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세계의 공장’ 중국은 질적 고도화를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위는 중국 사싱의 한 공장.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 13억 중국인의 100년의 꿈(百年夢圓)이라는 베이징 올림픽. 그것을 17일 동안 전세계에 알리며 맹렬히 불타던 성화가 8월24일 밤 꺼졌다. 중국 경제를 상징하는 상하이 주식시장은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거의 내내 내리꽂혔다. 지난해 10월16일 고점(6092포인트)에 비해 반토막이 난 것도 모자라 세 토막을 향해 치닫는 주식시장은 성화가 꺼진 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리라는 불안감에 불을 지폈다.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는 어디로 향할까. 연착륙할까, 아니면 경착륙할까. 이 논쟁은 올림픽 이후 올림픽 개최국의 경제성장률이 급락하는 현상, 이른바 ‘올림픽 밸리 효과’ 혹은 ‘포스트 올림픽 신드롬’의 발현 여부에서 출발한다. 현대경제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 베이징대표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밸리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올림픽 이후 투자 급감과 자산 가격 하락, 소비 감소가 3∼5년 이상 지속되어 성장률을 끌어내리리라 보는 것이다.

‘올림픽 밸리 효과’ 크지 않을 듯

밸리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400억~500억 달러로 추정되는 베이징 올림픽 투자 규모가 역대 올림픽 사상 최대라고 하지만, 경제 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파급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전망한다. 경제 규모(GDP)가 세계 4위인 중국은 올림픽 개최 연도로 비교할 때 오스트레일리아(2000년)와 그리스(2004년)에 비해 각각 8배, 17배나 경제 규모가 크며, 개최지인 베이징이 중국 GDP와 고정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1988년 당시 서울이 한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1%에 달했다.

올림픽 밸리 효과를 넘어 중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좀더 논쟁적이다.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어차피 올림픽은 일회성 스포츠 제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세계의 이목이 쏠린 올림픽은 논쟁이 고조되는 계기를 제공했을 뿐, 중국 경제의 행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거졌다. 도처에 위기 징후가 도사렸다는 십면매복(十面埋伏)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중국 경제가 안은 위험 요인이 적지 않은 탓이다.

이미 가파른 전선이 형성됐다. 중국 경제 낙관론은 주로 중국내 전문가가, 비관론은 주로 서방세계의 경제 전문가가 꺼내는 구도다.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린이푸는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는 올림픽 이후에도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내수 확대, 하이테크 산업의 발달로 오랫동안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다”라며 비관론을 일축한다. 반면 “인플레이션과 경기과열 때문에 중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라고 주장한 스티브 그린 영국 스탠더드차터드 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비관론자의 선봉에 서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지리라 보는 경제 전문가는 거의 없다. 잠재성장률(9%대로 추정)에 근거한 장기 전망은 아무리 박하게 봐도 비관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전세계를 풍미한 ‘고성장·저물가’라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경제 조합, 이른바 ‘골디록스’ 시대가 끝났다는 데에는 중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앞으로 2~3년간 중국 경제는 물가 불안과 성장 둔화, 미국 경제의 후퇴에 따른 수출 둔화 등의 영향으로 ‘저성장·고물가’의 조정기를 겪을 것이다”라는 왕이밍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원 부원장의 주장은 폭넓은 지지를 받는 시각에 속한다.

문제는 조정의 폭과 그 양상에 쏠린다. 여기서 이른바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 하는 격렬한 논쟁도 불거진다. 학자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대체로 중국의 경우 성장률 8% 이상을 연착륙, 그 이하는 경착륙으로 보는 것이 다수 견해다. 중국 경제는 2002년부터 지난 6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0.4%에 달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아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경제 규모에서 세계 3위 독일을 바짝 추격 중인 경제대국(1, 2위는 미국, 일본)이 두 자릿수 성장을 했다는 자체가 경이롭다.

이 기간에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1.9%에 그친 것도 경이롭다. 이것은 과열 논란을 잠재웠지만, 지난 6년 동안 중국 경제에 인플레 압력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잠재성장률을 1% 이상 웃도는 고속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쌓인 인플레 압력이 지난해 8월 이후 고유가와 원자재 난을 만나면서 물가 수준을 가파르게 높였다. 지난해 말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4.8%에서 올 1월 7.1%로 급등하더니, 급기야 올 2월에는 8.7%로 드라마틱하게 치솟아 전세계에 중국발 인플레 경보를 발동했다. 199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8%대 물가 수준은 이후 조금씩 떨어져 올 7월 6.3%를 기록했지만 이 수준은 여전히 중국 정부의 물가 억제 목표선 4.8% 에 비해서는 현저히 높을뿐더러 물가 불안이 누그러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올 7월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무려 10.0%로 치솟았는데, 생산자 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파급될 수밖에 없다.

