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한구석에 ‘베를린 장벽’이 서 있다. 떨어져 사는 그리운 가족에게 남겨놓은 손글씨와 그림 등이 담긴 진짜 베를린 장벽이다. 1961년 독일 서쪽에 자리 잡았던 베를린 장벽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입구에 놓였다. 현재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행사 ‘독일에서 한국의 통일을 보다’의 일환으로 특별 전시 중이다. 11월10일 그 앞에 한 독일 남자가 섰다.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부르는 페터 코이프 씨(57·사진)는 자신이 겪은 분단과 통일에 대해 말하기 위해 주한 독일 대사관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동독 출신이다. 서독 출신 공산주의자 아버지가 자신이 태어나기 2년 전 동독으로 이주했다. 동독 챔피언십 댄스스포츠 대회에서 3위로 입상하는 등 춤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으로 자란 그의 삶에도 분단은 영향을 미쳤다. 동·서독 이주가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다시 가족 모두가 서독으로 가기 위해 제도적으로 보장된 이주신청서를 낸 다음부터는 일상이 불편해졌다. 학교 생활부터 스포츠센터 이용까지, 직접적이고 또 은밀한 차별에 시달렸다. 결국 스물네 살의 페터 코이프 씨는 혼자 오스트리아로 도주하던 중 붙잡혀 10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이후 프라이카우프(서독이 돈을 지불하고 동독 정치범을 송환받던 제도)를 통해 서독에 정착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믿었다. 댄스 학원을 차린 다음, 먹고살기 바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때도 무심했던 그였다.

ⓒ시사IN 신선영

그런 코이프 씨는 현재 전 세계를 다니면서 통일 후 삶에 대해 강연을 한다. 자신의 가족사로 본 통일 전 통제된 동독의 삶과 과거 청산을 주로 이야기한다. 계기는 주변의 제안으로 2009년 찍게 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동독을 탈출하다 갇힌 드레스덴 감옥과 취조실을 그가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 동독의 국가 정보기관 슈타지(Stasi)가 쓴 자신의 파일도 읽게 되었다. 대학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동서독 역사를 배우고 있다.

‘통일대박론’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떤 질문

과거 역사를 하나씩 되짚다 보니, 형이 슈타지 비공식 정보원이라는 사실까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충격이 컸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형은 이미 1993년 숨진 상태였다. 과거 동독 시절 예술가 커플을 감시하던 슈타지의 이야기를 담은 독일 영화 〈타인의 삶〉에서 그려지던 일상의 감시가 그대로 펼쳐진 셈이었다(국내에서는 2007년 개봉, 2013년 재개봉했다).

그에게 분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페터 코이프 씨는 지금도 2주에 한 번씩 일 때문에 동·서독 지역을 넘나든다. 과거의 국경을 건너며 이를 계속해서 의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동베를린 지역에는 숙소도 구하지 않는다. 가끔 장벽이 다시 생긴 악몽을 꾸기도 한다.

마음속에서 여전히 극복되지 않은 페터 코이프 씨의 분단 서사를 듣고 있자면, 한국의 통일 담론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통일대박론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떤 통일이냐’를 생각하게 하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코이프 씨의 이어지는 말은 더 아프게 들린다. “동·서독은 갑자기 통일되긴 했지만, 이전의 동방정책으로 서로 많은 교류를 했고 적대감을 줄이려 애쓴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대화나 만남에 대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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