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는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한식이었다. 미르재단은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에 한식 정규과정을 개설하는 일에 공을 들였고, 박 대통령은 한식 세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한식 세계화 관련 행사에 직접 참석한 것도 여러 차례다.

사달이 나기 시작한 건 미르재단이 한식재단과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추진하기로 했던 에콜 페랑디 사업을 가로챈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시사IN〉 제480호 기사 ‘한식 세계화에도 미르재단 검은손이’ 기사 참조). 한식재단이 꿀 먹은 벙어리가 돼 있는 동안 문체부와 농식품부가 나서서 관련 의혹을 방어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제 의혹의 눈길은 한식재단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한식재단이 대체 어떤 곳이기에 국정 농단의 주범들이 마음 놓고 주무르려 했느냐는 시각이다. 한식재단은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한식 세계화를 기치로 의욕적으로 출범했다. 2017년까지 한식을 세계 5대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제1대 이사장은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운천 현 국회의원이었다.
 

ⓒ연합뉴스4월11일 서울 한식문화관에서 열린 K스타일허브 한식문화관 개관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배우 송중기씨 그리고 윤숙자 한식재단 이사장(오른쪽부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식재단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한때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김윤옥 여사 사업’이라는 비판을 들어왔던 한식재단을 없애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별일은 없었다. 소소한 한식 사업을 꾸리면서 한식재단은 과거와 비슷한 명맥을 유지했다. 미르재단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시사IN〉은 한식재단 사정을 잘 아는 정부기관 관계자로부터 박근혜 정부 이후 재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식재단은 공공기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방만하게 운영되었다. 이사장 한 명이 재단을 좌지우지했고, 이를 견제할 장치는 없었다.

우선 현 이사장인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취임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한식재단 이사장은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이나 공개모집을 통해 농식품부 장관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열린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윤숙자 이사장을 포함한 후보 4명의 자격에 의문이 제기됐다. 자질과 경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후보추천위 의견대로라면 전원 탈락할 위기였다.

기류가 바뀐 건 후보추천위에 농식품부 담당국장(식품정책관)이 참석하면서부터다. 농식품부 담당국장은 후보자 전원에게 면접 기회를 주도록 회의를 이끌었고, 결국 면접 끝에 윤숙자씨가 이사장에 선임된다. 지난 국정감사 때 김철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윤숙자씨가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출신임을 지적하며 이사장 취임 배경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지만 이후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그런데 〈시사IN〉 취재 결과 농식품부가 처음부터 윤숙자씨를 이사장 물망에 올려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정황이 드러났다. 농식품부 국·과장급 인사들이 올해 초부터 여러 경로로 윤숙자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한식재단 이사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기 두 달여 전 일이다. 해당 공무원들은 관계자들에게 입단속을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까스로 관문을 통과한 윤숙자 이사장은 지난 4월6일 취임 후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차은택 감독이 날더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리를 보장했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이었다. 그 당시부터 이미 차은택씨가 문화계 ‘실세’임을 인지했다는 이야기다. 4월11일 윤 이사장은 취임 후 닷새 만에 열린 한식문화관 개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배우 송중기씨와 함께 참석해 행사를 주관했다. 재단 안팎에서조차 “취임하자마자 VIP가 참석한 행사에 함께 서다니 누가 윤숙자 이사장 뒤를 봐주는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왔다.

