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2005년 12월 바그다드 특별법정에서 재판받는 사담 후세인. 많은 미국인은 아직도 그가 9·11 테러에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다.
지난 7월,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체제가 2001년의 9·11 공격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데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 보십니까?” 정답은 물론 ‘아니오’였다.

사담 후세인은 9·11 공격에 아무런 직접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가 2006년 말에 처형될 때 받은 죄목은 이라크에서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저지른 ‘인륜에 반하는 범죄’였다. 답이 너무 뻔해서, 케케묵은 느낌까지 나는 질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뉴스위크〉의 질문을 받은 미국인 중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절반이 겨우 넘는 56%에 지나지 않았다. 응답자의 34%는 여전히 후세인이 9·11 공격에 관련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10%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미국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아직도 후세인이 9·11 테러의 배후라고 믿는 것이다. 후세인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나마 이 수치는 1년 전인 2007년 6월 조사 때의 41%보다 조금 낮아진 것이기는 하다.

미국인은 왜 이같은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을까. 물론 9·11 직후 미국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한다면서, 확인되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응징 대상으로 지목한 것이 한 원인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대량살상무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후세인도 9·11과 전혀 관련 없는 혐의로 떠들썩하게 처형당했다. 그런데도 미국 대중 상당수는 후세인을 9·11의 원흉이라 믿고 산다. 이런 오해를 낳고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은 바로 미디어다.

보수 언론에 노출될수록 왜곡된 인식 증가

미국의 뉴스 매체 중에서 비교적 보수 언론사로 손꼽히는 것은 폭스(FOX) 뉴스다. 반대로 비교적 공정한 보도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방송은 공영방송 성격의 NPR와 PBS다. 그 사이에 ABC·CBS·NBC·CNN 등의 상업 민간방송사가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폭스 뉴스를 보는 사람일수록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잘못된 믿음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미국이 알 카에다와 이라크 간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발견했으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도 찾아냈고, 세계인 다수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다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 주장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폭스 뉴스를 보는 많은 시청자는 이 세 가지 주장이 옳다고 대답했다. 사실을 잘못 아는 사람은 폭스 뉴스 시청자 중에 가장 많았으며, NPR와 PBS를 보고 듣는 사람 가운데 가장 적었다. 아주 간명한 결과였다.

물론 이들의 오해를 오로지 언론사의 보도 탓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폭스 뉴스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많은 언론학자가 지적하듯, 그럴 가능성보다는 편향된 뉴스에 반복되어 노출됨으로써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이며, 많은 경우 독자나 시청자는 이 창이 보여주는 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완전히 객관적인 미디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기사나 방송은 물론이고, 언론사 자체가 사회·경제 관계 속에서 활동하는 존재다. 그러나 언론이 언론인 이상, 양보할 수 없는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실과 진실에 대한 추구다.

100년 전에 미국 최초로 저널리즘 스쿨을 세운 월터 윌리엄스는 “대중매체란 다름 아닌 대중의 신뢰다”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대중에게 사실과 진실을 전달하도록 노력하고, 그럼으로써 신뢰를 받는 것이 제대로 된 대중매체의 존재 방식이다. 대중의 신뢰이지 ‘정권의 신뢰’ 가 아니라는 점이 특히 눈에 띄는 요즘 한국이다.

기자명 허광준 (위스콘신 대학 신문방송학 박사 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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