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호메이니나 홍준표 후보는 ‘남성 성기를 여성의 성기 안에 삽입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이성애 중심적 삽입성교’라는 형식에서 벗어나는 모든 종류의 성애 활동이 싫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자리를, 내가 이해 못하는 성애 활동은 다 잘못됐다는 인식으로 대체한 사람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형식상 이성애의 모습만 갖춘다면 괜찮다는 듯 “차라리 트랜스젠더가 낫다”라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란은 동성애자들을 공개적으로 사형시키면서도 국가 예산으로 연간 수십명에게 성 확정 수술을 제공하는 역설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런 탓에 수술할 필요성까진 느끼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과 애초에 수술할 생각이 없는 동성애자마저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원치 않는 성 확정 수술을 선택한다. 자신이 당선된다면 동성애 자체를 처벌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홍준표 후보. 그가 당선되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상상만으로도 진땀이 흐른다.
내가 떠올린 두 번째 사례는 홍석천과 하리수의 이야기다. 2013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은 이런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날 택시를 탔다가 기사한테 “하리수씨처럼 (성 교정) 수술을 하고 예쁘게 나오면 방송도 많이 할 텐데 왜 수술을 안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홍석천은 기사에게 “저는 남자로서 동성인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리수씨는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인, 여자로 살고 싶은 여성성을 갖고 있는 트랜스 섹슈얼이다”라고 설명해줘야 했던 상황을 회고했다. 아직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난 기사가 홍석천에게 건넸다는 말 중 ‘예쁘게’라는 말에 시선이 쏠렸다. 한국 사회가 홍석천과 하리수를 대한 두 가지 다른 태도의 기반에는 “얼마나 이성애적 규범 질서 안에 거부감 없이 섞일 수 있는 외양적 조건을 갖췄는가”가 깔려 있었으니 말이다.
‘여성보다 더 여성스럽기에’ 용서받은 하리수
2000년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폭력적으로 퇴출되었던 홍석천과 달리, 한 해 뒤인 2001년 데뷔한 하리수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카피로 유명했던 화장품 CF의 모델이 되어 압도적인 미모를 과시했고, 음반을 발표해 ‘섹시 가수’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같은 해 영화 〈노랑머리 2〉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자전적
캐릭터인 MTF 트랜스젠더 ‘J’를 연기했다. 하리수를 향한 악플과 조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홍석천을 향한 냉대의 시선에 비하면 놀랄 만한 인기였다. 한국처럼 보수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언론학자 박지훈과 이진은 이 현상을 이렇게 분석했다. “남성성을 버리고 여성성을 선택한 하리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지만 그녀가 보여준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면모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부합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라며, “텔레비전은 그녀의 여성성을 상품화했고 그녀의 전복성을 이성애 규범성 담론 속에 신속히 포섭했다(〈미디어, 젠더&문화〉 제28호 ‘성 소수자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 텔레비전에 나타난 홍석천과 하리수의 이미지 유형을 중심으로’ 박지훈·이진).”
하리수에 대한 언론의 기사나 방송들은 대체로 그녀의 여성성을 상품화하는 수식어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세상에 나왔다.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 ‘섹시 건강 미인’ 따위 수식어와 함께 심지어 어떤 기사들은 민망할 정도로 하리수의 육체를 묘사하고 탐했다. “가느다란 팔뚝을 타고 미끄러지듯 하얀 속살이 농익은 감빛 피부였다. 볼록한 앞가슴이 반달처럼 패었다(〈서울신문〉 2004년 10월19일자).” 미디어는 끊임없이 하리수의 외모를 찬양하고 그녀의 여성성을 확인함으로써, 겉으로 보기에는 이성애자와 크게 구분이 안 가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남자와 함께 입을 맞추는 모습이 이성애 중심적 성애관에 거슬리는가 아닌가” 하는 기준이, 홍석천과 하리수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다른 태도를 불러온 셈이다. 이게 비단 홍석천과 하리수가 한국 사회에서 각각 게이와 MTF 트랜스젠더로 가시화된 2000년대 초반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글쎄, 호모포비아들의 심리를 선거전에 적극 활용한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 앞에서 무엇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우린 아직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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