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나래 인턴기자뉴타운 공약 남발로 강북 서민의 보금자리인 다세대·다가구·단독주택(왼쪽)이 대거 사라지면서 집 없는 강북 주민의 대규모 서울 탈출이 시작됐다.

뉴타운 지구에 불도저 굉음이 울리면서 서울 강북 서민층의 대대적인 엑소더스(대이동)가 시작됐다. 이들의 보금자리인 뉴타운 지구 내 다세대·다가구·단독주택 등 서민 주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2003년 길음 뉴타운 지역에서 296채가 처음 헐린 뒤 지난해 7040채에 이어 올해는 무려 2만3072채가 없어진다.

서울시의 3차 뉴타운 지구 재정비 촉진 계획이 완료되는 내년부터는 더욱 많은 강북 서민 주택이 말 그대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강북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 운명에 처한 서민 주택 수는 내년 2만3500여 채에 이어 2010년에는 4만6000여 채, 2011년에는 4만1300여 채, 2012년에는 5만1600여 채 등 해가 갈수록 급속히 늘어난다. 올해부터 5년 동안 무려 18만5000여 채가 헐려 원주민은 대이주를 해야 할 판이다.

서민 주거 대책 없이 개발 사업만 밀어붙여

문제는 이명박 서울시장 체제에서 시작된 대규모 뉴타운 건설 사업이 지난해부터 강북 서민 주거에 대한 뾰족한 대책도 없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강북 서민은 서울에서는 더 이상 살 곳이 없다. 뉴타운 지역에서 밀려난 원주민이 눈을 돌릴 만한 곳은 뉴타운 지구 지정이 되지 않은 주변 지역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이후 최근까지 강북 전역은 전·월세 가격이 폭등해 이주민이 넘볼 상황이 아니다.
아현 뉴타운의 경우 개발 부지에서 비켜간 인근 아현동 100번지 일대 46㎡ 빌라의 전세값은 현재 8000만원대이다. 아현동 ㅎ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는 “아현 뉴타운에서만 9000세대가 떠나야 할 상황이라 근처 서민 주택은 씨가 말랐다고 보면 된다. 전세 가격도 올봄에만 20% 이상 급등했다”라고 전했다.
 

ⓒ시사IN 안희태

지난 4월 서울시가 재정비촉진계획안을 승인한 수색·증산 뉴타운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증산동 주민 이대성씨(52)는 2년 전 4000만원에 전세든 18평 빌라가 계약 갱신 기간인 올봄에 8000만원으로 뛰어 서울에서는 갈 곳이 없다며 발만 굴렀다. 신당동에서도 지난해 경매 낙찰가가 2억1000만원이던 단독주택의 전세값이 올 들어 2억원으로 올랐다. 인근 금호지구 재개발 지역 5곳 5000여 세대의 이주 수요 때문이다. 신당동 일대에서는 50㎡의 낡은 빌라 전세값이 1억5000만원을 웃돈다.
올 한 해만 따져봐도 뉴타운 지구 권역별 이주 계획을 보면 동북권인 전농·답십리·미아·왕십리 지구에서 7117세대, 서북권인 은평·가재울·아현 등지에서 1만5955세대가 기존 주택이 헐리면서 집단 이동을 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 주택국이 작성한 ‘주택유형별 변화전망’ 자료에서도 뉴타운사업 추진으로 2012년 말까지 강북 서민 주택인 단독·다세대·다가구 주택의 40%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으로 해마다 수만 세대의 대규모 이주를 유발할 뉴타운 사업은 강북 전지역의 전세 가격을 올려놓은 주범이다. 서울 동북권 전세값은 2004년에 -7%에서 올 들어 7% 평균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10% 전세값 변동률을 기록했던 서울 서북권은 올 들어 평균 5%대 상승률을 보였다.
 

 

앞으로 5년간 만성적 전세대란 불가피

앞으로 5년 동안 강북에서 만성적 전세대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강북에서만 5만 호가 철거된 반면 신축은 1만4000호에 불과했다. 이런 수급 불균형은 소형 서민 주택 품귀를 빚었다. 소형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고 서울 외곽도로의 혼잡을 야기했으며 그곳 집값마저 들썩이게 만들었다. 올 상반기 아파트 가격 상승률을 보면 의정부가 16.18%, 동두천 13%, 양주 8%, 포천 7% 등으로 나타났다.

