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 3월 세계적 저작권 운동 ‘크리에이티브 커먼스’의 창립자 로렌스 레식 교수(오른쪽 세 번째)가 방한했다.
‘오픈 소스’라고 하면 그냥 마구 가져다 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픈 소스에도 나름의 라이선스가 있다. 오픈 소스 라이선스는 돈을 받고 사용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용하는 대신 작품의 임의 확장과 재활용에 대한 일련의 예의를 지키는 일이 주가 된다. 따라서 라이선스 침해에 관한 피해 사실을 밝히는 소송이 좀처럼 쉽지 않다. 모든 소프트웨어에는 저작권이 있다는 상식은 의외로 실제 법 앞에서 그리 당연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그 당연한 상식을 둘러싼 흥미로운 소송이 있었다. DecoderPro라는 오픈 소스 프로그램의 코드를 Decoder Comman-der라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유용했지만, 오픈 소스 라이선스에 따라 취해야 하는 경의를 표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다툼이었다. 문제의 ‘경의’라는 것은 원저작자를 기재하고 소스에 대한 정보와 변경 내용을 표시하는 식의 그야말로 개발자로서 보여야 할 예의이기에, 그러지 않아도 바쁜 사법 당국의 눈에는 소송거리로 보이지 않은 것도 이해는 된다.

원작 DecoderPro는 지방법원에 이 건을 제소했지만, 이 ‘계약 위반’이 그리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판단한 1심은 가처분 청구를 기각했다. 문제는 라이선스 규약을 일종의 계약이라 본 것인데, 이렇게 되면 쌍방의 계약 성립 여부부터 되물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저작자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다. 그렇기에 라이선스를 침해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져도, 이를 위와 같이 계약 위반 건으로 다뤄야 한다면 그 번잡함에 지레 겁먹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8월 로렌스 레식 스탠퍼드 법대 교수, 윤종수 판사 등 인터넷 법조인의 블로그는 한 판결에 대해 ‘엄청난 뉴스, 중요한 결정’이라며 그 흥분을 한껏 타전했다. 항소법원이 원심을 뒤엎고, 오픈 소스 라이선스 위반은 바로 저작권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판결문은 창조의 동기 부여가 전세계적 협업으로 이어져 생산이 일어나고 이것이 다시 경제에 끼치는 잠재적 영향력 면에서 오픈 소스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역동성에 대한 피해를 고려했음을 밝혔다.

창조자는 저작권의 이중성 유념해야

이번 소송 자체에서는 오픈 소스 라이선스 위반을 저작권 침해로 가처분이 가능할지 여부가 관심사였겠지만, 이렇게 오픈 소스의 존재 의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는 점이 실로 특기할 만하다. 무엇보다 오픈 소스 라이선스 위반은 자동으로 저작권법 위반이 되고 이는 매우 피곤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린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더 나아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 같은 광범위한 대안 라이선스 운동의 가치와 그러한 라이선스에 의존해온 저작권자의 권리가 사법에 의해 공식 인정된 역사적 사건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저작권에는 이중성이 있다. 하나는 창조자의 동기를 지켜주는 고마운 기능이고, 또 하나는 그것이 요즘의 음반업과 같이 유통업자와 배급체제의 권리 강화에 치중함으로써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부조리다. 그것이 상용이든 오픈 소스이든, 소프트웨어업이 현재는 창조를 통해 변화를 주동하는 이들이기에 당장은 창조자 대신 중개업자나 인접권자가 기세등등하지 않겠지만, 소프트웨어와 인터넷의 창조자는 모두 승리를 자축하기 전에 음반업계의 교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작권이란 바로 창조자 그 자신의 동기 부여를 위해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기자명 김국현 (IT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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