성과 없이 1000억원 예산 쏟아부어

지난 9월 말 국정감사 때도 윤숙자 이사장은 미르재단과 연관성을 묻는 질의에 대해 “미르재단이 한식 문화를 알리고 있다는데, 논쟁이 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미르재단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듣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미르재단이 에콜 페랑디 사업을 가로채갔다는 의혹이 불거진 마당에 피해자나 다름없는 한식재단 수장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기관 관계자는 윤숙자 이사장이 재단 예산으로 본인이 운영하는 업체의 제품을 구입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지난여름 한식재단은 한식문화관 홍보물로 쓰기 위해 ‘질시루’의 떡을 재단 예산으로 구입했다. 질시루는 윤숙자 이사장이 운영하는 떡집이다. 한식재단 직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2인1조로 차출되어 청계천 한식문화관 근처 행인들에게 질시루 떡을 배포했다. 사실이라면 윤 이사장이 재단 예산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이야기다. 한식재단은 최근까지도 질시루 떡을 관련 행사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이사장은 한식재단 사업 중 하나인 해외 한식당 종사자 교육을 할 장소로 로스앤젤레스 한식조리학교(한국전통음식연구소 로스앤젤레스 분소)를 활용하라고 지시한다. 로스앤젤레스 한식조리학교는 윤 이사장이 2015년 설립한 해외 요리학교다. 최대 투자자가 윤숙자 이사장과 그 가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토 결과 로스앤젤레스 한식조리학교가 교육 장소로 부적합하다고 판명되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사실이라면 재단 이사장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재단 안팎에서는 한식재단 행사 때 윤 이사장이 속한 한국전통음식연구소 관계자들이 자주 참석하는 것을 두고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제3의 경로로 인건비를 받아가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예컨대 지난 7~8월 열린 ‘대한민국 식품 명인과 함께하는 전통주 및 떡·한과 무료 체험행사’에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 관계자 10여 명이 동원됐는데 이들에게 어떤 경로로든 인건비가 지급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시사IN〉은 윤숙자 이사장에게 세 가지를 질의했다. 첫째, 차은택씨가 문체부 장관 자리를 약속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가. 둘째, 한식재단 예산으로 질시루 떡을 구매했는가. 셋째, 로스앤젤레스 한식조리학교를 한식재단 교육장으로 쓰도록 지시했는가. 윤숙자 이사장은 이에 대해 “세 가지 사항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라는 문자 메시지만을 보내왔다(〈시사IN〉 482호 보도 이후 한식재단 측은 "이사장 선임 과정은 투명하게 진행되었으며 논란은 업계 내 반대파의 흠집내기다. 한식재단 예산으로 윤숙자 이사장이 운영하는 질시루 떡을 구입한 바 없다. 전통음식연구소 관계자들은 재단 행사 때 순수하게 자원봉사로 참여했을 뿐 어떠한 돈도 받지 않았다. 윤 이사장과 관련이 있는 LA 한식조리학교를 해외 한식당 종사자 교육 장소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없다"라고 해명했다). 


한식재단이 망가진 건 윤숙자 이사장 취임 이후의 일은 아니다. 윤숙자 이사장 전임인 강민수 전 이사장(2016년 3월까지 재직) 때도 한식재단 운영은 주먹구구였다. 강 전 이사장은 한국음식관광협회 회장 출신이다. 한국음식관광협회는 매년 한국음식관광박람회를 개최하는 곳인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단체가 아니다. 김치교육 지도사, 아동요리 지도사, 음식문화 평론가 따위 자격증을 발급하기도 한다.

2014년 4월 취임한 강민수 이사장은 한국음식관광협회에서 함께 근무한 김동희씨를 사무총장으로 앉혔다. 애당초 이사장직 취임 때 내건 요구 조건이 김 사무총장의 채용이었다. 서정대 호텔조리과 교수로 알려진 김 사무총장 역시 업계에서 그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이후 김동희 사무총장은 강 이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임기를 같이했다.

인사 전횡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강 이사장의 지도교수 자녀 또는 한국음식관광협회 간부 자녀를 인턴이나 정규 직원으로 채용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식재단의 IT 관련 외주 사업을 지인으로 하여금 독점하도록 했다. 사실상 ‘노터치’였다.

흥미로운 건 강 전 이사장이 수시로 자신의 정치적 인맥을 과시하고 다녔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당시 청와대 홍보수석)가 자신을 한식재단 이사장에 앉혀줬다거나, 박 대통령과 매주 토요일 전화 통화를 한다는 식이었다. 한식재단 예산으로 좋은 과일이나 김치를 구입해 청와대로 보내기도 했다.

한식재단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말의 스케일이 워낙 커서 믿을 수 없다가도 실제로 저런 사람이 한식재단 이사장으로 온 걸 보면 어떤 배경이 있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강민수 전 이사장은 〈시사IN〉과 통화에서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거나 이정현 대표와 친분이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한식재단은 지금 길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떡볶이 세계화 따위에 큰돈을 갖다 쓰면서 논란을 자초하더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자질 부족 논란이 있는 인물들이 이사장 자리를 꿰차면서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 그동안 한식재단이 쓴 국가 예산만 1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재단 내부에서는 한식재단이 권력자들의 만만한 노리개가 되었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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