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사회 속 미술-행복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민중미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1980년대 민중미술 작품부터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의 사회참여 작품들이 걸렸다. 이번 전시는 반세기 동안 이어진 단색화(모노크롬)와 민중미술의 ‘리턴매치’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흔히 예술은 순수예술과 참여예술로 구분된다.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순수성을 추구하는 것이 순수예술이라면, 시대와 무관한 예술은 없다며 예술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시각이 참여예술이다.

한국 미술사에서는 단색화와 민중미술이 이 두 진영을 대표한다. 순수예술이 맞느냐 참여예술이 맞느냐는 논쟁이, 한국에서는 예술이 비정치적이어야 하느냐 정치적이어야 하느냐는 형태로 전개되면서 민중미술 작품을 배제하는 이유가 되곤 했다.

ⓒ시사IN 조남진<사회 속 미술-행복의 나라>는 민중미술 작품 전시회지만 적나라하지 않고 정제되어 있어 어린이 관람객이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그런데 순수예술이라고 해서 생각만큼 순수하지는 않다. 비정치적이지도 않다. 미술사조 연구가 에바 코크로프트는 1974년 미국 CIA가 잭슨 폴록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을 치밀한 공작을 통해 키워왔다는 것을 폭로했다. 작가의 자유로운 표현 기법을 중시하는 추상표현주의는 대표적인 순수예술 장르로 분류된다. 에바 코크로프트는 CIA가 옛 소련 리얼리즘 예술의 서방 침투를 막는 ‘냉전시대의 무기’로 추상표현주의를 사용했다고 표현했다.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할 무렵 한국에서는 단색화가 유행했다. 이런 단색화의 유행에는 국가의 지원도 영향을 끼쳤는데, CIA의 추상표현주의 지원과 비슷한 의혹이 있었다. 1970년대 박서보·정상화·이우환·윤형근·하종현 등 단색화 화가들이 우리 화단의 주류로 떠올랐다. 1970년대 후반, 이런 단색화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민중미술이 등장해 집중 조명되면서 단색화 열풍은 잦아들었다.

민중미술은 단색화에 대한 강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 회복’ ‘현실의식의 회복’을 주장한 민중미술은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서구적인 단색화와 달리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것에 천착했고 단색화의 세련미에 저항해 ‘의도된 촌스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9년 발족한 ‘현실과 발언’ 동인이 이런 민중미술의 주축이었는데 신학철·민정기·임옥상·김정헌·이종구·오윤 등이 대표 작가로 꼽힌다.

1980년대 대학가의 걸개그림으로 대표되는 민중미술은 ‘거리의 예술’이었다. 초기에는 작가의 주제의식에서 민중미술이 출발했지만 후기에는 대중과 함께, 그리고 광장에서 전시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불온한 예술’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다. 대표적인 걸개그림 연작 시리즈인 ‘민족해방운동사’의 경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행사 등에 쓰였으나 사용 후 전부 소각되었다. 민중미술 작품들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주로 소개되었다.

청와대 직원 다녀간 후 철거된 민중미술 작품들

민중미술이 주류에 진입한 것은 김영삼 정부 들어서다. 세상이 바뀌자 민중미술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솔선수범해서 민중미술에 문호를 개방했다. 1994년 대규모 민중미술 전시를 열었다. 미술관의 기능이 ‘국가적 자긍심과 헤게모니를 고양하는 기관’에서 ‘창의적 질의와 이견이 공존하는, 활동적이며 역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시사IN 조남진미술평론가 최열씨가 보관하고 있던 민족해방운동사 사진자료도 전시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단색화 작가들이 재조명되면서 또다시 국가 지원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보수적인 대구시가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인 이우환 화백의 미술관을 짓겠다고 해서 더욱 논란이 되기도 했다. 몇몇 화랑도 단색화 띄우기에 나섰는데 단색화 열풍을 선도한 국제갤러리는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도 단색화 열풍에 올라타면서 매출이 급신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단색화 작가들이 재조명되자, 이에 대한 비판 사조였던 민중미술 작가들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유난히 민중미술 전시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2-리얼리즘의 복권〉전을 비롯해 김정헌·박불똥 등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들의 개인전이 잇달아 열렸다. 민중미술 전시가 열렸던 인사아트센터는 가나아트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국제갤러리 현대화랑과 함께 3대 화랑으로 꼽히는 가나아트가 민중미술 부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반세기 동안 진행된 순수미술과 참여미술의 헤게모니 전쟁이 다시 일어난 셈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다. 민중미술 부흥의 계기가 된 것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라는 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 11월 서울관을 개관할 때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이라는 이름으로 20여 년 만에 민중미술 전시를 기획했다. 서울관 개관에 맞춰 무려 2년 동안이나 준비한 승부수였는데 이 전시는 시작하자마자 파행을 맞았다. 전시될 작품들이 대거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이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을 관람하기로 한 후 여러 작품들이 철거됐다.

