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일본의 1000엔권에 새겨진 인물은 노구치 히데오이다.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세종대왕처럼 높이 떠받드는 사람이라는 얘기이다. 1876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화상을 입어 왼손이 불편한데도 미국에 건너가 세계적인 세균학자가 됐다. 그는 매독·소아마비·광견병, 그리고 황열의 병원체를 배양했다고 발표했으며, 무려 200편의 논문을 써서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 1928년 아프리카에서 연구를 하다 황열병에 걸려 객사한 그의 일대기를 담은 위인전이 일본에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학계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하기 그지없다. 많은 병원체를 밝혀냈다던 그의 주장은 지금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났다. 일본에서 과학 저서로서는 드물게 50만 부나 팔린 〈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에 따르면 고의로 연구 결과를 날조했는지, 아니면 심한 자기 기만에 빠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정직한 과학자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그를 아직 신처럼 떠받드는 이들이 많다. 그가 거짓말쟁이이며 사기 결혼을 일삼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속세는 과학자도 영웅이기를 원하지만 요즘처럼 학문의 영역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가운데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신통한 과학자가 나오기란 힘들다. 1953년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DNA는 이중 나선구조라고 발표해 새파란 나이에 노벨상을 거머쥔 제임스 왓슨과 프렌시스 크릭에게도 남의 연구 결과를 훔쳤다는 의혹이 계속 따라다닌다. 제임스 왓슨은 그의 저서 〈이중나선〉에서 완곡하게나마 이런 의혹을 시인하기도 했다. 그들은 동료 천재 과학자 두세 사람의 연구 결과를 ‘커닝’한 것이 분명하다.

젊은 이공계 과학자 사이에는 예전부터 ‘죽은 새 증후군’이라는 얘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젊은 시절 연구자는 밤을 새워가며 정열을 불태운다. 하지만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필요한 것은 일의 결과보다는 그것을 부풀릴 수 있는 능력이란 걸 깨닫는다. 그래서 노련해지면 그는 새가 되어 높은 하늘을 우아하게 날면서 칭송을 받는다. 하지만 정열은 이미 재가 됐고 그에게 남은 것은 없다. 새는 죽은 것이다.
정부는 최근 황우석 박사가 요청한 체세포 배아 복제 연구를 허락하지 않았다. 황 박사야말로 박제가 된 새이므로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황 박사 추종자는 이 결정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죽은 새도 불쌍하고, 죽은 새라도 사랑해야 하는 이들이 가엾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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