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가좌동의 한 외곽 마을, 주택은 10채 남짓이었다. 기자가 찾아간 2월15일 오전, 인적이 드물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은 한 주택이었다. 2월11일 서울 광화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집회에서 공짜로 나눠준 〈오렌지타임스(The Orange Times)〉의 ‘탄핵 긴급 특집호’에 기재된 발행처 주소였다.

A3 사이즈 4면으로 이뤄진, 타블로이드 신문처럼 보이는 〈오렌지타임스〉 1면에는 발행인 정, 편집인 김라고 적혀 있었다. 1면 헤드라인 제목은 ‘대통령 변호인단의 손범규 변호사가 밝히는 탄핵 기각 사유’였다. 글쓴이는 ‘오렌지타임스 특별취재반’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사전에 기획된 탄핵이라는 주장을 담았다. 1면 제호 아래에는 홈페이지 주소가 나와 있었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사전에 기획되었다는 주장을 담은 〈노컷일베〉 〈프리덤뉴스〉 등이 배포되고 있다.


www.orangetimes.net으로 접속해 확인한 회사 소개란에는 ‘오렌지타임스는 대한민국 언론’이라고 적혀 있었다. 3월1일 창간 예정이라는 안내가 팝업창에 나오기도 했다. 홈페이지에 1월27일자 ‘뉴욕타임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인민재판으로 규정’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뉴욕타임즈가 5일자 한국판 뉴스에서 박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 말을 인용해 ‘인민재판의 희생자(victim of mob justice)’라고 언급해 보도했다”라며 기사는 시작했다.

과장된 보도다. 〈뉴욕 타임스〉가 서 변호사의 말을 인용한 적은 있지만, 탄핵 심판을 인민재판으로 규정해 보도한 적은 없다. 〈오렌지타임스〉의 보도는 최근 논란이 되는 ‘가짜 뉴스(Fake News:뉴스 형식을 띤 과장·왜곡·허위 콘텐츠)’를 떠올리게 한다.

가짜 뉴스 논란에 대해 묻기 위해 〈오렌지타임스〉에 쓰인 주소지로 찾아가 벨을 눌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한 물류회사 직원은 “동네에 언론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그 집에는 김씨 부부가 산다. 김씨가 예전에 정치 활동도 했다고 들었다. 신문 만든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근처에서 가게를 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오렌지타임스〉에 나온 편집인 및 주간과 같은 이름이었다. 해당 가게로 찾아갔다. 김씨의 가족은 그에게 전화한 다음 “만나고 싶지 않다”라는 김 편집인의 말을 전하며 취재를 거부했다.

 

 

 

ⓒ시사IN 이명익〈노컷일베〉의 발행처(서울 강남구 역삼동)

 


탄기국 집회에서 〈오렌지타임스〉와 함께 〈노컷일베〉 〈프리덤뉴스〉 등도 사람들에게 배포되었다. ‘바른 언론을 지향하며 진실만 보도합니다’라는 문구가 〈노컷일베〉 제호 옆에 쓰여 있었다. 홈페이지에는 JTBC가 조작 기사를 보도했다는 내용 등이 게재되어 있었다. 〈노컷일베〉에 나온 발행처 주소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을 찾았다. 이번에도 건물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 앞에서 〈노컷일베〉에 대표 번호로 기재된 곳으로 전화를 했다. 자신을 건물 관리자라고 밝힌 그는 “〈노컷일베〉 사무실에는 상주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왔다 갔다 한다. 여기서 누굴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 국정원 직원이나 박사모 회원에게 받았다”

〈오렌지타임스〉나 〈노컷일베〉 모두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기간행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외견상 언론처럼 보이지만, 아직 등록된 매체는 아니었다. 지난 1월25일 탄기국 집회에서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노켓일베〉 등 신문 형태의 유인물을 “300만 부 인쇄했다”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잘못된 사실이 지라시(정보지)와 뉴스 형태로 퍼지고 있다. 이런 글이 퍼지는 주요 플랫폼은 카카오톡과 같은 폐쇄형 SNS다. “여태까지 증명된 혐의는 하나도 없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말씀 요약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는 절차상 하자이므로 위헌이다” “여기자 성추행범! 1999년 9월 징계처분 받음. 빨갱이 박영수”와 같은 내용이 SNS를 타고 퍼졌다. 모두 거짓이다. 박한철 전 소장은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 박영수 특검 또한 성범죄로 징계나 수사를 받은 사실조차 없다.

 

 

 

 

ⓒ시사IN 이명익〈오렌지타임스〉의 발행처(경기도 고양시 가좌동·아래). 기자가 찾아갔지만 편집인을 만나지 못했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거짓 정보가 담긴 가짜 뉴스가 생산되고 확산된다.

이유가 뭘까? 2월14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주최한 ‘Fake News 개념과 대응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민영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의 진단이다. “제도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고 적대적 시각이 강해, 자신의 관점이 체계적으로 소외된다고 생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가짜 뉴스는 확증편향(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충족시키려는 욕구에 적극 반응해서 생겼다고 본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부추기는 조직적인 세력이 있다고 의심한다. 친박 사이트를 중심으로 관련 정보가 유통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SNS 메시지를 기자에게 제보한 이들은 전직 국정원 직원 모임이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등에게 이러한 내용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 법률대리인인 서석구 변호사는 가짜 뉴스를 헌법재판소 변론 과정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북한 〈노동신문〉에서 보도했다며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종북에 놀아났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가 인용한 〈노동신문〉 뉴스 자체가 가짜였다.

사실이 아닌 내용이 뉴스로 포장되어 퍼지다 보니,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보수 쪽에서도 더 강하게 나온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 2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짜 뉴스 및 유포는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 탄핵 심판 정국과 무관치 않다. 특검을 둘러싼 가짜 뉴스 조작과 유포는 특검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다”라고 썼다.

앞서의 토론회에 참석한 안명규 중앙선관위 인터넷선거보도 심의위원회 심의팀장은 “가짜 뉴스에 대처할 나름 촘촘한 그물망이 있다. 방심위가 역할을 하고, 경찰도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문제가 있으면 삭제 요청도 할 수 있다. 다만 표현의 자유 위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장도 “의도된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이를 전달하지 못하게, 팩트체킹을 하고 유포하는 언론사의 책임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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