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환씨의 설명에 따르면, 문래동 3가는 전통적으로 소규모 기계금속 관련 업종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그러다가 산업구조의 변화로 쇠퇴기를 맞아 공장과 철강 유통회사들이 시흥 등 수도권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기 시작했다. 5∼6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빈 곳을 창작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눈에 띄게 예술가들이 늘어 지금은 53개 작업실에 예술가 150여 명이 활동한다.
장르도 다양하다. 회화, 조각, 디자인, 일러스트, 사진, 댄스, 마임, 거리 연극, 전통악기, 굿, 비평 등. 왜 문래동에 예술가들이 모여 ‘이종 예술장르 군락지’가 되어가고 있는가? 우선 임대료가 싸다. 3.3㎡당 월 임대료가 1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대학로 일대, 홍익대 인근이 문화 중심지로 유명해지면서 상권이 확대되고 임대료가 상승해 정작 주체(예술가)들이 그곳에서 버티기 힘든 역설적 상황이 벌어져 이주해왔다.
9월17일 저녁 7시20분. 이 동네에 작업실 둥지를 튼 예술가 10여 명이 사진작가 박지원씨(43)의 작업실로 찾아들었다. ‘반상회’가 열렸다. 전기세 얘기부터 예술 작업에 대한 얘기까지, 화기애애하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주씨(34)가 설치 작업을 하려는데 용접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노네임노샵의 김건태씨(34)가 용접기가 있다고 했다. 김윤환씨가 제안했다. “작업 때문에 용접이 필요하면 내일 오후 5시쯤 용접을 함께 배울까요?” 다들 용접을 함께 배우기로 결정!
“장인의 에너지와 예술의 에너지가 만나는 곳”
9월18일 오후 5시20분. 어제 반상회에 참여 했던 예술가들이 모였다. 용접을 배우려는 경원대 미대 여학생들도 참여했다. 수업료는 막걸리 몇 통이다. 새한철강의 함진응 사장(49)이 용접을 가르쳤다. 설치 미술가 왕희정 작가(39)는 이날 처음 용접봉을 잡았다. 그녀는 “그동안 용접을 이용한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배울 기회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교대로 실습했다.
예술가들은 문래예술공단이 뉴욕의 소호 거리나 베이징의 798예술특구처럼 예술가들이 모인 문화 중심지로 진화하기를 바란다. 김윤환 연구원은 “예술과 재래산업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이 문래동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전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 공장부지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해 불안하다. 한국에서 개발은 문화를 평토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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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녹물에 붓을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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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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