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원전 사태’를 보며 한국의 원전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함께 ‘녹색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원전’에 올인해왔다. 2008년 8월27일에 나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은 그 결정판이다. 당시 시사IN의 분석 기사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원전-월성원전 제공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나왔다. 사실상 ‘원전 올인 계획’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결국 원전이다. ‘탈석유’니 ‘신·재생 에너지’니 하는 화려한 말잔치를 걷어내고 보면, 8월27일에 나온 국가에너지기본계획(기본계획)의 핵심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추가 건설’이라는 한 줄로 요약된다. 정부는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현 36%에서 59%까지 끌어올리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원자력 르네상스’는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유리 소콜로프 사무차장은 한국을 찾은 지난 6월9일 “2030년까지 원전 300개가 새로 지어질 것이다”라며 원전 열풍에 불을 댕겼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 양이원영 부장은 “국제원자력기구가 늘 하던 소리다. 수요 예측은 늘 과잉으로 판명났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2002년에 444기였던 전세계의 원전 개수는 2007년에는 439기로 근소하게나마 오히려 줄었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전세계를 통틀어 35기. 그 중 20기가 아시아, 11기가 옛 소련 지역 국가들과 동유럽에 집중되는 등 극심한 편중을 보인다(아래 표 참조). 이른바 에너지 선진국에서 ‘원자력 르네상스’라 부를 만한 현상을 관찰하기는 쉽지 않다.

원전 늘렸더니 화석연료 사용이 따라 는다?

왜 그럴까. 물론 환경문제가 일차 이유이기는 하다. 핵폐기물 처리 기술이 과연 안전한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 간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제다. 원전 계획을 들고 나와 ‘녹색’을 외치는 정부를 황당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하지만 환경문제를 잠시 제쳐놓더라도, 많은 전문가는 원자력발전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동의하지 못한다.

“수요가 있어서 전력 공급을 늘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원전이라는 독특한 전력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정부의 ‘원전 올인’ 기본계획을 두고, 녹색연합 석광훈 정책위원은 마치 ‘세이의 법칙’을 연상케 하는 말투로 이렇게 지적했다. 무슨 의미일까.

원전은 전기 생산량을 줄이는 것도 일시 정지시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계절별·시간대별로 전력 수요는 달라지는데 공급은 일정하니 ‘남는 전력’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값싼 ‘심야전기’가 등장하고 겨울에 남는 전기를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난방·온수·취사를 전기로 하도록 유도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전기의 가격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원체 싸니 소비자 처지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이만 한 비효율도 없다. 열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전기를 돌려서 다시 열에너지로 사용하는 꼴이라 에너지 손실이 엄청나다.

웃지 못할 일은 또 있다. 애초에 원전으로 인한 ‘남는 전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입했던 심야전기이지만 지금은 그 60%를 천연가스 발전이, 30%를 중유 발전이 감당하는 형편이다. 심야전기 수요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탓이다. 심야전기로 난방을 하는 가구는 겨우 90만 가구인데, 이들 90만 가구의 심야전기 소비량이 전체 1200만 가구 가정용 전기 소비량의 3분의 1 수준이다. 원전 증설이 에너지 과소비를 부르고, 에너지 과소비가 다시 화석연료 사용마저 끌어올리는 셈이다.
선진국 사례를 비교해보면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원자력 공기업 ‘프라마톰’의 압력 아래 꾸준히 원전을 증설해온 프랑스는, 원전 발전량 비중이 80%에 이르는 유럽에서 보기 드문 ‘원전 국가’다. 하지만 프랑스는 2006년 이후, 1990년대에 폐쇄했던 중유발전소 4기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원전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늘어난 겨울 전력 수요를 이제 원전만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다. 반면 독일은 이른바 ‘적녹 연정’(사민당·녹색당 연합)의 ‘탈핵 결정’ 이후, 신·재생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혁명’을 이뤄냈다(28~29쪽 기사).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에너지 안보’의 잣대로 비춰봐도 기본계획의 ‘원전 올인’은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라늄 공급 불안, 원전 안전사고 등 ‘만약의 사태’에 극히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상사태가 아니더라도 원전이 유발하는 에너지 과소비는 상시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프랑스는 중유발전 재개로도 모자라 겨울만 되면 엄청난 양의 전기를 주변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처지가 됐다. 원전을 늘리면 늘릴수록 빠져드는 악순환이다. 그나마 국경을 넘어 연결된 전선 덕에 전력 수출·수입이 자유로운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력 고립지대여서 위험은 더하다. 우리와 같은 전력 고립지대인 일본은 2030년까지 원자력·천연가스·석탄의 비중을 3:3:2 수준으로 맞춰 공급원을 분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원전 위주의 에너지 전략에는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지만, 한번 ‘테이블’에 올라온 원전 사업은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이해 당사자가 워낙 많은 데다 로비력 또한 막강해서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원전은 덩치가 대단한 사업이다. 원전 1기를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조5000억원 안팎. 국내에서는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단 5개사만이 시공 실적을 갖고 있어서 경쟁도 심하지 않다. “원전 10기 건설은 이 대통령이 건설업계에 주는 선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여기에 한수원, 한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원자력문화재단 등 원자력에 관계된 이해 당사자만 해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원자력문화재단 한 곳에서만 각종 홍보비로 해마다 100억원 가까이를 쏟아 붓는다.

싼 전기료에 취해 ‘에너지 과소비’ 위험

근본 문제는, 원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 아래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선진국형 모델로 전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한밭대 조영탁 교수(환경경제학)는 “전세계가 수요관리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우리만 공급을 늘려서 해결하겠다고 덤빈다”라고 정부의 기본계획을 비판했다. 현재의 에너지 가격이 너무 싸서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기는커녕 부추긴다는 것이 조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그 ‘저가 에너지’를 떠받치는 핵심이 원전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일본·미국·영국 등에 비해 최대 40%까지 저렴한 수준이라고 분석된다. 에너지 효율이 매우 낮은 방법인 전기 난방과 전기 취사가 성행할 수 있는 이유다. 유가가 고공비행을 한다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 안준관 부장은 “심야요금이나 산업용 전기요금은 터무니없이 싸게 공급된다. 기업이 용광로를 전기로 돌리는 게 쌀 정도다. 이런 불합리한 요금체계만 개선해도, 서민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늘리지 않고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당장은 원전이 제공하는 싼 전기요금이 이득인 것 같아도, 결국은 에너지 체질 개선 실패라는 부메랑으로 모두에게 돌아온다. ‘원전 러시’는 그 시기를 오히려 앞당길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를, 이명박 정부는 듣고 있을까.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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