 여운을 올려놓는 라스트 신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 기립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좋았다. 〈자유로운 세계〉는 그 훌륭한 전작보다 조금 더 훌륭하다. 조금 더 신랄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마음도 그래서 조금 더 무겁다. 

“‘음… 그래, 저럴 수 있어. 맞아, 그렇지…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저렇게 거칠어질 수밖에 없어….’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앤지의 논리에 설득되는 거다. 결국 그 논리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마지막에 가서야 깨닫게 된다.” 감독 말이 맞다. 〈자유로운 세계〉는 여봐란 듯이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실은 얼마나 야박한 욕망인지 보여준다. 남들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처럼, 아니 할 수만 있다면 남들보다 더 악랄해져야 하는 세상. ‘실용’에 매달리며 ‘관용’을 목 매달아버린 한국에서 그건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내 안의 이명박, 내 안의 ‘강남 엄마’와 싸우는 모든 이에게 권한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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