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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이 꼽은 2015 올해의 책] 송곳, 스켑틱 外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5년 12월 30일 수요일 제4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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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아차, 싶었다.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국내서 분야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송곳>의 편집자와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번역서 부문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책 역시, <송곳>과 마찬가지로 출판사 창비의 책이었다. 다시 편집부에 전화를 걸었다. 같은 사람이 받았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편집자를 찾았다. “저예요.” 두 책 모두 최지수씨의 손을 거쳤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반응이 좋은 책을 만든 건 처음이라고 한다. 2015년은 창비에 다사다난한 해다. 6월,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에 대한 성급한 대응으로 구설에 오른 뒤, 지금껏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행복한 책꽂이>를 만들며, 전혀 다른 의미에서 창비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시사IN>이 꼽은 올해의 책’ 리스트에도 창비 책은 다수 이름을 올렸고 출판인이 꼽은 책 중에도 <송곳>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비롯해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이 많은 추천을 받았다.

  <송곳>은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최초의 만화다. 실화를 기반으로 노동계 이슈를 정면으로 다뤘다.  
<송곳>은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최초의 만화다. 실화를 기반으로 노동계 이슈를 정면으로 다뤘다.
   
 

<송곳>은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최초의 만화다. 주로 출판 만화를 그려온 최규석 작가의 네이버 웹툰 데뷔작이기도 하다. 실화를 기반으로, 노동계 이슈를 정면으로 다뤘다.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잡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는 “한국에선 소설보다 만화가 현실을 더 잘 포착하고 그려낸다는 점을 보여줬다.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로서의 지위를 소설이 만화에 넘겨줬다는 징표다”라고 말했다. ‘사회비판적 리얼리즘 웹툰의 가능성을 보여준 걸출한 작품(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웹툰 연재 전부터 출간을 계획했다. 최지수씨는 “노동문제를 다루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출간을 권했다. 이전에도 작품을 같이했고 최규석 작가라면 믿고 가는 게 있어서 기대했다.” 5월, 세 권이 동시에 나왔다. 세 권 통틀어 12만 부가 팔렸다. 신간 효과가 잦아든 10월, JTBC가 <송곳>을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면서 다시 반응이 있었다.

극 중 노동상담가인 구고신의 실제 모델을 인터뷰하는 자리에 동행하기도 한 최씨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작가가 워낙 대사를 잘 쓰고 (대중이) 어떤 말에 반응할지 잘 아는 분이라 편집할 때 거의 수정할 필요가 없었다. 노동문제가 접근성이 좋은 주제는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 점 때문에 (동료들이 많이) 꼽아주지 않았나 싶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div>신영복 교수(위)의 <담론>은 더 이상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 않는 신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책이다.  
ⓒ시사IN 자료
신영복 교수(위)의 <담론>은 더 이상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 않는 신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책이다.
   
 

<강의> 이후 10년 만에 출간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담론>도 출판계 종사자들의 고른 추천을 받았다. 대체로 시대의 스승으로 삼을 만한 ‘어른’의 마지막 강의록이라는 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담론>은 더 이상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 않는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책이다. 고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성찰한다. 남해의봄날 출판사 편집자들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시대의 큰 어른, 신영복 선생의 생생한 육성이 들리는 듯한 책이다. 살아온 삶의 진정성 이상으로 소통을 강력하게 만드는 도구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진숙 해냄출판사 편집장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삶의 자세가 쉬운 언어로 풀이되어 추천할 만하다. 동서양 고전과 역사를 두루 맛보게 해주어 깊이 있는 책까지 찾아볼 수 있는 힘을 준다”라고 전했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드문 시대, <담론>은 드물게 그 자리를 채운다.

팟캐스트의 기획력이 출판으로 이어지다

트렌드를 반영한 책들도 눈에 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팟캐스트로 소문이 난 뒤 책으로 출간된 경우다. 팟캐스트는 다양한 주제의 교양을 이름처럼 넓고 얕게 이야기하는 방송이다. 송성호 이상북스 대표는 “가볍게 읽을거리와 (폭넓게) 아는 체하기의 진수를 보여준 책이다. 팟캐스트의 기획력을 출판으로 성공시킨 대표적인 책이다”라고 말했다. ‘헬조선’이라는 쓸쓸한 신조어와 맞물려 자주 인용되곤 했던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도 다수의 추천을 받았다. ‘한국이 싫어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난 주인공의 이야기다. 소설로서는 유일하게 목록에 올랐다. 신동해 민음사 편집부장은 “소설로 썼지만 르포로 읽힌 작품이다. 단지 미문을 수련하는 것만이 작가의 미덕이 아님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라고 평가했다.