임옥상 화백이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는 고 문익환 목사를 그린 ‘하나됨을 위하여’, 1980년대 우울한 분위기를 일그러진 얼굴의 군상으로 나타낸 이강우 화백의 ‘생각의 기록’이 철거되었다. 그리고 신학철·전준호 작가의 작품도 보도자료에는 전시되는 것으로 소개되었지만 전시장에 걸리지 못했다. 전시회에는 치열한 1980년대에 현장에 있지 않고 유학을 갔던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었다.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 파행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보기 불편한 작품들은, 청와대 직원들이 다녀간 후 철거되었다. 전시회를 총괄한 서울대 정영목 교수는 “‘시대정신’이란 상황과 실존에 대한 ‘깨어 있음’의 태도다. ‘깨어 있다’는 것은 곧 비판정신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비판이 있기에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가능하다. 미술도 그렇다”라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검열에 굴복하면서 빛이 바랬다.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의 파행은 현재의 ‘시대정신’이 혼탁하다는 점만 확인시켜주었다. 저항의 예술인 민중미술이 검열에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한 것으로 시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다음이 더 아이러니했다. 전시회 파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채용 비리로 물러난 뒤, 외국 큐레이터 중 예술가 검열의 전력이 있는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관장이 후임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민중미술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박력 넘치는 구호를 내걸고 시작한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특별전에 걸릴 예정이던 홍성담 화백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이 철거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해 비하했다는 이유에서다. 광주 시민사회단체들이 한목소리로 항의했지만 결국 그림은 철거당했다. 비엔날레 20주년이던 2014년에는 해외 민중미술 작품들이 집중 전시되었지만 ‘세월오월’이 철거되면서 빛이 바랬다.

민중미술이 거듭된 수난을 겪을 때, 박원순 서울시장이 민중미술계 1세대인 김정헌 화백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시 산하 미술관에서 다양한 민중미술 작품 전시가 기획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수 언론이 딴지를 놓았다. 2015년 9월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가 열렸는데, 홍성담 화백의 작품 ‘김기종의 칼질’에 대해 보수 언론이 비판을 쏟아냈다. 보수 언론은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에 대한 ‘테러’를 미화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홍 화백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겼지만, 전시를 총괄한 홍경한 예술감독(〈경향아티클〉 편집장)이 작품을 철거했다. 진보 진영에서 홍경한 감독과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그리고 박원순 시장을 싸잡아 비난했다.

‘김기종의 칼질’ 전시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예술행정에 대한 새로운 공식을 만들었다. 그동안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최선으로 간주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에게 운영을 일임했고, 김 관장은 홍 예술감독에게 전시를 일임했다. 그런데 홍 예술감독이 검열을 하자, 그 비난이 김 관장과 박 시장에게까지 미쳤다. ‘간섭은 하지 않되 책임은 져야 한다’는 새로운 공식이 생겼다.

스스로 검열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광주비엔날레, 또 색안경을 낀 보수 언론의 감시에 시달리는 서울시립미술관과 달리 자유롭게 민중미술을 전시하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성남시다. 성남시는 지난해 8월 오리공원과 하수종말처리장 일대에서 열린 〈저항예술제 in 성남〉에 7000만원을 지원하고 전시를 지원했다.

‘감각적인’ 민중미술에 대한 상반된 평가

〈저항예술제〉의 열기는 뜨거웠다. 지금·여기·우리의 문제를 지적하는 예술가들의 성토장이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에서,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된 콜트콜텍 공장에서, 철거에 맞서다 5명의 시민이 희생된 용산 남일당에서, 세월호 참사 현장으로 가는 길목인 팽목항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 총출동했다. 명실상부한 예술 해방구였다.

ⓒ시사IN 조남진<사회 속 미술-행복의 나라> 전시회장 입구가 화려해서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저항예술제〉에 전시된 작품들은 1980년대 민중미술 작품들처럼 직접적이고 격렬했다. 예를 들면 전시회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던 이미지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었다. 박 대통령의 얼굴을 체 게바라처럼 묘사한 강영민 작가의 ‘박게바라’가 전시장에 내걸린 것을 비롯해 다양한 박 대통령의 패러디 작품이 전시되었다. ‘박근혜 헌정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곳곳에서 사용된 것이다. 비판의 방식이 직접적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주류 미술계에서는 ‘미적 형상화’가 덜되었다는 비판을 했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회 속 미술-행복의 나라〉전은 이런 순수미술과 참여미술의 대립, 예술과 정치가 만들어내는 함수를 알고 보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전시다. 이 전시는 과격한 〈저항예술제〉와 소심한 〈시대정신〉전의 중간쯤에 있다. 〈저항예술제〉만큼 적나라하지 않았지만 〈시대정신〉전처럼 비겁하지도 않았다. 〈사회 속 미술-행복의 나라〉전은 ‘민중미술이 이렇게 감각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항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치 현대미술 전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작품들을 감각적으로 배치했다. 비유하면 민중미술 작가들이 ‘한복’이 아니라 ‘정장’을 입은 모습이었다.

‘정장을 입은 민중미술’에 대한 평가는 다소 갈린다. 불편해하는 미술인도 적지 않다. 이번 전시에 대해 문영민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교수는 “민중미술을 다시 소환해 비판적 실천을 재조명한다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웠지만, 민중미술을 또 다른 영향력 있는 고급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전시회를 열며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미술이 어떻게 사회에 개입하고 발언하는지, 기존 체제의 모순과 억압적 현실에 어떻게 도전하고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는지를 살펴보려는 의도로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이 전시가 단색화와 리턴매치를 벌이고 있는 민중미술 진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을 모은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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