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는 거, 안 그러게 해야지.” 자신의 아들이나 조카가 성 소수자라고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YTN 〈안드로메다〉 대선 주자 인터뷰 팀의 질문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마치 자신의 혈육이라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조차 자기 마음대로 참견할 수 있다는 식의 답변에 이어, 홍 후보는 하늘의 섭리를 들어 소수자 인권을 부정했다. “나는 그게, 거 생각이 좀 달라요. 그거를 소수자 인권 측면에서 보시는 분도 있지만, 그게 하늘이 정해준 것을….” 그런데 이 완고한 편견에 한 가지 조건이 달린다. “성전환 수술(성 확정 수술)을 하고 이러면 별개예요. 그렇게 하지 않고, 동성애자는, 나는 그거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동성을 사랑하고 싶거든,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을 바꿔서 ‘이성’이 된 다음 이성애의 형태를 취하라는 이야기였다. 아마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개념을 잘 모르고 한 소리일 테다. 성 정체성은 MTF(Male To Female:남성의 육체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여자라 느끼는 트랜스젠더)이지만 성적 지향은 레즈비언인 MTF 레즈비언이랄지, 반대의 경우인 FTM(Female To Male) 게이도 있다고 이야기해주면 홍준표 후보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아마 이해를 못할 것이다.

ⓒ시사IN 자료홍석천은 2000년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했다.
홍 후보의 인터뷰를 보며 두 가지 사례를 떠올렸다. 첫 번째는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지도자 아야툴라 루흘라 호메이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호메이니가 처음 제정한 법 중 하나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었다. 혁명 전에는 뉴스에 동성혼이 등장하는가 하면 성 소수자 인권단체 결성 움직임까지 있었던 이란 사회는, 이슬람 혁명 직후 동성애자들을 교수형이나 태형으로 다스리는 극단적인 호모포비아 사회로 후퇴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호메이니는 1987년 성 확정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이들에게는 국가가 비용을 지원해 수술을 시켜주고 주민등록상의 성별 또한 바꿀 수 있게 해준다는 파트와(이슬람 학자가 이슬람법에 대해 내놓는 의견)를 발표했다. 성 확정 수술과 이슬람 율법의 승인을 함께 받고 싶어 했던 트랜스젠더 운동가 마리암 카툰 몰카라가 목숨을 걸고 호메이니에게 달려들어 수술 허락을 받아낸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호메이니가 트랜스젠더들이 느끼는 성 정체성과 육체 사이의 불일치를 ‘과학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오류’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호메이니나 홍준표 후보는 ‘남성 성기를 여성의 성기 안에 삽입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이성애 중심적 삽입성교’라는 형식에서 벗어나는 모든 종류의 성애 활동이 싫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자리를, 내가 이해 못하는 성애 활동은 다 잘못됐다는 인식으로 대체한 사람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형식상 이성애의 모습만 갖춘다면 괜찮다는 듯 “차라리 트랜스젠더가 낫다”라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란은 동성애자들을 공개적으로 사형시키면

ⓒ연합뉴스2013년 4월10일 뮤지컬 〈드랙퀸〉에서 연기를 펼치는 하리수.
서도 국가 예산으로 연간 수십명에게 성 확정 수술을 제공하는 역설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런 탓에 수술할 필요성까진 느끼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과 애초에 수술할 생각이 없는 동성애자마저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원치 않는 성 확정 수술을 선택한다. 자신이 당선된다면 동성애 자체를 처벌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홍준표 후보. 그가 당선되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상상만으로도 진땀이 흐른다.

내가 떠올린 두 번째 사례는 홍석천과 하리수의 이야기다. 2013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은 이런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날 택시를 탔다가 기사한테 “하리수씨처럼 (성 교정) 수술을 하고 예쁘게 나오면 방송도 많이 할 텐데 왜 수술을 안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홍석천은 기사에게 “저는 남자로서 동성인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리수씨는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인, 여자로 살고 싶은 여성성을 갖고 있는 트랜스 섹슈얼이다”라고 설명해줘야 했던 상황을 회고했다. 아직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난 기사가 홍석천에게 건넸다는 말 중 ‘예쁘게’라는 말에 시선이 쏠렸다. 한국 사회가 홍석천과 하리수를 대한 두 가지 다른 태도의 기반에는 “얼마나 이성애적 규범 질서 안에 거부감 없이 섞일 수 있는 외양적 조건을 갖췄는가”가 깔려 있었으니 말이다.

‘여성보다 더 여성스럽기에’ 용서받은 하리수

2000년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폭력적으로 퇴출되었던 홍석천과 달리, 한 해 뒤인 2001년 데뷔한 하리수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카피로 유명했던 화장품 CF의 모델이 되어 압도적인 미모를 과시했고, 음반을 발표해 ‘섹시 가수’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같은 해 영화 〈노랑머리 2〉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자전적
캐릭터인 MTF 트랜스젠더 ‘J’를 연기했다. 하리수를 향한 악플과 조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홍석천을 향한 냉대의 시선에 비하면 놀랄 만한 인기였다. 한국처럼 보수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언론학자 박지훈과 이진은 이 현상을 이렇게 분석했다. “남성성을 버리고 여성성을 선택한 하리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지만 그녀가 보여준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면모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부합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라며, “텔레비전은 그녀의 여성성을 상품화했고 그녀의 전복성을 이성애 규범성 담론 속에 신속히 포섭했다(〈미디어, 젠더&문화〉 제28호 ‘성 소수자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 텔레비전에 나타난 홍석천과 하리수의 이미지 유형을 중심으로’ 박지훈·이진).”

하리수에 대한 언론의 기사나 방송들은 대체로 그녀의 여성성을 상품화하는 수식어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세상에 나왔다.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 ‘섹시 건강 미인’ 따위 수식어와 함께 심지어 어떤 기사들은 민망할 정도로 하리수의 육체를 묘사하고 탐했다. “가느다란 팔뚝을 타고 미끄러지듯 하얀 속살이 농익은 감빛 피부였다. 볼록한 앞가슴이 반달처럼 패었다(〈서울신문〉 2004년 10월19일자).” 미디어는 끊임없이 하리수의 외모를 찬양하고 그녀의 여성성을 확인함으로써, 겉으로 보기에는 이성애자와 크게 구분이 안 가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남자와 함께 입을 맞추는 모습이 이성애 중심적 성애관에 거슬리는가 아닌가” 하는 기준이, 홍석천과 하리수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다른 태도를 불러온 셈이다. 이게 비단 홍석천과 하리수가 한국 사회에서 각각 게이와 MTF 트랜스젠더로 가시화된 2000년대 초반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글쎄, 호모포비아들의 심리를 선거전에 적극 활용한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 앞에서 무엇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우린 아직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승한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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