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더니 이제 4위 리먼 브러더스까지 도산 위기에 휩싸였다. 이들보다 영향력이 큰 메릴린치나 씨티은행 등도 하대하던 중동 국부펀드나 아시아 금융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수혈해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던 금융기업이 이 지경이니 서브프라임 전문 대출 업체나 헤지펀드, 중소 은행이 영업정지나 청산, 도산한 것은 이야깃거리도 못 된다. 이미 많은 금융 기업이 무너졌지만, 더 많은 회사가 M&A를 당하거나 문을 닫으리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 곳이 요즘 미국 월가다. 세계 금융의 총본산을 초토화한 주범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이 패니매와 프레디맥까지 뻗친 것은 분명히 불길한 징조이다. 두 회사는 미국 주택금융 시장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 아닌가. 모기지 채권 인수 및 주택저당증권(MBS) 발행 등을 통해 주택 자금을 공급하는 두 회사는 미국 주택 모기지 대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올 3월 말 기준 42%나 된다. 총 12조 달러 가운데 5조 달러가 넘는 것이다. 만약 두 회사가 파산한다면 미국 금융시장을 마비시키는 것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이미 1년여 태평양을 건너온 서브프라임 파장에 몸서리를 친 한국 금융 소비자로서는 또 얼마나 주가가 떨어지고 외환시장이 요동칠까 걱정할 수밖에 없지만, 두 회사의 위기 조짐은 또 다른 걱정거리를 낳았다.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으로 두 회사의 채권을 상당 규모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가까스레 ‘9월 외국인 채권 위기설’이 진화된 금융시장에 외환유동성 위기설이라는 변종을 낳는 데 한몫했다. 한국은행은 채권 투자 규모에 대해 함구했지만, 시장에는 늘 ‘입’이 많은 법이다. 투자 규모가 300억~400억 달러에 이른다는, 구체적으로 370억, 380억 달러에 달한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비난도 빠질 리 없다. 한국은행이 어떻게 금쪽같은 외환보유고를 이런 위험한 회사에 투자했느냐는 성토를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자칭 금융 고수로부터 듣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정부가 환율 방어에 200억 달러를 날렸다는 비난이 들끓었던 뒤라 이들을 한층 자극했을 것이다.

한국은행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공개 해명은 하지 않았지만, 관련 문의에 담당국장은 적극 설명하려 들었다. 한국은행의 해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환 위험은 전혀 없다’이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우선 두 회사의 독특한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민간 기업이지만, 연방법에 의해 설립되고 유사시 미국 정부로부터 긴급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 기관이기도 하다. 민과 관의 성격을 동시에 띠게 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 정부가 서민의 집 마련을 위해 패니매를 만들었다가 1968년 주식을 상장해 민유화했고, 2년 뒤 독점을 막기 위해 같은 일을 하는 프레디맥을 만든 역사에서 비롯한다.

 국유화되면 외환보유액 축낼 염려 없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이 미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상환 책임을 지는 국채는 아니지만 두 회사의 채권 상환을 암묵적으로 보증하는 채권으로 분류하는 것도 이런 성격에서 기인한다. 여기다 신용등급(트리플 A)이 국채와 같다는 점도 한국은행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중앙은행을 끌어들인 이유다. 다른 중앙은행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은행이 후순위가 아니라 선순위채권을 들고 있다는 사실도 떼일 위험을 0%에 가깝게 만든다. 이미 7월 두 회사에 대한 긴급 지원 방안을 내놓은 미국 정부는 이 방안으로 두 회사의 파산 염려가 진정되기를 기대하지만, 설령 시장에서 예측하듯 ‘국유화’가 불가피하더라도 선순위 채권을 가졌다는 점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다. 국유화, 즉 미국 정부가 주식을 인수한다면 감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두 회사의 주식은 휴짓조각이 될 운명이지만, 채권은 상환해주어야 한다.

최악의 경우는 두 회사가 죽든 말든 미국 정부가 모른 체하는 것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 가능성을 0%로 본다. 이것은 미국 금융시장 붕괴를 각오하는 것인데, 미국 재무부든 중앙은행이든 선택할 수 없는 카드인 탓이다. 사실 최악의 경우 미국 정부가 나서리라는 시장의 강력한 믿음이 시장 안정의 강력한 버팀목이 된다. 이미 네 토막도 더 난 주식을 들고 있는 두 회사 주주들이야 곡소리를 내지만, 채권자가 채권을 상환하라고 나서기는커녕 미동도 않는 연유다. 사실을 제대로 알면 걱정도 덜하고 누구를 비난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그런 점에서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각종 명목의 위기설은 사실을 외면한 대표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기자명 장영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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