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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중산층 씨가 마른다

상위 20%의 소득점유율은 40%가 넘지만, 하위 20%는 고작 5.6%만을 갖는다. 두 계층의 소득 격차는 7배가 넘는다. 상대빈곤율이 날로 높아진 것은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한다.

장영희 전문기자 cool@sisain.co.kr 2008년 07월 22일 화요일 제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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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한향란
‘빛과 그늘.’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자리한 구룡마을의 판자촌과 그 뒤로 우뚝 솟은 타워팰리스는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와 소득 양극화를 상징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6월25일 내놓은 짤막한 보고서 하나가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몰고 왔다. 유경준 선임연구위원(재정성과평가실장)이 쓴 <중산층의 정의와 추정>이라는 13쪽 짜리 이슈 분석 보고서였다. 언론을 통해 이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자 KDI 홈페이지에는 일반인의 접속이 쇄도했다. 일주일도 안 되어 이 보고서는 상반기 접속 건수에서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했다. 2등을 기록한 보고서(반기별 경제전망)보다 3배나 많았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학계뿐만 아니라 정부도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 경제부처에서 큰 관심을 표명했고, 유 위원이 직접 특강에 나서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 대한 각계의 폭발적 반응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이 얇아지고 빈곤층이 두꺼워진 것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다는 방증이다. 우선 10년 사이 중산층이 10% 포인트나 줄어들었다는 사실부터 충격적이다. 다른 나라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급감이다.  유 위원이 통계청의 1996년과 2000년 가구소비 실태조사와 2006년 가계조사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한국의 중산층은 가처분 소득 기준으로 1996년 68.5%에서 2006년 58.5%로 줄었다. 중산층에서 이탈한 이 10% 중에서 3% 포인트만이 상류층으로 이동하고 7% 포인트가 하류층으로 떨어졌다. 2007년에는 중산층 비중이 57.96%로 더 떨어졌다. 그 결과 빈곤층은 2006년 17.94%에서 2007년 18.31%로 늘어났다.

 중산층은 인구를 소득 순서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인 ‘중위소득’의 50~ 150%에 해당한다. 유 의원이 활용한 데이터에는 비중이 작은 농어가는 포함되지 않지만 도시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도시 가구 전체를 포괄한다. 1인 가구도 포함되어 통계청 통계와도 차이가 있다. 소득이 낮은 독거 노인과 독신 가구라는 1인 가구의 증가는 중산층을 줄이고 빈곤층(중위소득 50% 미만)을 늘리는 데 한몫한다.

   
ⓒ뉴시스
2008년 5월1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국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의경과 대치하고 있다.
중산층의 몰락(소득 양극화) 정도를 추정케 하는 ‘울프슨 지수’도 2000년 이후 증가폭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증가 중이다. 중위 60%에 속하는 가구의 소득을 뜻하는 중산층 소득점유율은 1996년 54.3%에서 2000년 51.6%로 낮아졌으나 2007년 54.12%로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빈곤층을 뜻하는 하위 20%의 소득점유율은 1980년대 이후 상승 궤적을 그려 1992년 9%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6년 7.9%에서 2000년 반짝 높아졌다가 곧 다시 떨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기 회복에 따른 혜택도 빈곤층에게는 딴 세상 일이었던 셈이다. 2007년에는 1980년 이래 최악의 수준인 5.6%로 떨어졌다. 반면 상위 20% 계층의 소득점유율은 2007년 드디어 40%대를 넘어섰다.

상대빈곤율, 2006년에 17.9%로 높아져

그러니 소득 불평등도가 심화하지 않을 수 없다. 중위소득 50% 미만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상대빈곤율은 날로 높아져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한다. 가처분 소득 기준으로 1996년 11.3%에서 2006년 17.9%까지 높아졌다. 중산층 대열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중위소득 50~70%의 계층이 10년 사이 빈곤층으로 대거 내려앉은 것이다. 이들은 경제 침체가 계속되어 사업이 부진하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혹은 소득이 크게 감소하는 등의 충격이 가해지면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취약 계층이다. 중산층의 11~14%를 차지하는 이들은 빈곤층과 동일하게 고용보험 같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 다른 소득분배 지표인 5분위 배율(1분위 소득을 5분위 소득으로 나눈 것)과 ‘지니 계수’의 경우는 2000년까지 증가 일로를 걷다가 이후 큰 변화가 없거나 다소 줄어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표를 총소득이 아니라 스스로 벌어들인 시장소득 기준으로 보면 불평등도가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시장에서 벌지 않은 다른 형태의 소득이 보태져 분배 악화를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가 사회안정망 확충 등으로 소득재분배 구실을 한 것이다.

   
 
총소득에 대한 지니 계수를 기준으로 시장 소득과 가처분 소득 간의 계수 변화율을 살펴보면 외환위기 이전까지 3% 안팎을 유지하다가 2000년 5.7%, 2007년 8.8%로 늘어났다. 물론 가처분 소득 불평등도가 시장 소득 불평등도에 비해 평균 42% 줄어드는 경제협력기구(OECD) 주요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아직 10% 이내로 낮은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복지 지출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빈곤층이 늘었으며 빈곤층이 더 빈곤해지는 현상을 이 정도밖에 억제하지 못한 것은 복지 전달체계의 오작동 가능성을 제기한다. 즉 부정 수급자가 적지 않다는 혐의를 둘 만하다.

