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고, 2015년 1월22일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을 포함한 통진당 당원 10여 명에게 징역 2년6개월~9년을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내란 혐의를 내세워 통진당과 이석기 등에 대해 해산 결정과 유죄를 선고하게 된 유일한 증거는, 2013년 5월12일 경기도당 초청으로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강당에서 이루어진 이석기 의원의 강연 녹취록이다.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을 도무지 마련하지 못했던 국정원은 통진당과 이석기를 대한민국 정계에서 영원히 쫓아내기 위해, 자신들이 날조한 녹취록 전문을 언론에 제공했다. “선전 수행”을 “성전(聖戰) 수행”으로 날조해놓은 국정원 녹취록을 단독 입수해서 이틀 연속 게재한 〈한국일보〉 사회부 법조팀은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국정원으로부터 녹취 원본을 건네받은 검찰은 그보다 많은 450곳을 악의적으로 오녹취하는 신공을 보였다. “전면전이야 전면전!”(검찰 날조)→“전면전은 안 된다.”(실제 발언), “폭력적인 대응”(검찰 날조)→“통일적인 대응”(실제 발언), “실탄이 있어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검찰 날조)→“시 단위에 있어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실제 발언), “중앙 지휘부가 다 없는 거예요.”(검찰 날조)→“중앙 당직이 다 없는 거예요.”(실제 발언)
〈이카로스의 감옥〉에는 변호인단이 검증 작성하고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한 이석기의 강연문 11쪽, 이 의원과 당원들 사이에 이루어진 질의응답 2쪽 반, 이 의원의 마무리 발언 2쪽 반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 강연에서 이석기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이어지는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통진당이 보수 세력의 종북 공세를 지혜롭게 차단하는 방법과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방안을 화제로 꺼냈다. 두 가지 현안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대외적 선전 활동이었지 무력이나 내란이 아니었다. 이 의원은 마무리 발언에서 어느 분반 토론에서 실없이 나온 총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총? 총 가지고 다니지 마십시오. 핵폭탄보다도 중요한 게 사상의 무기입니다.” 핵폭탄보다 중요한 이들의 사상을 살펴보자.
“현재 진보당은 한국 사회에서 자주의 기치를 든 유일한 정치집단입니다. 어찌 보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자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민주당, 안철수 막론하고 누구나 복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자주만은 누구도 어떻게 못합니다. 자주라는 가치는 한반도의 복잡한 정세, 다양한 이해관계를 한 번에 단순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주의 기치를 든 자주·민주·통일 세력을 제거하려는 것이 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것이 진보당 탄압의 배경입니다.”
이석기가 감옥에 왜 있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자주와 통일을 이야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진보’ ‘골방 진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째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인가? 통진당을 시대착오적인 진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인권·자유·복지를 우선 가치로 내세우지만, 전시작전권조차 돌려받지 않으려는 비자주적 정부가 어떻게 국민의 인권·자유·복지를 돌볼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당시에 진보 세력이 벌였던 한·미 FTA 반대와 이라크전 참전 반대, 그리고 현재도 깨어 있는 많은 민주시민이 거부하고 있는 미군의 사드 배치는 모두 자주의 산물이거나, 필요할 때마다 자주를 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통진당의 지하 지도부라는 RO의 실체를 제시하거나, 내란음모의 증거나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북쪽과 접선한 증거가 없자 검찰은 ‘접선이 필요 없을 만큼 북에 내면화된 증거’라고 우겼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심리를 한 것은 항소심에서 내란선동죄로 바뀐 내란음모죄가 아니라, 국민의 사상과 말이었다.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지 못했던 노무현 정부의 후과가 진보의 싹을 잘랐다. 그때 민주당과 정의당은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보다 더 힘없는 아이를 이지메하는 비겁함을 선택했다.
2014년 8월11일, 9년의 징역형을 받은 이석기 전 의원은 만 3년째 0.75평 독방에서 날마다 내란 사건 최장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통진당 해체의 지휘자였던 박근혜는 불법 자금 모금과 제3자 뇌물공여죄로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됐다. 현재 광화문광장과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당도 공범이다!’라는 구호가 나오고 있지만, 저 구호는 동어반복이다. 제대로 된 구호는 ‘박근혜는 퇴진하라! 이석기를 석방하라!’이다. 대통령의 무능과 측근 비리를 규탄하면서, 어느덧 외부 세력이 되어버린 ‘정치’와는 담을 쌓은 순결한 당신은 결코 저런 구호를 외칠 것 같지 않다. ‘광화문 극장’은 자기개발을 망쳐버린 사람들의 ‘욕망의 포르노’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집어삼킨다. 마치 술자리의 내 친구들이기라도 한 양, 당신께 묻고 싶다. 이석기가 거기 왜 있어야 하는데? 이승만에게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은 52년 만에, 박정희에게 사법살인을 당한 민청학련 관련자 8명은 32년 만에 재심을 받고 무죄가 되었다. 이석기가 나온 자리에 누가 있어야 하는지는 우주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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