결국 뉴타운 지구 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는 강북 서민층은 덩달아 오른 인근 지역 전·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서울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시사IN〉 인턴 기자들이 지난 1주일 동안 서울 5개 권역 뉴타운 지역을 집중 취재한 결과 강북 서민의 ‘서울 엑소더스’ 현상은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 중이었고, 떠나는 이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길음·미아·상계·장위·휘경 등 서울 동북부 뉴타운 지역 주민은 주로 양주·포천·동두천·의정부 등 경기 동북부 지역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농·답십리·왕십리 뉴타운 지역에서는 주로 성남과 남양주 등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시사IN 안희태주변 전·월세 값이 폭등해 주로 경기 서북부에 있는 서민 주택을 찾아 짐을 싸는 아현 뉴타운 지구 서민.

은평·아현·수색·증산 등 강북 서북부 지역 뉴타운 주민 역시 서울 외곽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은평과 수색 뉴타운 지구에서는 구파발-문산 축선인 고양시 외곽지대로 밀려났다. 흑석·동작 등 서남부 뉴타운 지역은 주로 시흥·안산 등 경기 서남부권 서민 주거 밀집지역으로 둥지를 옮긴다.
현장 취재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울에서 밀려나기는 뉴타운 지역 세입자나 집주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의정부시 호원동에 사는 임성도씨(56)는 3년 전 서울 장위동에 있는 대지 지분 8평형의 다세대 주택을 4500만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현재 그 집 시세는 6배가 오른 2억4000만원이다. 평당 3000만원 꼴이다.

하지만 임씨는 집값이 1억원으로 오를 무렵 팔고 떠나야 했다. 뉴타운 개발로 30평형대 조합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족히 4억원은 있어야 하는데 차액을 감당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위 뉴타운지구 원주민 임씨는 다세대주택을 판 1억원으로 인근 상계동 아파트를 전세 얻어 들어갔다. 그러나 올 들어 상계동 아파트 가격은 곱절로 폭등했고, 전세마저 덩달아 뛰었다. 결국 임씨는 올여름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경기도 의정부시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임씨의 집을 산 사람은 서초구에 사는 투자자였다. 서초구 투자자는 지난해 말 다시 이 집을 1억8000만원에 강남 사람에게 넘겼다고 한다. 결국 임씨의 장위동 다세대주택은 뉴타운 지정 이후 세 차례나 손바뀜이 일어나면서 강남 사람 차지가 됐다.

아현 뉴타운 지역에서 30여 년을 살아온 토박이 김성모씨(67)의 경우도 뉴타운 지역 아파트 입주를 포기하고 최근 경기도 고양으로 이사했다. 김씨는 “뉴타운 지정으로 집값이 올라봐야 정작 득을 보는 사람은 돈 많이 들고 투기하러 들어오는 외지인뿐이다”라고 말했다. 뉴타운으로 지정되면 일단 집값이 세 배는 뛰고, 사업 추진 조합의 사업비 부담도 늘어나는데 이 분담금을 낼 수 없는 원주민이 대거 지분을 처분하고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길음 뉴타운 원주민 재정착률 17%

이미 입주를 완료한 시범 뉴타운 지구를 들여다보면 당초 강북에 집을 가진 세대주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짓는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공언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 수 있다. 개발이 완료돼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길음 뉴타운 원주민 재정착률은 겨우 17%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서울시 주택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뉴타운 지역 주거 환경의 급격한 향상으로 주택 가격이 원주민이 부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상승하자 입주권을 매도하고 다른 지역 서민 주택으로 갈아타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뉴타운 지역에 건립하는 임대주택도 대다수 원주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지난 6월1일부터 일부 입주를 시작한 은평 뉴타운 1지구의 현실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아직 입주 초기여서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현장을 찾아 수소문한 결과 이곳은 임대아파트마저도 주로 외지인 차지였다.
과거 진관동에서 살아온 원주민은 은평 뉴타운 1지구 입주가 시작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쉰다. 길 건너편에 새로 지은 뉴타운 아파트가 빤히 바라다보이는 고양시 지축동에서 허름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유철현씨(70)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저곳으로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은평구 진관동에서 24년간 살던 유씨가 고양시 지축동으로 이사 온 때는 2004년이었다. 서울시의 뉴타운 세입자 대책에 따라 임대아파트 49㎡(약 15평)에 들어갈 자격은 얻었지만 한 달에 관리비와 월세를 합쳐 40만원 넘게 내야 하는 부담감에 시달리던 유씨는 버티다 못해 올해 초 뉴타운 입성을 포기했다. 대신 SH공사로부터 받은 700만원의 이주보상금으로 뉴타운 앞 창릉천변에 포장마차를 열었지만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하다.

세입자 가구 평균 순자산 3996만원

은평 뉴타운 내 임대아파트의 월세가 비싸 입주권을 포기하고 유씨처럼 이주비를 받아 외지로 떠난 사람은 부지기수다. 유씨는 “평생 이웃으로 살아온 스무 집 가운데 뉴타운 임대아파트에 입주 자격을 끝까지 쥐고 있다 입주한 집은 달랑 옥희네 한 집뿐이야”라며 허공만 쳐다봤다.
결국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은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대통령이 애초 원주민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막연하게 ‘강남북 균형 개발’을 외쳤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결과 강북은 또 다른 강남이 되어 강북 서민에게 뉴타운은 ‘그들만의 잔치’로 비치게 됐다.

