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오동진씨가 운영하는 서울 서촌의 카페 ‘반하다’는 영화인들의 아지트다. 이곳에서 우연히 오씨가 박미경 전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와 함께 영화제를 기획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전국의 대안 상영관을 누비며 영화를 상영하는, 전혀 새로운 영화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둘 다 영화제 전문가라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다. 오동진 평론가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오랫동안 맡았고 지금은 서울환경영화제 부집행위원장으로 있다.

그로부터 한참이 흐른 이달 초 구례 자연드림시네마에서 열리는 상영기획전 〈극장을 찾아서〉(4월15~18일)의 초청장을 받았다. 초청자는 오동진 평론가와 박미경 프로그래머였다. 공간이 독특했다. 구례 자연드림시네마는 아이쿱생협에서 운영하는 극장으로 전남 구례군의 유일한 개봉 상영관이다. 왜 이렇게 먼 곳에서 그리고 이렇게 작은 극장에서 영화제를 하는지 궁금했다.

구례icoop협동조합오동진 영화평론가(왼쪽)와 박미경 프로그래머는 대안 상영관으로 새로운 배급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

영화제는 조촐했다. 개막작인 박흥식 감독의 〈두 번째 스물〉을 비롯해 칠레의 탄광 매몰자 구조 실화를 다룬 〈33〉 등 예술영화·상업영화·다큐멘터리 13편이 상영되었다. 축하 공연단은 더 조촐했다. 구례북중학교 난타 팀이 개막 공연을 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다. 영화제에서 연 포럼 때문이었다. ‘스크린 독과점 해소를 위한 만민공동회’와 ‘영화공동체 네트워크 포럼’이 열렸는데 예술영화·독립영화·다양성영화를 상영할 상영관 확보 문제를 함께 고심하는 자리였다. 배우 안성기씨와 방은진씨도 개막식에 참여했다.

포럼 패널의 면면이 화려했다. ‘모두를 위한 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김남훈 상임이사가 조직했는데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이끈 정지영 감독을 비롯해 김혜준 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실장 등 영화계 오피니언 리더가 두루 참석했다. 독립영화 전용관을 위한 시민모임, 모퉁이극장, 부산영화협동조합 등 중앙과 지방에서 대안 상영관을 모색했던 사람들도 참석했다. 그동안 대기업 극장 체인의 스크린 독점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던 이들이 이제 방식을 바꿔 새로운 대안 상영관을 묶어 공정하게 영화 배급을 해보자고 입을 모았다.

생활협동조합 중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아이쿱생협에서는 영화 소비자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로 장소와 예산을 지원했다.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에는 80여 개의 다목적 문화공간이 있다.

대안 상영관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은 300여 개

박미경 프로그래머는 “배급시장의 독과점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검사외전〉의 경우 1800여 상영관에서 상영되었는데 전체 상영관 수의 78%에 달한다. 구민회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강당, 미디어센터 강당, 대학교 강당 등 전국에 대안 상영관으로 활용할 수 있는 데가 300여 곳 된다. 이들이 ‘최소 극장’으로서 정식 상영관으로 운영될 수만 있다면 스크린을 잃을 영화들이 관객과 만나고 지방 관객들도 좋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안 상영관을 고민하는 곳은 많지만 대부분 한 곳의 극장을 어떻게 활성화하느냐 하는 내용이었다. 이번 〈극장을 찾아서〉처럼 전국의 대안 상영관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지 함께 궁리해본 것은 처음이다.

오동진 평론가는 “앞으로 전국의 상영관을 순회하며 이런 상영기획전을 열 것이다. 그러면서 대안 상영관을 엮어내 새로운 배급 체계를 구축해보려고 한다. 각자 이해관계와 관심이 달라 복잡한 조율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의미 있는 모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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