국내 연구자들의 인문학 책도 고른 지지를 받았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박해천의 <확률가족>, 임동근·김종배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전호근의 <한국 철학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제목에 담긴 세 가지 키워드로 세상을 해석한 <사람, 장소, 환대>는 ‘사회와 인간됨이라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탁월한 인문학 서적’이라는 측면에서 출판인 다수의 이목을 끌었다. 방대한 한국 철학사를 집대성한 <한국 철학사>의 출간을 반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김희진 반비 편집장은 “무척 내고 싶어서 10년 전부터 준비했으나 현실화시키지 못했던 기획인데 누군가 이렇게 내버리자 조금 허무하면서도 반갑다. 한국 철학의 맥이나 역사를 정리하는 책은 계속 나와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지홍 봄날의책 출판사 편집장의 반응은 좀 더 감격스럽다. “드디어 쉬운 우리말로 된 한국 철학사 책을 갖게 되었다. 사서삼경에 두루 밝고 경전의 자구에 매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지금 이곳의 현실과 고전을 대면시키는 저자의 사유가 입말에 잘 녹아 살아 있는 모범적이고 좋은 교과서다.” 두꺼운 편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출간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었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출간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었다.
   
 

번역서로는 국내에 ‘맨스플레인(남자를 뜻하는 man과 ‘설명하다’는 뜻인 explain을 결합한 단어.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올해 초부터 여성 혐오 이슈가 SNS를 달궜다. 한 트위터리안은 당시의 흐름을 지켜보며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를 언급했다. ‘맨스플레인’은 2010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로도 꼽혔다. 당시 출판사는 책을 번역 중이었다. 창비는 계간지에 종종 환경·반핵·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솔닛의 글을 실었다. 편집위원을 통해 저자의 페미니즘 책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출간을 검토했다. 여성 혐오 이슈가 화제에 오르기 전이었다. 이 정도로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다.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었다. 김원영 바다출판사 편집자는 “페미니즘 분야에 다시 주목하도록 만든 책이다. 그 덕분에 관련 분야 다른 책들도 더 주목받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김보경 인플루엔셜 출판본부장은 “여성 혐오가 강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실상을 방증하는 책이다. 미국에서 이 단어가 등장한 건 2010년인데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결국 기댈 곳이 1세계 지식인 여성주의자라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런 책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덕후’의 저력을 보여준 책

   
 

올 한 해 출판계는 ‘덕후’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구의 연대기를 담은 <문구의 모험>(위 사진)이 대표적이다. 신동해 민음사 편집부장은 ‘더 이상 언더에만 있지 않는 덕후들의 저력을 보여준 책’으로 이 책을 주목했다. 고미영 이봄출판사 대표는 “오타쿠의, 오타쿠를 위한, 오타쿠의 세계를 다룬 책이 인기몰이를 했다. ‘문구의 역사’ 정도로 콘셉트를 소개했다면 이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오타쿠가 쓰는 오타쿠의 역사서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역사가의 책이 아니라는 점이 신선하고, 오타쿠가 ‘라이트 노벨’에만 몰리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작은 예로 봤다”라고 말했다. 한 과학자의 ‘화성에서 살아남기’ 과정을 묘사한 소설 <마션>의 작가 역시 ‘덕후’였다. 취미로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하다가 독자의 요청으로 전자책까지 출판하게 됐고, 대형 출판사가 뒤늦게 종이책으로 출간했다. 이후 영화화되고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덕후가 소설을 쓰면 이렇게 된다는 사례를 보여준 올해 최고의 과학소설이다”라고 말했다.

   
 

<마션>에 이어 과학 분야의 선전이 눈에 띈다. 지난 3월 창간한 과학잡지 <스켑틱>(아래 사진)은 열풍을 일으켰다. 창간호가 1만 부가량 나가며 한 달 만에 정기구독자 1500여 명을 모았다. 출판계는 국내 과학 교양서 시장의 실체를 발견했다. 이 밖에도 올 한 해 국내서로는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이창근의 해고일기> <시를 잊은 그대에게> <서민적 글쓰기> <조훈현 생각법> <대담한 경제학> <그림의 힘> 등이 주목받았다. 번역서로는 <사는 게 뭐라고> <음식의 언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오베라는 남자> 등이 출판인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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