 

 

 

 

ⓒ시사IN 강은나래 인턴기자7월13일 왕십리 뉴타운 지구에서 밀려나는 세입자가 건국대 백준 겸임교수의 ‘보상법 강의’를 듣고 있다.

이는 주요 강북 뉴타운 지역 거주자의 가구별 소득 분포를 들여다보면 잘 드러난다. 서울시는 2006년 3월부터 6주 동안 왕십리·가좌·아현·신월·신정 5개 뉴타운 지구 거주자 3000명을 대상으로 소득과 자산 실태를 조사해 비공개 내부 자료로 확보했다. 〈시사IN〉이 그 내용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자택 소유자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210만원이었고, 집주인 가운데 소득 4분위 이하 저소득층이 전체의 63%로 나타났다. 세입자 가구는 월평균 171만원의 가구소득을 올리고 있었고, 세입자 중 소득 4분위 이하 저소득층 비율은 77%에 달했다.

세입자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3996만원에 지나지 않았는데 특히 임대차보호법상 소액보증금 보호 대상에 해당하는 4000만원 이하의 순자산을 가진 가구가 70%에 이르렀다. 뉴타운 개발과 함께 이들이 서울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북 뉴타운 지역 주민의 소득 수준은 같은 시기(2006년 2분기)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도시 근로자의 월평균 가구소득 331만원은 물론, 전국 모든 가구소득 298만원보다도 적은 형편이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중대형 아파트 위주의 강북 뉴타운 사업을 전면 확대한다는 정책을 유지해 대다수 강북 서민층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이다.

 

 

 

 

ⓒ시사IN 이재덕 인턴기자은평 뉴타운 내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받은 원주민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부분 입주를 포기한 채 고양시 지축동 일대로 밀려나 포장마차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이대로 가면 서울 도시계획 실종할 것

현행 강북 뉴타운 사업이 얼마나 위험한 질주인지는 역설적으로 이 사업을 앞장서 집행하는 서울시 SH공사 배경동 뉴타운사업본부장의 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시사IN〉 기자의 질문에 배 본부장은 “뉴타운 사업에 몸담은 현직 간부로서 언론에 이런 말이 나가면 서울시 입장이 곤란해질 텐데…”라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집값·땅값 폭등 원인 제공을 뉴타운 정책이 했고, 그것이 정치인의 표에 이용돼왔다는 점에서 현행 뉴타운 정책은 큰 문제가 있다. 이 시점에서 뭔가 근본적으로 제고하지 않고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다가는 서울의 도시계획은 실종할 것이다. 과거 낙후한 강북 지역을 재정비하고 재개발하던 쪽으로 정책이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강북의 일반 지역도 규제를 대폭 완화해 뉴타운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에 서울시에서는 뉴타운의 근본 기준을 바꾸는 대안을 하루바삐 마련해야 한다.”

 

 

 

 

ⓒ시사IN 안희태젊은 세대주가 경기도 외곽으로 밀려난 뒤 뉴타운 지구에는 갈 곳 없는 노년층만 남았다.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박사도 뉴타운 건설에 경고 사이렌을 울리며 보완을 주장하는 내부 연구자다. 장 연구원은 “뉴타운 사업을 점검한 결과 분명해진 사실은 이 사업으로 강북의 주거 환경 개선은 이뤄지지만 원주민의 주거 환경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과 저가 소형 주택이 주로 멸실되는 대신 중대형 중심의 아파트가 공급된다는 점이다. 뉴타운 사업의 근본 대책은 공공성 회복에서 찾아야 하며 향후 원주민의 주거 계획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한 뒤 서서히 진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뉴타운 사업 추진 과정에서 폐해가 속속 드러나자 서울시 안에서도 속도 조절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간다. 뒤늦게 사태가 심각하다고 파악한 오세훈 시장은 최근 서울시에 집갑 폭등,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 아파트 일변도 주거 유형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단’을 구성했다. 그는 “기존 뉴타운 사업이 상당히 진척되고 집값이 안정돼야 한다”라는 조건이 충족되기 전에는 뉴타운 추가 지정을 하지 않을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나라당은 오 시장의 이런 행보에  크게 반발해 강북 지역 선거 공약이었던 뉴타운 지정 확대를 서두르라고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중이다(38쪽 딸린 기사 참조).

※ 취재 지원:강은나래·김소라·변태섭·송은하·이재덕 인턴 기자.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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