일반적으로 하위 20% 소득 계층을 의미하는 저소득층은 2003년 말 현재 875만명(총인구 대비 비중 18.3%)에 달한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2.9%), 차상위 계층(12.1%) 및 잠재적 복지 수요 계층(2.6%) 등으로 구성된다.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2007년 4인 가족 기준 월 121만원)를 밑도는 계층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고, 경상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인 계층에서 기초생활 수급자를 뺀 것이 차상위 계층이다. 차상위 계층보다 소득은 높으나(최저생계비의 120~130%) 가계수지가 적자여서 복지 혜택이 필요한 계층을 잠재적 복지 수요 계층으로 구분한다. 차차상위 계층은 경상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인 계층이다. 하위 20% 소득 계층 가운데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은 차차상위 계층과 이미 복지 혜택을 누리는 기초생활 수급자를 뺀 차상위 계층과 잠재적 복지 수요층은 704만명(2003년 현재)에 달한다. 복지 수요가 만만치 않음을 엿보게 한다.  

정부는 중산층 복원보다 빈곤층 줄여야

이들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소득이 줄어 만성적인 생활고에 시달린다. 저소득층의 절반은 만성 부채의 덫에서 헤어나올 줄 모른다. 오석태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흔히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을 주택담보대출에서 찾지만, 최근 몇 년간 주택담보대출이 정체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계형 빚’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한다. 벌어들인 것보다 더 쓸 수밖에 없어 이 차이를 빚을 내 메우는 이들에게 부채 상환 능력을 따지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저소득층의 1인당 부채(1453만원)는 가구 연간 총소득(835만원)을 넘어선 상태다.

하위 20%와 상위 20% 사이의 소득 격차가 7배 이상 벌어지는 소득 양극화 현상을 초래한 원인으로는 몇 가지가 거론된다. 세계화와 기술 진보, 그리고 이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이 대표 원인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라는 큰 충격을 경제 전체로는 완전히 극복했는데도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화한 것은 이런 이유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내놓은 ‘세계화와 기술 발전이 제조업 노동 수요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1991~2007년 중 세계화와 기술 발전 영향으로 연평균 1만1000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LG경제연구원은 기술 진보의 영향으로 성장의 고용창출 효과가 낮아지고 내수의 성장 기여도가 낮아져 한국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약해진 것에 혐의를 뒀다. 2007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추가적으로 1% 늘어날 때 고용은 0.2% 증가한다. 1970년대만 해도 이 고용 탄성치는 두 배를 웃도는 0.5%에 달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경제가 연평균 4~5%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크게 늘지 않아 국민 개개인이 체감하는 소득이나 후생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이것은 2000년대 들어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GDP 증가율을 계속해서 밑도는 현상으로도 설명된다. 두 증가율의 비율, 즉 국민총소득의 성장에 대한 탄성치가 1970~1990년대는 대체로 1을 유지해 성장이 1% 늘면 소득도 그만큼 증가했으나 2000년대 들어 0.7%로 뚝 떨어진 것이다. 주원 현 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과 생산의 괴리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2008년 1분기 지표다”라고 지적한다. GDP 증가율이 5.7%에 달했음에도 GNI 증가율이 0%를 기록한 것이다. GNI는 가계와 기업의 실질 구매력을 뜻하는데, 성장해도 소득이 조금 늘거나 늘지 않으니 소비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 원인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이 밀집한 분야에서 일자리가 대거 없어진다는 것도 소득 양극화를 한층 부추기는 요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과 임금노동자 일자리는 늘었지만 중소기업, 서비스업, 임시 노동자, 자영업에서는 도리어 줄어들고 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저소득층 가운데 44.5%에 달하는 비취업자(비경제활동 인구나 실업자, 자활 및 공공 근로자)는 복지 및 일자리 창출 정책의 대상이지만, 저소득층 취업자의 경우는 ‘보호’에서 자생력 강화를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유경준 선임 연구위원은 좀더 근본적인 관점을 제기한다. 중산층 복원보다 빈곤층 감소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빈곤층을 줄이면 자연히 중산층도 두꺼워져 사회통합이라는 또 다른 정책 목표도 달성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나 정치권이 중산층 몰락에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겠지만, 빈곤층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중산층은 정치적으로 이른바 ‘표밭’이고 정권의 명운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위력적 존재다.

중산층이 줄어들고 빈곤층이 늘어나는 문제에 이명박 정부가 관심을 보였다지만, 고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성장지상주의를 버리지 않는 한 소득 양극화 해소는 요원해 보인다.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이른바 적하 효과를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이 기제가 고장났다는 것은 이미 경제학계의 정설이 된 마당이다. 고소득층과 대기업 같은 선도 부문의 경제적 성과가 저소득층과 영세 기업으로 파급되지 않는 것은 수년간 목격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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