올 7월 BNP파리바, 골드만삭스 같은 서방의 투자은행 9개 사가 전망한 올해 성장률은 평균 10.0%.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 상반기 성장률이 10.4%였으니 하반기 성장률을 9%대 중반으로 예상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중국 경제의 행로는 미국 경제와 유가 등 대외 변수에도 크게 영향을 받겠지만, 무엇보다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와 역량에 달려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인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중앙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기 쉽고, 강력한 수단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책 묵인하는 속셈은?

경제 전문가들은 세 가지 시나리오로 중국 경제를 점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지난해처럼 중국 정부가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춰 긴축 기조를 지속하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경우 내년 성장률이 7.2%까지 하락하리라 추정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경기과열과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도부가 이전처럼 고도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투자 확대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다. 이 경우 9.6%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급격한 감속을 막기 위해 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인플레이션 억제에도 힘을 쏟는 것인데, 이럴 경우 성장률 8.1%로 추정된다.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보는 것은 세 번째. 이미 중국 정부가 국내외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눈앞에 둔 7월25일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거시 경제정책의 기조를 ‘량팡(兩防)’에서 ‘이바오이쿵(一保一控)’으로 전환했다. 중국 정부는 2006년 성장률이 11% 선을 넘어서자 과열을 식히기 위해 전면적 긴축정책을 지칭하는 량팡을 꺼내들었는데, 량팡은 경기과열도 막고 물가도 억제하겠다는 뜻이다. 고정식 교수(배재대·중국경제)는 지난해와 올 상반기 성장이 주춤한 것은 무엇보다 과열을 누그러뜨리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 의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중국은 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등 과열을 막고 인플레를 누그러뜨리는 조처를 수차례 내놓았다.

ⓒReuters=Newsis중국의 성장률이 둔화하리라는 염려 때문에 소비가 줄어들었다. 위는 상하이의 한 백화점.
고 교수는 량팡에서 이바오이쿵으로의 전환, 즉 성장을 유지(一保)하면서 물가를 억제(一控)한다는 의미는 긴축정책을 접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인한 지나친 감속은 막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한다. 긴축정책 완화를 뜻한다는 것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한 투자은행에서 경기부양설이 흘러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JP모건체이스의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인 프랭크 공은 중국 정부가 GDP의 1.0∼1.5%에 해당하는 2000억∼4000억 위안(약 30조~6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을 도산 위기에 몰린 중소 수출기업을 돕고 주가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떠받치려는 의도라고 분석한다.

삼성경제연구소 표민찬 수석연구원은 중국 정부로서는 성장도 물가도 포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농촌과 내륙 지역 주민의 불만이 이미 한껏 높아진 상태에서 물가 불안을 유발하는 고성장 정책을 지속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성장 감속이 지나치면 실업률이 높아져 역시 저소득층의 불만을 고조시키는 긴축정책을 밀어붙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도시 지역에서 일자리 100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성장률이 10% 안팎이 되어야 빈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체제 불안을 가장 염려하는 중국 정부로서는 적어도 8% 이상의 성장을 유지하면서 물가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리라 보인다.

성장과 물가 사이의 이 절묘한 줄타기가 성공하면 중국은 연착륙할 수 있다. 투자와 소비가 견조한 것도 연착륙을 시도하는 중국 정부를 부축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7월 소매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3% 늘었다. 1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이다.

인플레, 중국 정부 끈질기게 괴롭힐 듯

연착륙의 관건은 인플레이션과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격 동향이다. 중국 정부 예상보다 인플레 염려가 커진다면 긴축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고 이것은 중국 경제를 경착륙으로 몰고 갈 수 있다. 7월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10%를 기록한 것은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중국 선전 등 대도시에서 벌이지는 부동산 가격 폭락세는 은행 부실과 성장 감속을 부를 수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은 탓인데, 이들의 부채비율은 이미 평균 400%를 넘는다. 이른바 ‘핫머니’로 불리는 단기 투자자금의 이탈이 본격화할 공산도 적지 않다. 정부가 외환의 들고 남을 일일이 통제해 금융위기가 발생할 리는 없지만, 핫머니의 지속적 이탈은 주가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더욱 부채질해 중국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투자 대상국이자 최대 수출 대상국이다. 중국의 실질 GDP가 1% 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2.5% 포인트 하락한다. 중국 경제의 향방에 한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김시중 교수(서강대·경제학) 등 국내 상당수 중국 경제 전문가는 그동안 중국 정부의 거시경제 관리 능력을 볼 때 연착륙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중국 지도부가 이번에도 성장과 물가, 상충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2기 후진타오 체제가 본격 경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기자명 장영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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