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막가파식 언행에 집중됐던 따가운 시선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 쪽으로 급속히 옮아가고 있다.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일하던 무렵, 국내외 인사 상당수가 클린턴 가족의 재단에 기부한 대가로 그녀에게 특혜를 요청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AP 통신에 따르면 장관 재직 시 클린턴을 만났거나 전화를 한 사람은 154개 민간 부문에서 최소 85명에 달한다. 이들이 클린턴 재단에 낸 기부금은 무려 1억5600만 달러에 이른다.

게다가 그녀가 국무장관 재직 때 만난 외부 인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바로 재단 기부자였다. 클린턴이 관련 인사들에게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는 당장 특별검사를 임명해 이 문제를 파헤쳐야 한다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공방이 이어지면서 클린턴에 대한 신뢰도는 다시 급락했다. 그녀로서는 대선 가도에서 중대한 암초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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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 후보(오른쪽)는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왼쪽)과 함께 ‘빌, 힐러리 앤드 첼시 클린턴 재단’을 운영해왔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를 겪은 바 있다. 2009년 1월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의 1기 국무장관 재직 당시 그녀는 개인 서버를 이용했다. 문제는 기밀 사항이 포함된 이메일 수만 건을 개인 서버로 주고받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연방수사국(FBI)의 조사까지 받았다. FBI가 7월 초 공식 발표를 통해 힐러리 클린턴의 행위를 위법으로 단정하면서도 형사소추는 억제해 일단 위기를 넘기는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클린턴 재단 스캔들이 터지고 만 것이다.

재단은 1997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설립되었다. 2014년 가을 부인 힐러리와 딸 첼시의 이름까지 넣어 ‘빌, 힐러리 앤드 첼시 클린턴 재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산하에 보건과 건강, 기후변화, 경제발전 등 여러 분야에 11개 비영리단체를 거느리고 있다. 최근까지 6000명 이상의 기부자로부터 약 20억 달러를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3년 2월 국무장관을 그만둔 뒤 이 재단의 이사로 일하면서 모금 작업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녀가 재단에서 손을 뗀 때는 지난해 4월의 대선 출마 선언 직전이었다. 클린턴 가족 재단은 전 세계 180개국에 걸쳐 빈곤 및 질병 퇴치를 포함한 각종 프로젝트 3500여 건을 지원했다.

미국 국민 10명 중 7명 “재단,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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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록밴드 U2의 보노는 클린턴 재단에 공연 실황을 우주정거장으로 생중계할 권리를 요청했다.
보수 단체 ‘사법감시(Judicial Watch)’가 최근 법원 판결을 통해 입수·공개한 클린턴 재단과 힐러리 클린턴 간의 이메일을 보면 재단 운영의 이면이 드러난다. 재단에 5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바레인 왕자는 2009년 6월 워싱턴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재단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한 스포츠 업계의 거물 케이시 와서먼은 범죄 전과가 있는 영국 축구 선수의 비자 발급에 협조해달라고 클린턴 측에 요청하기도 했다. 재단의 정기 후원자인 아일랜드 록밴드 U2의 보노는 공연 실황을 우주정거장으로 생중계할 권리를 따내려고 했다.

청탁의 중개인으로는, 당시 힐러리 클린턴의 최측근인 후마 애버딘 비서실장,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법률고문을 지낸 더그 밴드 등이 지목된다. 밴드가 기부자들의 민원을 접수해서 애버딘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예컨대 케이시 와서먼은 2009~2010년 클린턴 재단에 500만~1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별도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도 313만 달러를 컨설팅료 명목으로 지불했다. 그랬던 와서먼이 영국 축구 스타가 범죄 전과 때문에 미국으로 오기 어렵게 되자, 더그 밴드에게 SOS를 쳤던 것이다. 밴드의 요청을 받은 후마 애버딘은 “꺼림칙한 문제지만 (힐러리에게) 물어보겠다”라고 답했다.

클린턴 재단에 유입된 외국 정부 및 인사들의 자금도 의혹 대상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재단은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아랍에미리트·카타르·쿠웨이트·오만·브루나이 및 알제리 등 외국 정부로부터 수천만 달러 규모의 기부금을 받았다. 거론된 나라들은 모두 인권유린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왔다.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의 사위이자 철강 거부인 빅토르 핀추크는 클린턴 재단에 1000만~2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특히 그는 개인 비행기로 2011년 10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의 65세 생일 축하연에 참석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참모 더글러스 쇼엔은 ‘선거를 앞둔 우크라이나의 정국에 대한 혜안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2011년 9월~2012년 11월 핀추크와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들 간의 회동을 10여 차례나 주선했다.

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면서 트럼프는 법무부가 클린턴과 재단 간의 유착 거래를 조사하지 않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그는 특히 클린턴 재단을 가리켜 “정치 역사상 가장 부패한 사업체로 즉각 폐쇄해야 한다. 특별검사를 임명해 신속히 조사하라”고 법무부에 촉구했다. 공화당 라인스 프리버스 전국위원회 의장은 “국무장관 재직 당시 클린턴이 한 일은 가장 민감한 외교정책 입안자들을 만날 기회를 가장 높은 액수를 부른 사람에게 판매한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트럼프 측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대책을 발표했다. 아내 힐러리가 대선에 승리하는 경우, 클린턴 재단은 해외 정부 및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운영 역시 독립적 기구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클린턴 자신의 모금활동을 중단하는 한편 재단 이사직에서도 물러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대책 발표만으로 여론이 잠잠해질 것 같지는 않다. 유권자들은 ‘당선되면 재단과 관계를 끊겠다’는 클린턴의 말을 믿지 못한다. 그녀가 사실상 자신의 재단에 20억 달러 이상을 제공한 6000여 기부자들을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일하던 당시 재단의 기부금 수수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전력에 사람들은 근본적 의문을 갖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힐러리 클린턴의 장관 재직 시 클린턴 재단이 외국의 기부금을 받은 사실에 대해 ‘문제 있다’고 답변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전당대회 뒤 승승장구했다. 대세론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대권가도에 아킬레스건이 된 클린턴 재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세론은 한낱 신기루로 끝날 수도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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